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의 공자상은 무얼 보고 있나

[자유공원에서 되돌아보는 한국 근현대사 ③] 청국의 귀환

등록 2007.01.06 14:50수정 2007.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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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의 경계.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의 경계이기도 합니다.
자유공원과 차이나타운의 경계. 과거와 현재, 미래와 현재의 경계이기도 합니다.이희동
자유공원의 패루를 통과해 차이나타운에 접어들면서 기자가 가장 먼저 떠올렸던 건 우리 사회에서의 화교의 위치였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서, 다른 국가의 화교들과 가장 다른 대우를 받았던 이 땅의 화교들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근대와 소수자


대한민국에서 소수자로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끼리는 '정' 운운하며 사람 냄새가 난다고 자화자찬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너와 내가 같은 울타리 속에 포함될 때의 이야기일 뿐, 그 범주를 벗어나면 다른 어느 사회보다도 심한 차별을 받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나 성적 소수자, 군 면제자,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등은 아직까지도 사회의 편협한 정상-비정상 기준에 의해 백안시당하는 대표적 소수자들이다.

곤궁했던 화교들의 삶.
곤궁했던 화교들의 삶.이희동
이런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근대적 의미로서 '우리'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결국 소수자라 함은 보편적으로 규정된 '우리'를 제외한 나머지의 개념이며, 그것은 푸코가 언급했던 근대적 의미의 정상-비정상 규정짓기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인식에는 우리 사회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우리'라는 개념은 결국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의미로서 '우리'의 탄생은 결코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비록 우리는 '단일민족'의 신화를 배우며 우리 민족의 고유함을 운운하지만 과거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언어조차 쉽게 통하지 않는 관계였으며,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사람들 정체성의 주요 근간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문중이요, 지역사회였다.

외부의 적이 존재하면 내부는 통합된다는 만고의 진리대로, 지금과 같이 국가나 민족을 전제로 한 '우리'는 외세 열강의 침략에서부터 시작해 일제 식민지,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비로소 형성된 개념이다. 밖으로부터 시작된 근대의 충격으로 인해 우리는 시대적 대세로 어쩔 수 없이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었으며, 근대화의 최소 인자인 '우리', 즉 민족, 국민 개념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은 새로 구성된 '우리'에게 중요한 특성을 부여하였다. '우리'는 외부침략에 대응한 자기방어의 기제인 만큼 그 구속력이 매우 강했으며, 그만큼 '우리' 밖 타자에 대한 배려의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그 어느 사회부터 강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소수자에 대한 편견 역시 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단일민족'의 신화를 강조하는 만큼 '살색'에 대한 편견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이와 같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 및 차별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가 안정되고 개인화 되면서 사람들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우리'에서 제외된 소수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극우파의 재등장이라는 유럽의 고약한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록 경제 등이 나빠져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또다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어쨌든 현재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차차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소수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같을 수만은 없다. 장애우에 대한 눈길과 동성애자에 대한 눈길이 다르듯이, 소수자에 따라 그 인식의 변화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결국 소수자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사회문화적인 개념인 이상, 각자 다른 사회적 위치를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자가 자유공원을 지나 차이나타운을 들어서면서 떠올렸던 화교는 아마도 그 소수자 중 인식변화가 매우 개선된 경우일 것이다.


소수자로서의 화교

화교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은 아직까지 현재진형형입니다.
화교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은 아직까지 현재진형형입니다.이희동
짜장면과 인천 자유공원 옆 차이나타운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의 화교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이다. 그들을 '소수자'라고 명명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부를 대부분 소유하는 극소수를 굳이 소수자라고 표현하지 않듯이, 소수자라는 단어에는 사회적 차별이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소수자로서 화교들은 이 사회에서 차별을 받는 대표적인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모순을 비교적 명확하게 투영하고 있는 우리 내부 속의 주요 타자인 것이다.

