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서 30대로... 2007년 새해 첫날 일기

가족과 함께 한 따뜻한 연말연시의 일상

등록 2007.01.02 21:27수정 2007.01.0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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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말 부모님과 일출을 보러 정동진 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연말은 가족과 함께'라는 구호를 3년째 외치고 있는 중이다.

'무시무종'이라했건만 여자에게 있어 스물아홉과 서른은 분명 감이 다르다. 부모님께서 살고 계신 정읍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20대에서 30대가 되어 버렸다. 두려움과 부담감을 편안함과 설레임으로 전환시켜 주었던 연말연시, '정읍 여행'을 사진으로 정리해본다.

12월 31일 아침, 여전히 늦잠을 잤다. 성탄전야부터 시작된 몸살감기가 좀체로 떨어질 생각을 안하고 며칠째 '약기운'에게 탓을 돌리며 느즈막히 일어나던 터다. 2005년 마지막날 점심(봉천동 오케이목장 돼지갈비)을 함께 했던 철도원 은옥언니와 2006년 마지막날 점심(용산 쇠고기 간장떡볶이 세트)도 함께 먹으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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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그리고 2시 10분 용산발 목포행 KTX에 올랐다. 도착까지는 두시간 남짓의 시간. 빠르긴 빠르다. 급한 마음에서 놓여났다. 점심을 많이 먹고 감기약까지 먹은 탓에 논산역까지 줄곧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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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내가 좀 심하게 꾸벅 거렸나? 옆좌석의 꼬마가 날 계속 쳐다본다. 일어나 잡지를 들척이며 약간의 설렘을 느낄 무렵, 신태인역을 스쳤다. 벌써 정읍이다. 재작년에 6개월 가량 정읍에 살았지만 그 유명하다는 내장산 단풍은 본 일이 없다. 하지만 정읍의 농산물 브랜드 '단풍미인'을 보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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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며칠전 '폭설'소식에 집에 전화를 걸어 "닭은 무사하냐"고 했던 무심한 딸. 정읍역 플랫폼은 아직도 눈이 소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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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역광장에서 사진을 한 컷 찍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전화를 걸자 부모님은 근처 시장에 계신다고 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부모님은 지난해 5월 수십년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의 고향인 정읍에 내려가 살고 계신다.

유난히 술을 좋아하시는 아버지. 난 어린시절부터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미워했었다. 문득 술만큼도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나에 대한 반성이 밀려왔다. 저기서부터 환한 웃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괜히 가슴이 짠하다. 이제 두 분도 '노부부'테가 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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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환하게 인사하고 바로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부모님. 내가 성질급한 거 다 부모님 닮아서다. 부모님댁은 정읍시내에서 버스로 30분 가량 걸리는 칠보면 원제마을에 있다.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한 대씩 온다. 금새 버스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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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아직 눈이 덜 녹아 온 사방이 흰 빛이다. 집에 들어서니 벌써 어둑어둑해진 저녁시간. 따뜻한 안방에 누워 딩굴거리면서 설핏 잠이 들었는데 저녁 밥상이 들어왔다. 장에서 사온 싱싱한 갈치구이와 잡채, 엄마표 김장김치들이 너무 맛있다.

부른 배를 안고 저녁내 티비 앞에서 멍하니 연말 시상식이며 타종식을 보다가 안방에서 세 식구가 오랜만에 함께 잠들었다. 가족이란 그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나보다. 엄마는 주무시다 한 번씩 식혜를 보러 주방에 왔다갔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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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2007년 1월 1일, 시골의 겨울은 참 심심하다. 매일 아침 생생하게 '나 이만큼 자랐어요'하는 텃밭의 푸성귀도 없고 너른 닭장의 닭들도 천천히 움직인다. 새벽운동 나가시던 아버지도 해가 중천에 떠서야 나가신다. 흐드러지게 은행잎을 달고 있던 은행나무도 을씨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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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우리집의 잘 생긴 수닭. 앞을 지나가는 녀석이 알 잘 낳는 암탉이다. 그녀석이 알 낳고 있는 현장. 원래 여성들이 한 달에 한 번 예민해지는 것처럼 이럴 땐 녀석들도 무척 민감하다. 가까이 가지 못해서 사진이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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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푸짐한 아침을 먹고, 밤새 완성한 식혜를 맛보았다. 엄마가 만든 식혜는 최고로 맛있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엄마랑 수다를 떨다가 지금쯤 알나올 시간이니까 나가보라고 하셨다.

처음 시골살이를 하시는 엄마는 아직까지 모든 게 잘 적응이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소소한 생활의 즐거움들을 가르쳐주시는 모습이 벌써 '시골아낙'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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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1월 1일 아침, 내가 거둔 따뜻한 달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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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우리집 마당은 '리싸이클링 아트숍'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집 가까이 냉장고 형 신발장, 장롱형 농기구 수납장이 있다. 그 앞에 걸린 시래기들이 색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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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재작년에 내방에 있었던 모니터와 TV.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대형으로 마당 한구석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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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닭들은 너른 공간에서 뛰어놀고, 유기농 야채를 먹으며 매일아침 유정란을 낳는다. 그 안의 닭집도 장롱 한 칸을 개조해 아버지가 손수 만드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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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마당에서 부모님과 이야기 꽃을 피우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오셨다. 엄마가 잡채랑 식혜 먹자고 불렀단다. 벌써 엄마는 동네아줌마들이랑도 친해졌다. 성순네(가운데) 어머니가 한 달 된 강아지 '재동'이를 선물로 들고 오셨다. 좋아라 하는 엄마. 새해 첫날 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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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내품에 안겨있는 녀석. 작고 귀여워 놓아 줄 수가 없었다. 재동이의 멋진 외모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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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집 한 켠에 재동이의 집이 급조 되어 마련되었다. 우리 아빤 맥가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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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민희

새해 첫날 오후부터 보슬보슬 비가 내렸다. 비를 맞고, 마당에서 뛰어 놀던 '재동이'. 녀석의 집은 금방 흙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더없이 자유로운 강아지의 몸짓이 맘에 들었다. 간밤, 재동이는 '끙깽'거리며 엄마를 그리워했다.

1월 2일, 아버지는 새벽부터 재동이 보러 현관을 들락이셨다. 아침을 서둘러 먹고, 서울 올라올 채비를 하던 나는 재동이마냥 부모님곁에 '조금 더' 있고 싶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KTX를 타고 내려갔던 마음은 좀 더 고향으로 떨어지기 싫었던가보다.

하지만 서른이 아닌가 좀 더 여유롭게 내 마음을 보둠고 12600원 짜리 일반 고속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2시간 반만에 올라왔다. 다음부턴 마음이 급해도 일반고속 타리라.

홍은동 집에 도착해 집에 잘 도착했노라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싸주신 것들을 정리하고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다. 따뜻한 방에서 맛난 것들 먹은 덕에 감기도 어느덧 나아간다. 하지만 괜한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제 서른이다. 다시 서울, 혼자다. 올해는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겨가는 해. 그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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