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승무원', 사회적 대화로 풀겠다
얻어맞고도 '아야' 소리 한 번 못냈다"

[단독 인터뷰]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등록 2006.12.31 23:09수정 2007.01.0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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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 오마이뉴스 권우성

"법적 절차는 아니지만 워낙 오래된 이슈고 고통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중재해준다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

2006년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서는 새마을호 승무원 6명이 철도공사의 외주위탁 철회를 요구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같은날 오후 늦게 이 상황을 보고받은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300일 넘도록 투쟁해온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싸움이 병술년 한 해를 넘기면서도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한 가운데, 이철 사장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중재한다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겠다"고 밝혀 2007년에는 노사 양측이 새로운 해결점을 찾게 될 지 주목된다.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은 지난달 30일 서울사무소 접견실에서 가진 <오마이뉴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법적 절차는 나중에 밟는다고 해도 절차나 내용에 합의할 수 있는 중재안이 나온다면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며 "이것이 노조의 공식 입장이라면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KTX 승무원 문제에 있어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굉장히 자제했던 우리도 나름대로 고충과 고민이 있다"며 "늘 아프게 얻어맞으면서도 '아야!' 소리 한 번 못해봤다"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최근에는 승무원들은 물론 일부 교수들까지 개인적 비난과 욕설까지 동원하는데 대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걱정된다"며 "서로에게 상처가 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제일 좋겠다"고 말했다.

이철 사장은 누구인가?

가슴에 철도공사 배지를 달고 나타난 이철 사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에 반대하는 투쟁의 선봉에 섰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은 사형수였다.

그는 48년 경남 진주에서 났으며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또 다시 투옥되기도 했던 이철 사장은 석방 뒤 정치권에 뛰어들어 서울 성북지역에서 12~14대까지 세 차례에 걸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87년 6월항쟁 이후 노태우정권 당시 3당 통합에 반대했던 이 사장은 야권통합추진회 공동대표를 맡아, 노무현 대통령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만들기도 했다. 한때는 노무현 대통령 등 통추 출신 정치인들이 만든 음식점 '하로동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16대 대선에선 정몽준 의원 캠프의 국민통합21 조직위원장, 노무현 후보 부산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02년 여성벤처기업인 전명옥 코코엔터프라이즈 부회장과 결혼해 화제를 낳은 바 있는 이 사장은 50억대가 넘는 재산가이기도 하다.
지난달 30일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새마을호 승무원 문제와 관련, 이 사장은 "추운 날씨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외주위탁 자체를 철회하는 것은 경영상의 원칙에 위배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잘라말했다.

다만 그는 "승무원들에게 결정적인 불이익은 없도록 남은 시간 최선을 다 하겠다"며 "승무사업을 전문화하겠다는 경영상의 원칙을 반대하는 몇몇 때문에 깰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승무업무 외주화' 정책은 계속 강행할 방침임을 내비쳤다.

철도공사의 외주화 영역에 사회적 소수자인 여성에게 집중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철도의 고용 형태가 왜곡된 측면이 있지만 하루아침에 바로잡으라고 요구한다면 무리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함께 협의해서 좋은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사장은 "KTX 전 승무원들처럼 일방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주장만을) 요구한다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며 "노동부가 이미 합법적인 외주위탁이라고 밝힌 마당에 우리가 불법(파견)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경우에 따라 정부의 유권해석이 우리의 올가미가 돼버린다"고 KTX 여승무원측의 연이은 진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최근 우리은행이 31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그는 "정말 좋은 일"이라며 "부럽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이하 교수모임)'이 공개질의를 통해 평균연봉 7400만원 이상 철도공사 3급 이상의 임금 인상률을 1% 정도를 조정해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해법을 제시했지만, 이 사장은 "철도공사 내부 분위기가 중요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사장은 "(KTX 승무원 문제 해법은)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전 직원의 80%가 노조원인 상황에서 직원들이 KTX 여승무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노노갈등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3급 이상의 철도공사 간부들이 먼저 분위기를 조성해 임금동결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한 사장이 먼저 그것을 제안하기 어려운 사내 분위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 사장은 정동영-김근태 등 전·현직 열린우리당 당 의장들이 신당창당에 합의한 것과 관련,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정치에 복귀한다면 언제나 단일화와 통합노선을 견지해왔던 것처럼 연합의 역할을 저절로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정계복귀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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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조합원들이 숙소로 쓰고 있는 서울 용산역 부근 철도노조 서울본부 사무실 2층. 300일 가까이 계속된 투쟁에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합숙중 생일을 맞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다음은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왜 인터뷰를 자청하게 됐나.
"KTX 여승무원들은 언젠가 철도의 가족으로 돌아올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도 굉장히 자제했던 우리(공사측) 나름대로 고충과 고민이 있다. 늘 아프게 얻어맞으면서도 '아야!' 소리 한 번 못해봤다. 최근 전 승무원들은 물론 일부 교수들까지 개인적 비난과 욕설을 동원하는데, 대단히 잘못된 것 아닌가 걱정된다. 서로에게 상처가 나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제일 좋겠다. 다만, 그걸 찾는 절차가 굉장히 어렵다. 교수님들은 철도공사가 불법을 자백하고 직접 고용하라고 하는데, 노사 간에 어느 일방의 항복을 요구하는 게 가능한가."

