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 작은 사원에 가네쉬(코끼리 신)를 그리는 여행자왕소희
이번엔 내가 화가 났다. 난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전문가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작업이 끝나고 붓을 씻을 때마다 내 그림을 싹 지우고 싶었다. 완벽한 그림 옆에서 내 그림은 초라해 보였다.
며칠 뒤 한 여행자가 언덕에 올라왔다. 언덕을 구경하러 왔다던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 성벽위에 서서 땀을 쩔쩔 흘리며 그림을 그리는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저기, 이것들 몬순(계절풍에 의한 우기) 때 다 지워질 텐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그려?"
뭐야! 한 달 반 동안 얼마나 힘들게 그림을 그렸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어!
"근데. 왜 여행 와서 일을 하고 있어? 여행을 왔으면 놀아야지."
뭐라고?
"그리고 여기 만든 길도 몬순 때 싹 쓸려 없어질걸?"
잘났다.
억지로 화를 참고 있던 나는 그가 사라지자마자 람에게 물었다.
"몬순 때 그림이 다 지워지진 않겠지? 여긴 몬순 없지?"
"무슨 소리야? 당연히 지워지지. 전부 비에 씻겨 나갈 걸? 게다가 우린 진흙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잖아. 하지만 괜찮아. 내년에 다시 그리면 돼."
괜찮긴! 그럼 뭐 하러 그려! 몬순 때 모든 게 사라진다니!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했다. 나는 붓과 물통을 집어 던지고 바위 그늘 밑에 주저앉았다. 내년이면 내 그림은 다시 진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