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될까봐..." 암환자 외면한 동네치과

잘못된 편견이 암환자 두 번 울려...전문의 "암은 전염 안돼"

등록 2007.01.04 16:24수정 2007.07.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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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현대인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암. 하지만 여전히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냉랭하다

현대인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암. 하지만 여전히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냉랭하다 ⓒ 박석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봐도 "암이 타인에게 전염된다"는 말은 없었다. "암은 결코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의인 노영주(울산대학병원 두경부종양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역시 "암은 치료과정이나 침, 음식물 등으로 남에게 전염되거나 전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정작 암환자들을 대하는 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편견으로 가득차 있고 냉랭하다. 심지어 암이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일부 의료인들 역시 예외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건강하시던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입천장 쪽에 암이 발생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청천벽력과도 같았지만 의료진을 믿고 차분히 대처해 나가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본격적인 방사선 치료를 받기에 앞서 일반의원에서 치아 치료를 받아야 했는데, 한 간호사에게 '암이 전염된다'는 황당한 얘기까지 듣게 됐다.

종합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BRI@수원 큰형님댁에 함께 사시는 아버지가 지난 11월 생신 때 작은아들집인 울산으로 오셨다. 울산에 가끔 들르시는 팔순 아버지, 걸음걸이가 나보다 빠를 정도로 건강하셨다.

그런데 11월에 오셔서 "입천장이 따갑고 아프다"고 하셨다. 평소 건강하신 터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버지 혼자서 동네 의원에 다녀오시더니 "암일지도 모른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고 하셨다. 그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내 불찰이 크다.


울산에서 일주일을 지낸 아버지는 다시 수원으로 가셨고, 수원의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수원 병원에서 "악성종양일 가능성이 있으니 3차 의료기관에 가라"고 하더란다. 평소 맞벌이를 하면서 아버님을 모시는 큰형님댁을 생각해 울산으로 모셨다.


울산에서 가장 큰 울산대병원에서 며칠 걸려 CT 촬영 등을 한 결과 "암이 맞다"는 진단을 받았다. 천만다행으로 검사 결과 입천장 특정부위 외에는 암이 전이된 곳이 없다고 했다. 6주 정도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울산대병원 이비인후과에서 방사선진료과로 옮겨 앞으로의 자세한 치료 일정을 설명들었다. "입천장 부위에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치아를 2년간 손볼 수가 없으니 가까운 치과에 가서 치료할 것은 치료하고 뽑을 이빨은 뽑으라"는 전문의 설명이 있었다.

전문의는 "이곳 대학병원은 예약하고 치료하는 데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리니 가까운 동네 치과에서 치료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줬다.

여러 가지 검사 등 절차로 벌써 보름 이상 본격적인 치료도 시작 못한 채 시간을 보낸 터라 한시가 급했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동네 의원을 찾았다.

치료 중 위험하다? 암은 전염이 된다?

내가 사는 울산 동구 화정동에는 다닥다닥 붙어 있을 정도로 유난히 치과가 많다. 지난 30일 아버님을 모시고 그 많은 치과 중 먼저 눈에 들어온 ㄷ치과로 갔다.

접수할 때 대학병원 전문의가 설명한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고 진료를 기다렸다. 간호사의 지시대로 치료대에 앉아 한참을 기다리자 치과의사가 나왔다.

나는 옆에 선 채로 의사에게 다시 이 과정을 설명했다. 진료하던 의사는 "이빨을 몇 개 뽑을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접수대에 있던 간호사와 한참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어 간호사는 "여기서는 치료 중 위험할 수 있으니 울산대병원에 도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울산대병원에서 가라고 해서 왔다"고 해도 의사와 간호사는 이미 치료하지 않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난감했다. 한시가 급한데, 대학병원 전문의가 치료를 완료하고 오라고 했는데, 걱정이었다. 다시 바로 앞에 있는 ㅇ치과로 갔다. 이곳에서 다시 접수했다.

간호사가 이것저것 묻다 "왜 방사선 검사를 받나"고 했다. 앞 치과에서의 일이 생각나 망설여졌지만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아버님이 대기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간호사가 보호자인 나를 부르더니 "암은 전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를 할 수 없다"며 "기왕 오셨으니 의사선생님에게 보여는 주자"고 했다. 불쾌감이 밀려와 아버님 얼굴을 살짝 쳐다보니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고 계셨다.

'암은 전염되는 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여기도 똑같네요. 대학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치과에 왔는데 너무하네요"라고 항의하자 간호사는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에도 의사는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버님을 모시고 치과 문을 나서면서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대학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했는데 왜 치료를 할 수 없나?' 하는 의아심이 밀려왔다.

전문의 "암은 치료과정에서 전염되지 않아"

아버님께는 "연휴가 끝나는 대로 울산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자"고 안심시킨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다. "암은 전염되는가?"하는 네티즌들의 질문에 전문의들의 답은 한결같이 "암은 전염되는 병이 아니다"라는 것.

연휴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2일 아침부터 울산대병원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전문의와 간호사는 "암은 전염이나 전이되는 것이 아니다. 치과에서 이빨만 뽑고 치료하면 되지 암을 치료하라는 것도 아닌데 이해할 수 없다"며 "지난 수년간 70대 노인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빨을 뽑고 치료하고 왔는데…"라며 난감해 했다.

이어 "암이 전염되거나 치과 치료 중 위험하면 우리는 왜 치료를 하겠나. 고발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고 분개했다.

그러더니 대학병원측은 다른 치과에 가보면 어떨지를 물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이제 일반치과에 대해 두려움마저 갖고 계셨다. 창피함, 두려움, 바라보는 시각 등이 환자 본인에게 더 큰 상처로 다가왔다. 암도 암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쩔 것인가.

이런저런 상담으로 다행히 울산대병원은 사정을 감안해 한 달 걸릴 치과 진료를 며칠 내에 해주기로 했다.

환자도 다 들은 얘기가 그냥 말실수?

'암은 전염될 수 있다'던 ㅇ치과에 다시 전화했다. 당시 담당 간호사는 "암이 전염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고, 단지 치료 중 환자의 목에 전이될까 봐 한 말이다"며 "전염된다고 한 것은 말실수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치과에서 치료받던 환자가 갑자기 위험해져 응급차에 실려간 사례가 있어 그랬다"고 해명했다.

환자도 다 들은 말을 '말실수'로 봉합했다. 이에 대해 울산대병원 전문간호사는 "이빨을 뽑거나 치료하면서 환자의 다른 부위에 전이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치료를 해주지 않았던 ㄷ치과에서는 "연세가 있어 위험할지도 모르니 안전한 병원에 가서 치료하라는 취지"라고 밝혔다.

일련의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나이에 대한 편견, 의료인들의 암에 대한 편견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자신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하는 반성도 들었다.

이 같은 경우를 얼마나 많은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었을까.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고 선서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과연 꿋꿋이 지켜질 것인가? 팔순 노인 앞에서 과연 의료인들은 "암은 전염이 되기 때문"이라고 해야만 했을까.

아버님은 예정대로 울산대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잘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히포크라테스선서'를 지켜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sisaulsan.com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sisaulsan.com에도 보냅니다
#암 #암환자 #울산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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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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