- 최근 KTX 여승무원들과 직접 만나 대화는 해봤나.
"철도유통의 직원으로 있을 때 승무원 몇 명이 깨알 같은 글씨로 직접 편지를 써서 만나달라고 요청했다. 법인체로 본다면 우리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것이 굉장히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차례 간곡한 호소를 하는데 모른 척 하는 것도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1월경 공식 접촉이 아니라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만났다. 같이 걱정하는 자리라면 만나자고 해서 서울 서부역 뒤 작은 커피숍에서 만났다. '명찰의 잉크가 지워져서 바꿔달라고 했더니 월급에서 까더라', '차량 안에서 밀고 다니는 카트가 깨져 바꿔달라고 했더니 또 월급에서 까더라' 하는 얘기를 듣고 참 가슴이 아팠다.

(그 자리에서 내가) 대신 사과할 수 있다면 사과하겠다고 했다. 사실 그런 잘못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 때 '나는 여러분 편에 서서 싸우겠다, 한 편이 되겠다'고 말하며 얘기를 잘 마쳤다. 같이 잘 해결하자고 했는데 그 후에 (KTX 여승무원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외부사람 출입을 통제하고, 사장 가는 길도 막아서고 차를 두드리고 쌍 시옷자 붙여가며 욕을 하고….

형사·민사 문제까지도 거론하다가 나중에 취하했다. 같이 근무하던 승무원들 간의 충돌도 있었고. 지금까지 매일매일 그런 문제를 접하면서 드는 속상함이 있다. 전혀 상반된 주장을 하고, 또 쌍소리까지 들어야 하고, 전혀 다른 입장에 있던 교수들한테 취업 사기범으로, 거짓말쟁이로 몰리고... 비애를 느낀다."

"새마을 승무원들에게 결정적 불이익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 철도공사가 113명의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외주화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승무원들이 지난달 30일부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113명 가운데 대부분은 계열사(KTX관광레저) 정규직이나 철도공사의 역무계약직(직접고용)으로 갔다. 이 가운데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이 21명이다. 31일까지 노사협의를 계속 할 예정인데, 빠른 시간 안에 결론이 좋은 쪽으로 났으면 한다. 단식하는 6명… 추운 날씨에 안타깝다. 이들은 외주위탁 자체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경영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승무사업을 전문화하겠다는 경영상의 원칙을 반대하는 몇몇 때문에 깰 수는 없다. 어쨌든 승무원들에게 결정적인 불이익은 없도록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 한 가지 당부하자면, 서로의 처지를 고려하는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계약만료를 선택한 것인데 해고됐다고 일방적으로 (밖에) 알려지는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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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이 사장은 '승무업무의 외주화'를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승무업무 외주화는 국가경영 철학과 연동돼 있다. 승무업무의 외주화가 옳으냐, 그르냐는 별개의 문제다. 계약직인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어떤 형태로든 정리했어야 했다. KTX관광레저는 여행사이기는 하지만 관광승무 일을 해왔다. 철도유통보다는 오히려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

(승무원들의 이적 과정이) 절차적으로 좀 부족한 점은 있지 않았나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사회 정의에 현저하게 어긋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직원들은 2년 전까지 철도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은 전혀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공공서비스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제는 법적 지위가 달라졌다. 공공 서비스와 기업적 효율성을 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우리 직원들은 그걸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 '새마을호 승무원들을 어떤 식으로든 정리했어야 했다'는 게 무슨 뜻인가.
"과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본사 직원과 계열사 직원이 섞여 근무했다. 그러나 새로 개정된 노동관계법에 따르면,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같은 대우를 하도록 돼 있다. 철도공사는 굉장히 다양한 지역에 다양한 업무가 혼합돼 있다. 매표업무만 하더라도 본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 계열사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정리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승무원도 마찬가지다. 외주위탁을 하든지,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돼야 한다. 지금처럼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처우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 외주화 대상이 왜 유독 여성이어야 하는가. 성차별 아닌가.
"과거에는 그랬다. 솔직히 인정하겠다. 인권위 권고도 과거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KTX관광레저에서 하고 있는 승무 사업은 나이, 성별에 따른 차별이 없다. 과거에 성차별이나 부당노동 행위를 강요하는 등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 사회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여성에게 (피해가) 집중되는 이유는 뭔가.
"철도의 오랜 역사가 있다. 오랫동안 고용 형태가 왜곡된 측면도 있다. 그걸 하루아침에 바로잡으라고 요구한다면 무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함께 협의해서 좋은 방법을 찾겠다. KTX 전 승무원들처럼 일방적인 행동을 통해 요구한다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 회사와 합의해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고민했으면 한다. 노동부가 이미 합법적인 외주위탁이라고 밝힌 마당에 우리가 불법(파견)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어떤 때는 정부의 유권해석이 우리의 올가미가 돼버린다."

