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된다는데...나도 낳을까"

황금돼지해를 맞은 여성들의 속앓이

등록 2007.01.03 13:35수정 2007.01.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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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황금돼지해에 관한 이런저런 말들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황금돼지띠 아이를 낳으면 부자로 산다는 말이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해도 모두가 좋다고 하는데 혼자만 부정하려니 뭔가 불안하다.

그렇다고 좋은 운만 믿고 결혼, 출산과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하려니 미련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황금돼지해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젊은 남녀들의 웃지 못할 고민에 대해 들어본다.

새해 1월 10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은미(29·금융회사 직원)씨는 결혼을 앞두고 즐거운 고민에 빠졌다. 그 고민은 다름 아닌 2세 계획. 김씨는 어차피 낳을 아기, 모두가 좋다고 하는 황금돼지해에 낳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반면, 예비 남편은 조금 미뤘다가 미국으로 유학 갈 때 아이를 갖자는 입장이다.

김씨는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볼 때 남편의 말이 더 합리적이긴 하지만 감정적으로는 황금돼지띠에 맞춰 아이를 출산하는 것에 더 끌린다"고 털어놓는다.

"점을 봐도 올해 아이를 낳으면 아이 사주에 재물운이 강하게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닐까요?"

지난해 3월 결혼한 김지나(가명·31)씨는 황금돼지해를 맞아 시댁으로부터 임신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베이비붐이 일 때 출산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부모의 입장은 확고하다. 임신에 도움이 된다는 보약까지 지어주며 황금돼지띠 손자를 기다리고 있다.

"당장 사립 초등학교에 넣으려 해도 경쟁률이 치열할 테고, 대입 시험을 볼 때도 다른 해보다 2배 3배 어려울 수 있는데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해요. 하지만 어른들은 궁합, 띠별 운세, 사주 같은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곤란하네요."


올해 서른이 되는 이모씨는 미국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유학을 가려면 늦어도 서른 초반에 실행해야 한다는 HR 컨설턴트의 조언이 유학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황금돼지해는 출산하기에는 적기지만 결혼을 하기엔 좋지 않다는 말도 신경이 쓰였다.

"사실, 결혼을 할까 유학을 갈까 망설였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올해가 과부띠라고 하더라고요.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자꾸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찜찜해요."


한편 미혼인 김헌화(28·대학원생)씨는 황금돼지해를 맞아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할까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쌍춘년이라고 상당수의 친구들이 결혼을 했고, 올해엔 또 황금돼지해라고 많은 친구들이 출산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혼자만 정상 범
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는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생긴 것.

김씨는 "지난해 유난히 결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심란했는데, 올해 출산하는 친구들까지 많아진다고 생각하니 나도 속도를 맞춰 결혼, 출산 코스에 진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쌍춘년, 황금돼지띠 등이 근거 없는 이야기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독신자들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심리컨설턴트들은 좋은 운세를 타고 났다는 기대감이 오히려 심적인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며 개인의 상황에 맞는 신중한 선택을 할 것을 강조한다. 박상희 여성 전문 심리컨설턴트는 "올해는 좋은 운을 상징하는 황금과 돼지가 한꺼번에 들어가다 보니 사람들의 특별한 기대감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며 "좋은 운에 대한 기대감은 정신적으로 약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 도피의 판타지를 제공해 운세에 대한 의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금 돼지해…설렘도 금빛
출산·결혼·금융·유통시장...벌써 적극적 마케팅 돌입

6백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해. 정확한 유래나 정설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황금돼지 신드롬이 불고 있다. 결혼, 금융, 유통시장에서는 벌써부터 '황금돼지띠 마케팅'이 활발하다.

황금돼지띠 아이를 낳으면 재물운이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2005년 연말부터 결혼식장이 만원을 이루었다. 2007년 2월 17일까지 음력으로는 쌍춘년에 해당돼 최근까지도 예식장은 막바지 결혼식을 올리려는 커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쌍춘년에 결혼해 황금돼지해에 출산을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커플들도 적지 않은 것.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앓던 산부인과도 오랜만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유명 산부인과들은 2007년 중반까지 예약이 꽉 찼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H산부인과에는 최근 들어 출산을 원하는 여성들의 상담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H산부인과 관계자는 "새해에 출산하기 위해 산부인과 상담과 검진을 받는 여성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새로 등록한 산모들의 출산 예정일을 살펴보면, 예상 출산율이 작년 대비 30~40%나 증가해 황금돼지해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후조리원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양천구 목동 S산후조리원 관계자는 "예약과 비용에 대한 상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쌍춘년에 결혼한 젊은 부부들의 증가와 황금돼지띠에 대한 기대감이 이 같은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아용품과 액세서리 제조업체도 황금돼지 신드롬에 발 빠르게 대응하면서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제조업체들은 이미 황금돼지 휴대전화 액세서리, 저금통, 달력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으며 유아용 의류 업체들은 돼지가 프린트된 유아복을 시판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베이비샤워(순산을 기원하며 친구, 친지들이 출산 용품을 선물하는 축하 파티) 패키지 이벤트를 열고 있다.

한편 사주카페, 점집 등에도 황금돼지해에 결혼, 출산 등을 계획하고 있는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총각도사 장주억씨는 "원래 연말이면 새해 운세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매출이 70~80% 이상 증가하는데 올해는 황금돼지해와 관련해 결혼과 임신 운세를 물어보는 여성들이 유난히 많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황금돼지 신드롬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황금돼지띠의 속설, 특징과 관련된 정보를 카페에 업데이트하는가 하면, 다른 회원들과 황금돼지해에 하면 좋은 것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특히 새해에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 엄마 네티즌들은 ‘예비맘(황금돼지띠) 이야기’, ‘2007년 돼지띠 아가 엄마들의 모임’ ‘황금돼지띠 우리 아가를 위한 자료’ 등 황금돼지해를 기다리는 예비 부모 모임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황금돼지해에 맞춰 임신,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역술인들은 최근 황금돼지해의 의미가 너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역학박사 조규문씨는 “2007년 정해년(丁亥年)의 ‘정’은 붉은색을 의미하고, ‘해’는 돼지를 나타내는데 붉은 돼지가 황금 돼지로 불리는 것 같다”며 “입춘이 두 번 있는 쌍춘년과 정해년은 정해진 순서에 의해 돌아올 뿐, 특별히 좋다고 말하는 것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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