구한말 때부터 한반도에 본격적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중국인들은 개항장이었던 인천에 여느 다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공간과 문화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미주나 유럽대륙과는 달리 문화적으로 친숙하고, 조선 자체가 청 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아마도 당시 한반도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각광받는 이민지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은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가 한반도에서 퇴출되면서 변하기 시작하였고 중일전쟁 이후 더욱더 급변하게 되었다. 식민지 본국인 일제의 탄압도 탄압이었지만 그 뒤로 해방정국과 한국전쟁, 냉전, 급격한 산업화 등 험난한 역사를 거치면서 탄생한 '한국인'의 배타성이 그들의 삶 자체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배타성은 당시 해외로의 자본유출을 꺼려했던 군사독재 정부의 정책 등과 맞물려 화교들의 삶을 더욱 위축시켰다. 예컨대 짜장면은 정책적으로 아직까지 가장 싼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한국은 전 세계에서 화교가 부를 모으지 못한 유일무이한 사회로 유명해진 것이다.

이 땅에 터전을 잡은 이상, 화교의 삶 역시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 터전을 잡은 이상, 화교의 삶 역시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이희동
'단일민족'을 끊임없이 되새기면서 '우리'와 다른 존재는 처절하게 구별하고 차별하는 사회. 결국 화교에게 가해지는 차별의 폭력성은 근대를 왜곡된 모습으로 체화시킨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달라지는 화교의 위상과 청국의 귀환

차별이 심했던 우리 사회의 화교에 대한 인식은 최근 들어 바뀌고 있다. 사회가 개인화되고 국제화되면서 사람들에게 나와 다른 이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화교의 경우에는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킨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중국의 발전. 과거 청국의 귀환이다.

이곳이 차이나타운임을 보여주는 제1패루(하)와 제2패루(상)
이곳이 차이나타운임을 보여주는 제1패루(하)와 제2패루(상)이희동
자유공원에서 차이나타운으로 접어들면서 통과해야 했던 패루는 달라진 중국의 위상을 상징한다. 현재 차이나타운에 세워져 있는 세 개의 패루는 인천의 자매시인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시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교류협력의 상징이 아니다. 패루에는 IMF 이후 해외자본, 특히 화교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현재 우리 사회의 열망이 투영되어 있으며, 또한 전 세계의 화교를 근거지 삼아 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려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반영되어 있다.

최근 인천시가 자유공원 정상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을 과거의 '만국공원'으로 복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다양화되고 국제화되면서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사회의 움직임인 동시에, 미국의 자장을 뛰어넘어 다국적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특히 그 중 화교자본은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는데, 그 모습이 현재 자유공원에, 차이나타운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슬픈 현실이지만 결국 맥아더 동상을 자유공원에서 쫓아내는 주체는 사상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에 대한 열망이다.

요컨대 자유공원에 들어서기 전 홍예문이 과거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였다면, 자유공원 정상에 서 있는 맥아더 동상은 현재 우리 사회에 전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을 상징하며, 자유공원 끝자락에 서 있는 패루는 한반도에 대해 점차적으로 그 영향력을 늘여가고 있는 중국을 상징한다. 따라서 자유공원에는 한반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일본, 미국, 중국과 얽힌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것이다.

관광특구 차이나타운

아직까지 현재 진형형인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
아직까지 현재 진형형인 일제의 식민지 근대화.이희동
땅거미가 질 무렵 패루를 통과한 이후 꽤 어두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해서 차이나타운을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균질할 한국 사회에서 다른 문화를 맛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이나타운은 매력적인 공간이었기에 나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패루를 지나 차이나타운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나를 잡는 건 중국군 복장을 한 어느 음식점의 삐끼였다. 중국의 이미지를 팔아먹는 그곳.

음식점으로 가득한, 빨갛게 이미지화 된 차이나타운의 거리.
음식점으로 가득한, 빨갛게 이미지화 된 차이나타운의 거리.이희동
붉은 색깔과로 이미지화되는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을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진정한 대한민국 화교들의 삶이 펼쳐지기보다 화교처럼 보이려는 화교들의 삶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너무 친숙한 화교보다 더 화교다운 모습으로. 아마도 차이나타운이 관광특구로 지정된 이상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으리라.

