마지막 날까지 운수대통, 새해에도 쭉~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87] 올해 마지막 날 만난 꽃들

등록 2006.12.31 19:34수정 2007.01.0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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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의 흔적은 그저 그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뭔가를 말하는 듯하다. ⓒ 김민수

한 해의 마지막 날, 서해의 해넘이도 동해의 해돋이도 볼 여건이 안 되어 집에서 가까운 두물머리 세미원을 찾았다.

큰 기대는 없었고 요 며칠 추웠으니 혹시라도 썰매장이라도 개장했을까, 얼음에 박혀있는 비썩마른 연밥이나 만날 수 있을까 해서였다.

예상대로 비썩마른 연밥과 연이파리가 얼어버린 얼음에 박혀있었지만 아직 썰매장을 개장할 만큼 두껍게 얼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심조심 얼음 위를 다니며 스러져가는 연밥과 이파리를 담는 것도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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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녹는 봄까지 그렇게 그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볼 것입니다. ⓒ 김민수

마치 열정을 불 태워 그 누군가를 따스하게 해 주었던 연탄재를 보는 듯하다. 이제 얼음이 녹기까지, 봄이 오기까지 그 모습 그대로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때론 겨울비도 오고, 하얀 눈도 내리고, 봄비가 내리며 얼음이 풀리면 겨우내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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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와 못다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중이겠지요. ⓒ 김민수

지난 여름과 가을 하늘만 바라보다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가는 것은 슬퍼 보이게 마련인데 자연은 그 슬픔 속에 깃든 희망으로 인해 때론 이렇게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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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까워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순간이 있습니다. ⓒ 김민수

아마도 얼음이 얼기 전에는 바람을 타고 물결을 타면 만나고 싶었던 줄기 혹은 이파리와 만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만날 수 있을 때 많이 만나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 때 많이 말하자. 그리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때가 늦기 전에 서둘러 하고, 따스한 손 잡아주어야 할 사람 손도 잡을 수 있을 때 잡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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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만 남아 온 겨울을 지키고 있습니다. ⓒ 김민수

스러져가는 연이파리들은 마치 치마폭을 보는 듯하다. 이내 만지면 바스러지는 이파리지만 그들이 있어 겨울도 그리 외롭지 않다. 그 누군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참 든든한 일이다.

내가 알지 못하여도 늘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지금까지의 삶을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나도 그 누군가가 되어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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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 온실에서 만나는 뱀딸기도 정겹습니다. ⓒ 김민수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간 온실, 겨울이라 온실임에도 원예종이라는 느낌보다는 야생화의 느낌이 강하게 꽃들이 다가왔다. 물론 꽃이 많은 것이 아니라 듬성듬성 피어있어서 들판에서 야생화를 찾는 느낌이었다. 한겨울에, 그것도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좋아하는 꽃을 만나다니 마지막 날까지 운수대통한 날이다. 새해에도 이런 시간들이 쭉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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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꽃을 피운 뒤에 열매를 맺는 과정들 모두 숙연합니다. ⓒ 김민수

내가 만났던 이런 행운, 운수대통이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께도 가득하시길 바란다. 만일 '그 곳에 가면 꽃을 만날 수 있을거야' 하는 기대를 가지고 갔다면 별로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사실 한겨울에도 꽃을 보려면 가까운 화원에 가도 볼 수 있고, 양재동 꽃시장에 가면 수도없이 많은 꽃들이 있고, 집에도 난 몇 촉이 꽃을 피웠으니 겨울에도 꽃을 만나려면 만날 수 있다. 제주도에 피어있을 수선화나 동백 혹은 비파나무, 사스레피나무의 꽃을 직접 보았으면 하는 소망은 있지만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니 이제 참고 내년 봄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겨울, 그것도 마지막 날에 화들짝 피어난 꽃이라니 운수대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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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망초,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 꽃입니다. ⓒ 김민수

얼마전에 꽃마리와 꽃바지를 소개하면서 이야기했던 물망초도 실물로는 처음 만났다.

"와! 물망초다!"

매일 식물도감에서만 보던 꽃을 직접 만나는 기쁨은 참 크다. 그런데 한겨울, 그것도 마지막 날에 물망초라니 절로 휘파람 소리가 날 수밖에. 꽃들이 "새해에도 나를 잊지 마세요!" 소리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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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양지, 흔하던 꽃들도 너무도 귀해 보이는 겨울입니다. ⓒ 김민수

물양지를 보면서는 조금 후회도 했다. 이렇게 겨울에 보는 꽃이 예쁜데 흔하디 흔한 양지꽃 나도 조금 캐다 놓을 걸 하는 후회, 그러나 이내 자연에서 만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후회를 접었다. 가끔씩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어야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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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모밀덩굴, 올해는 못 보고 그냥 지나가나 했는데 너무 반가웠습니다. ⓒ 김민수

개모밀덩굴은 여기저기서 한창이었다. 추위에 강한 식물이니 온실에서 넉넉하게 자라는 것이다. 선입견 때문인지 원예종은 그리 예뻐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 만난 원예종꽃들은 계절 때문인지 예쁘게만 다가왔다. 한겨울에 만난 행운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꽃을 만나는 행운이 주어진 날, 운수대통한 날, 이런 행운이 새해에도 쭉 이어질. 그리고 나에게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운수대통하시길, 그리고 오늘 밤 황금돼지꿈도 꾸시고, 황금돼지꿈이 가지고 있는 온갖 좋은 해몽들이 다 이뤄지시길.

덧붙이는 글 | 12월 31일, 두물머리 세미원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덧붙이는 글 12월 31일, 두물머리 세미원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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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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