우리은행과 철도공사 사정은 '하늘과 땅' 차이?

- 최근 우리은행이 전체 인원의 28%인 3100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했다. 어떻게 봤나. 이게 철도공사에서는 불가능한 일인가.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일이다. 누가 그걸 반대하겠나. 부럽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은행의 사정과 철도공사의 사정은 하늘과 땅 차이다. 월급을 올려준다든지, 고용인의 숫자를 조정한다든지 모두가 경영상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 우리은행은 자기들 표현대로 사상 최고의 흑자를 내고 있는 특수한 금융법인이다. 철도공사는 유래 없는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공기업이다. 연간 6000억원 이상 적자를 내고 있다. 그런 기업과 수평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다. 우리도 우리은행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 우리은행처럼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 공기업으로서 모범을 보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현재는 어려운 환경이다. 정부투자기관이기 때문에 정부와 노동계, 철도공사와 노조가 힘을 합쳐 나간다면 일부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도 판단된다. 장기적으로는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전에 비정규직 투쟁의 꽃인양 KTX 승무원 문제가 불거져있다. 그 분들은 우리 계열사의 1년 비정규직이었다. 집단행동을 통해 본사의 정규직으로 해달라고 집단행동을 하더니, 지금은 본사의 비정규직으로 해달라고 한다. 계열사의 비정규직 문제가 있을 때 즉각 나름대로 좋은 방안을 제시했고 많은 분들이 따랐는데 일부가 남아 계열사의 정규직은 싫다, 또 다른 비정규직이다, 간접고용이다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 철도공사가 제안한 KTX관광레저는 감사원이 지적한 것처럼 워크아웃 위기 직전의 부실회사 아닌가.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에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KTX관광레저는 설립 1년 여 만에 바로 흑자로 돌아선 기업이다. 올해 KTX관광레저 직원들에게 엄청난 보너스를 줄 정도로 가장 모범적인 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감사원이 (회사를) 설립한 지 3개월만에 감사해서 철도공사의 경영에 부담이 되지 않겠느냐고 한 것을 인용해 전 승무원들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명백한 수치로 드러난 사실을 아니라고 하는 것은 까마귀더라 희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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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교수모임(이하 교수모임)'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평균연봉 7400만원 이상 철도공사 3급 이상의 임금인상률을 1% 정도를 조정해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것 등의 해법을 제시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인가.
"철도공사 내부 분위기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전직원의 80%가 노조원인 상황에서 직원들이 KTX 여승무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노조가 노조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내가 취임한 뒤로 승무원들에게 한 번도 나쁘게 한 행위가 없다. 오히려 그 분들의 편이었다. 적극적으로 자리도 만들었고, 편지도 썼으며 선물도 보냈다. 작년 연말에는 승무원들에게 목도리와 장갑을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선물이 '직접 고용'을 해야 하는 증거물로 제시됐다. 그래서 올해는 그런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노조운동이 이렇게 메말라서야 되겠나 싶다. 일반인들이 갖는 막연한 호의를 나라고 왜 안 가졌겠나. 자꾸 밀어내는 느낌이 든다."

새마을호 승무원, 제2의 KTX사태로 치닫나?

- 새마을호 승무원 문제가 '제2의 KTX 사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새마을호나 KTX 여승무원들의 비정규직 문제를 풀 대안이 정말 없나.
"이종구 성공회대 교수가 <내일신문> 기고를 통해 사회적 대화로 풀자고 제안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수없는 고민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추운 겨울에 단식까지 하니 고생을 할 것이다. 어떻게 결론이 나는가는 다음 문제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결론에 이를 것인가다.

우리는 법적 통제를 받는 정부기구다. 유감스럽게도 본인들이 원했지만, 바라지 않는 방향의 유권해석이 내려졌다. 그걸 뒤집는 방법이 뭘까 그걸 생각해야 한다. 철도공사의 항복을 원한다면 그에 걸맞은 법과 지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교수모임의 주장대로 연말까지 철도공사가 해결하라, 그건 항복하라는 요구다. 노사관계는 함께 해결해야지 어느 일방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 사회적 합의기구가 만들어진다면 참여할 의향은 있나.
"법적 절차는 아니지만, 워낙 오래된 이슈고 고통스러운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분들이 중재해준다면 참여하겠다. 법적 절차는 나중에 밟는다고 해도, 절차나 내용까지 합의할 수 있는 중재안이 나온다면 함께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노조의 공식 입장이라면 참여하겠다."