2000년 인천 중구를 관광특구로 지정하면서 차이나타운을 부랴부랴 정비했었기 때문인지 차이나타운은 전체적으로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물과 기름 같이 섞여 있었다. 차이나타운 곳곳에는 과거 차별을 받으며 곤궁한 일상을 영위했던 화교들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자본 유치를 위해 자본을 덧칠한 흔적 역시 곳곳에 남아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초라한, 세련되었으면서도 조악한 차이나타운의 모습.

짜장면이 가장 먼저 개발되었다는 '공화춘'을 비롯해서 차이나타운 거리의 모든 가게는 거의 대부분 음식점이었다. 말 그대로 중국음식점. 그러나 느끼하고 달콤한 중국음식 고유의 냄새는 슬픈 그들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 많은 중국음식점들은 결국 중일전쟁을 계기로 모든 상권을 일제에게 빼앗긴 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화교들의 궁여지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중국어 학원은 이 땅의 화교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편입니다.
중국어 학원은 이 땅의 화교가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편입니다.이희동
청국 지계와 일본 조계의 경계.
청국 지계와 일본 조계의 경계.이희동
한편 중국음식점이 과거 화교들의 삶의 방편이었다면, 현재에 와서는 새로운 삶의 방편들이 차이나타운을 잠식해 들어가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국어 학원이었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중국어. 그것은 분명 화교들에게 좋은 기회였을 것이고, 때문에 차이나타운 곳곳에는 중국어 학원의 간판들이 붙어 있었다.

이만 차이나타운을 나서려는데 길 한 가운데 자리 잡은 계단이 눈에 띄었다. 설명을 읽어 보니 과거 일제 조계와 청국 지계의 경계 역할을 했던 12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경계계단이란다. 차이나타운을 재개발 하면서 신경 좀 썼다더니 계단을 경계로 좌우측의 석등이나 거리 짜임새가 각각 청국과 일본식으로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계단 꼭대기에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공자 상이 서 있었다. 언덕배기의 끝에서 인천항을 바라보고 있는 공자의 모습.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상이었다. 저 휘황찬란한 불빛과 끝없이 움직이고 있는 항만의 기계들이 공자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인천항을 바라보는 공자상의 뒷모습.
인천항을 바라보는 공자상의 뒷모습.이희동
이만 인천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연찮게 그곳은 삼국지의 거리였다. 거리의 벽이 온통 '삼국연의'의 내용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결국 중국하면 삼국지를 떠올리고 마는 우리들의 상상력 부재의 결과이겠지. 차라리 그곳에 중국인민혁명의 주역이었던 마오쩌뚱이나 주은래, 덩샤오핑 등등을 기술해 놓았으면 어땠을까? 현재의 중국과 진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2000년 전 삼국지보다 50여 년 전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인천역은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과거 이 땅에 서구 근대문물을 수입했던 시발점 치고는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그곳을 또 여러 핑계로 화려하게 개발한다고 하니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개발이 전부가 되어 버린 이 시대가 과연 정상일까?

전철에 오른다. 비록 동인천에서 구로까지 매일 타는 전철이었지만 근대의 시작이었던 인천역에서 오른 전철의 느낌은 새로웠다. 과거 이곳에서부터 한성까지 상상도 못한 괴성을 내지르는 열차에 몸을 실었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이렇게 나의 인천 자유공원 여행기는 끝을 맺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유포터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에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본문의 '짜장면'은 어법대로라면 자장면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과 규약이 충돌할 때는 화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현실 그대로 표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짜장면과 자장면은 단순히 어감의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BS 유포터 블로그에도 게재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작성한 글에 한에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본문의 '짜장면'은 어법대로라면 자장면이 맞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과 규약이 충돌할 때는 화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므로 현실 그대로 표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짜장면과 자장면은 단순히 어감의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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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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