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사는 사람은 휴대폰도 못 쓰나

통신회사의 서비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등록 2007.01.10 01:46수정 2007.07.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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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추운 밤입니다. 영하 20도는 되는 느낌입니다. 밤하늘 별자리 보러 나갔다가 얼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요즘 같은 겨울 날씨는 춥지만 별 보긴 좋을 때입니다.


별자리를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아는 건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오리온자리 그런 정돕니다. 내가 사는 마을은 하늘이 넓지 못하니 별자리를 안다 해도 소용없는 곳입니다.

불통인 휴대폰, 시계로도 활용하지 못해

a 오지에 사는 저에게 휴대폰은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오지에 사는 저에게 휴대폰은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오죽하면 정선아라리 가사에 산과 산 사이에 빨랫줄을 걸면 정선읍내 사람들 옷 다 걸겠다는 가사가 있겠는지요. 가리왕산 자락의 하늘은 북두칠성도 다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만큼 좁습니다. 그저 비슷하게 생긴 별자리가 있으면 저것이 북두칠성이구나, 라고 짐작할 뿐이지요.

이곳은 휴대폰이 되지 않습니다. 별자리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통화를 할 수 없는 휴대폰은 시계로도 활용하지 못합니다. 시계가 안 되니 잠을 깨워주는 알람으로도 사용하지 못합니다. 어쩔 수 없이 얼마 전에 알람시계를 샀습니다.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그 불편함이라는 게 말도 못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전화를 할 것 같아 수없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휴대폰에 중독된 것이었지요.


휴대폰이 되지 않으니 집만 벗어나면 전화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집 전화를 들고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 집에 있어도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하면 통화가 불가능한 동네입니다. 마당에만 나서도 먼 길 떠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떨 땐 하루 종일 밖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전화를 해결하기 위해 물었더니 집 전화로 착신전환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한 달에 500원이라는 비용이 듭니다.


휴대폰이 안 되니 누군가 집 전화로 전화한다고 하면 진 빠집니다. 전화기 앞에 앉아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일은 단 몇 분이라도 힘겹습니다. 하던 일은 밖에 있는데 몸은 방에 있어야 합니다. 휴대폰이라는 게 얼마나 편했는지 그 고마움을 이곳에 와서 실감합니다.

착신전환 잊어 일주일째 전화 못 받기도

세상에 알려진 게 휴대폰 번호라 더 그렇습니다. 집에서 4km 정도 나가면 통화는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건 아닙니다. 어차피 통화가 되지 않는 곳에 살고 있으니 늘 충전기에 올려놓고 지냅니다. 그러니 어떤 때는 보름이 넘도록 휴대폰을 만져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다 충전기에 없으면 어딜 갔는지 한참 찾아야 합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휴대폰이니 모든 주머니를 뒤져야 합니다.

통화를 하기 위해 작심하고 읍내에 가지고 나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 착신전환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젠 집 전화까지 먹통이 됩니다. 그렇게 일주일 내버려두면 답답한 사람이 우물판다고 상대가 전화 안 받느냐며 그 사연을 메일로 보내기도 합니다.

메일을 받고서야 일주일 전 외출했다가 착신전환을 하지 않은 사실을 압니다. 아무리 전화벨이 울리지 않는 인생이라 하지만 나름의 사연이 있는 삶이니 세상과의 소통 구조는 열려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잊은 겁니다.

통화도 안 되는데 기본요금 내야 돼?

착신전환을 하려면 차를 타고 골짜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안테나가 서는 지점에 가서 집 전화로 착신을 시킨 이후라야 통화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 정선 가리왕산 골짜기에 이사를 오면서 휴대폰 회사인 KTF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가 안 되는데 기본요금을 내야 합니까?"
"당연히 내야 합니다. 한 달 중에 한 번이라도 사용할 거 아닙니까?"

회사측에서 내게 되려 그렇게 따져 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사용하긴 했습니다.

"거봐요, 그러니 기본요금을 내야 하는 겁니다."

a 한 달 이용료 15000원, 기본요금 14000원. 과연 기본요금 내야 합니까?

한 달 이용료 15000원, 기본요금 14000원. 과연 기본요금 내야 합니까? ⓒ 오마이뉴스 권우성

회사 직원의 말이 언뜻 맞긴 하지만 그래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고, 시계나 잠을 깨우는 알람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휴대폰을 앞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기본요금은 내야 한다는 겁니다. 한 달 요금은 평균 1만 5000원 정도. 1만 4000원 기본요금 빼면 제가 사용한 금액은 1000원 정도입니다.

TV도 난시청 지역이면 기본요금을 내지 않는다며 따져 물었지만 그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는 답만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기지국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나요?"
"그쪽 지역은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그럼 이대로 살라는 말인가요?"
"지금 상황으로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서비스가 이런 상태라면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그건 고객님 맘대로 하십시오."

이래도 되는 건지요. 나 같은 고객 하나쯤은 사라져주는 게 회사엔 도움이 되나 봅니다. 한 사람의 요구에 의해 기지국을 만드는 비용보다는 사라지는 게 훨씬 이문이 남는 장사인 모양입니다.

고객의 민원을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되는 건지 묻고 싶습니다.

시골에 사는 휴대폰 가입자는 그 자체가 죄?

기업이라는 게 곧 사람이 '돈'인데, 시골엔 가입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마을에 KTF를 사용하는 사람을 꼽자면 세 손가락이면 끝납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해 두는 건 기업윤리 상 도리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불편을 호소한다면 그 불편을 해결해 주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일입니다. 기업을 믿고 통신회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 아니겠는지요. 비싼 기본요금 받고 있으면 뭔가 대책을 세워 줘야 하는 거 아닌지요.

시골에 사는 게 무슨 죄랍니까. 언제까지 푸대접이나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지요.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은 지 벌써 보름 가까이 됩니다. 읍내에도 나가지 않은 셈이지요. 골짜기에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휴대폰은 고물처럼 버려집니다. 그렇다고 휴대폰을 없애기도 쉽지 않습니다.

휴대폰의 마력에 빠진 지 오래 되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없었다면 이 같은 푸념은 늘어놓지 않았을 겁니다. 가리왕산 골짜기보다 더 깊은 오지에 사는 사람도 휴대폰을 사용하던데 KTF는 그런 지원도 거부합니다.

KTF 홈페이지에 들어가 항의 글이라도 남기려 했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비밀번호를 잊었기에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알려준다는 게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답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도 유분수입니다. 이럴 때 'have a good time!'하면 한 대 때려주고 싶습니다.

문자메시지 안 되는 걸 알면서 그러지는 않겠지만 이런 순간엔 화가 더 치밉니다. 가리왕산 자락에서는 휴대폰이 계륵과 같은 존재입니다. 버리자니 아쉽고 가지고 있자니 무용지물인 이 휴대폰을 어찌하면 좋겠는지요?
#휴대폰 #가리왕산 #기본요금 #KTF #통신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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