- 이 사장은 지난 7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매월 월급을 1원만 받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뿌리경영론'인데, 요즘도 그 원칙은 지켜지고 있나.
"월급이 부담스럽게 많아 1원씩 받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첫 급여가 510만~520만원 수준이었다. 그때 그렇게 다짐한 것은 철도에 관계되는 모든 이해 당사자에게 호소와 항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해 당사자에는 정부와 노조, 협력회사나 유관기관, 철도공사 간부들, 언론과 국민들이 모두 포함된다. 부임 이후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너무 힘들다. 얼마 전에 건강검진을 했더니 엄청 늙었더라.

철도공사 구조를 보니, 간부들이 거의 대부분 한 번도 책임과 권한을 행사해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자기의 책임이 뭔지, 권한이 뭔지 모르고, 뭐가 됐든 행사하지 않는 게 가장 유리하다는 인식이 체질화 돼 있었다. 나는 마치 딴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철도공사에서 업무를 처리하면서 공식적으로 틀렸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전반적으로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가장 좋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뭘 물어봐도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노조를 중심으로 자기의 이해관계나 지위변동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가 직원들을 나쁘게 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어떤 아이디어만 내도 '저게 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따져봐서 발칵 일어난다. 예전에 주물공장 없앨 때도 무척 힘들었다. 진폐증 위험도 있고, 한겨울에도 영상 50도를 넘는 주물공장에 제발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쓰는 식이었다. 노조는 직원들 입장에서 대변할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주물공장 사람들이 충분히 교육 받고 다른 현장으로 가서 너무 만족스러워 한다. 여승무원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아예 <오마이뉴스>가 객관적으로 KTX관광레저로 옮긴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 해달라. 아마 근무만족도가 예전보다 훨씬 높다고 나올 것이다."

'뿌리경영론' 주창해도 입 꽉 다문 철도공사 간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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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 아쉬움은 없나.
"대정부관계와 노사관계가 제일 어려웠다. 정부는 철도를 너무 홀대했다. 철도인이나 철도공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철도 자체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대우를 해야 한다. 철도공사는 방만한 경영의 대명사인 늘 형용사가 붙어 있었다. 부패와 무능 등으로 말이다. 철도는 도로와 달리 많은 투자로 훨씬 더 큰 효율성을 나타낼 수 있다.

다만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정부가 철도에 투자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미국 유학파, 미국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미국은 도로나 항공 중심이다. 그런 미국도 철도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자동차관계 회사, 건설회사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 앞으로는 철도에 많은 투자와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 정동영·김근태 등 전·현직 열린우리당 당의장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빼고 만드는 신당 창당에 합의했다는데.
"철도공사 사장이 아닌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말하자면, 갑자기 지금 와서 신당파니, 사수파니 하는 그 자체가 대단히 안타깝고 걱정된다. 진짜 걱정할 것이 있다면 모두 함께 걱정하고 책임져야지 누가 누구에게 돌팔매를 던질 수 있는 것인가 싶다.

역사와 국민 앞에 겸허히 반성하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하면 함께 그 방법을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나는 책임이 없다, 나는 어느 한쪽의 입장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모두가 죄인이라고 본다. 오히려 책임이 더 큰 분들까지도 합쳐 '더 큰 우리'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철도공사 사장 이후엔 무엇을 할 생각인가.
"정치를 시작할 85년에도 내 선택으로 된 것은 전혀 없다. 항상 주어진 사회적 의무에 응답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정치하는 게 더 명예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투를 쓰겠다는 생각은 없다."

- 한국 사회에서 정치·사회적으로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역할은 뭔가.
"정치를 시작하면서 줄곧 부패세력이나 군사정권, 인권유린집단과 같이 하자고 한 바는 없지만 항상 다수와 연대하고 연합하고, 우리의 입지를 넓혀가는 연합파였다. 그 당시에는 양김, 성공하지 못했지만 후보단일화 운동의 주축이었고 야권 통합파의 주역이었다. 집권의 기반을 그것 때문에 잡았다고 본다.

2002년 대선 때도 후보단일화의 주역이었다. 단일화, 통합노선을 견지해왔다. 앞으로도 그게 옳다고 본다. 정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선명한 기치를 버려서는 안되겠지만, 다수를 우리와 함께 나가도록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소위 돌출행동이랄까, 자신만을 고집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을 만들어내는 올바른 수단은 아니다. 정치에 복귀한다면 연합의 역할을 저절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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