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상장 '계약자 것은 계약자에게'

[기고] 김상조 교수-상장자문위 '최종안'에 대한 소회

등록 2007.01.10 17:32수정 2007.07.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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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 가까이 끌어온 생명보험사의 주식시장 상장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상장자문위원회가 생보사의 성격을 주식회사로 결론짓고 최종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는 업계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반발이 거셉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센터 소장)가 이번 최종안의 문제점과 한계, 대안을 짚어봅니다. <편집자주>
a 경실련과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보험소비자연맹 등 4개 시민단체는 8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계약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경실련과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보험소비자연맹 등 4개 시민단체는 8일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계약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문제점①] 국내 생보사의 성격: 주식회사냐 상호회사냐

어느 금융기관의 1975년도 대차대조표 자본계정의 수치이다. 납입자본금 2.0억원, 이익잉여금 ▲4.1억원, 자본합계 ▲2.1억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 회사도 아니고 금융기관이 어떻게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버젓이 영업을 할 수 있나?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 된다. 이 금융기관이 오늘날 자산 100조원의 국내 최대 비은행금융기관이자 세계 20위권의 생보사로 성장한 삼성생명이다.

@BRI@삼성생명의 납입자본금은 1982년 10억원에서 1983년 30억원으로 늘어난다. 주주들이 증자한 것이 아니다. 1983년 4월의 자산재평가 이익 132억원 중 20억원을 주주 몫으로 자본 전입한 것이다. 그럼 나머지 112억원은 계약자에게 돌려주었나? 천만에! 그 중 51억원은 결손보전에 썼고, 나머지 61억원은 아직도 자본잉여금 항목에 남아 있다.

상장자문위(위원장 나동민)의 이른바 '최종안'에도 이 61억원을 계약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한마디로 1983년의 자산재평가 이익 132억원은 몽땅 주주가 꿀꺽한 것이다.(교보생명은 1981년과 1984년에 자산재평가를 했고, 그 이익 전부를 주주 몫으로 자본전입했다.)

국내 생보사는 모두 주식회사로 설립되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주식회사가 맞다. 그러나 자본잠식 상태에서도 주주가 증자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감독당국이 이를 방치한 사실을 놓고 볼 때 주식회사답게 경영되고 감독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1983년의 대규모 결손을 보전한 것은 주주가 아니라 계약자(원래 계약자에게 돌려주었어야 할 자산재평가 이익)였다.

결국 경영상의 위험이 계약자에게 전가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형식적으로 주식회사이나 실제 경영상으로는 상호회사적 성격이 혼재된 혼합회사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다. 이번 상장자문위 '최종안'에서 국내 생보사의 순수 주식회사적 성격을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나동민 위원장이 1999년 금융연구원 주최 공청회에서 토론한 내용이다. (혹시나 해서 출처를 밝힌다. 최흥식(1999.9), <생명보험회사의 기업공개-이익배분을 중심으로>, 한국금융연구원, 66-69쪽에 나동민 위원장의 토론 내용 전문이 실려 있다.)

[문제점②] 내부유보액의 성격: 자본이냐 부채냐


a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앞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관 앞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83년뿐만 아니라 1990년에도 삼성생명은 자산재평가를 했다. 이번에는 재평가 이익 전부를 꿀꺽하지 못했다. 그 중 30%만 주주 몫으로 자본전입하고, 나머지 70%는 계약자에게 돌려주도록 재무부가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70%를 다 나누어주지 않았다. 30%에 해당하는 878억원은 아직도 자본잉여금 항목에 버젓이 남아 있다.(교보생명은 1989년에 자산재평가를 했고, 그 이익 중 30%인 664억원이 내부유보액으로 남아 있다.)

이 내부유보액은 결손보전에 사용될 수 있고, 또 지급여력비율(은행의 BIS비율에 해당한다)을 산정하는데도 포함되었다. 자본과 비슷한 기능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는 내부유보액에 해당하는 만큼 신주를 공익재단에 배정하여 과거 계약자의 기여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민단체만 그렇게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1999년 공청회에서 나동민 위원장도 그렇게 주장했다. 확인해보라.


그런데 이번 상장자문위의 '최종안'은 내부유보액의 자본적 성격을 완전히 부정했다. 나아가 부채임에도, 원금만 돌려주면 될 뿐 이자는 한 푼도 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가 막힌다. 남의 돈을 가져다 자본처럼 이용하고서, 이제는 부채라며 그것도 원금만 돌려주겠단다.

상장자문위의 논거는 이렇다. 미국의 생보사들도 유배당 계약자 몫을 자본계정의 미할당잉여금 항목에 계상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맞다. 계약자 몫을 자본계정에다 두느냐 부채계정에다 두느냐는 회계기준이 돈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생보사 회계기준은 계약자 몫을 원래부터 자본계정에 두었지만, 우리나라는 부채계정(계약자배당준비금, 계약자이익배당준비금, 계약자배당안정화준비금 등)에 두었다. 오직 내부유보액만 자본계정에다 둔 것이다. 왜? 계약자에게 돌려주기 싫어서…. 그런데 이제 와서 원금만 돌려주겠다고?

[문제점③] 과거 배당의 적정성 여부

이번 상장자문위 '최종안'의 핵심이 여기다. 일반 국민은 물론 국회의원들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산할당모형이라는 분석방법을 통해 과거 계약자에 대한 배당이 결코 부족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외국 유명 용역기관의 '검증'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외국 용역기관의 검토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면(상장자문위가 제공한 국문번역본은 의도적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오역이 여럿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영문원본을 읽어보기를 권고한다), 비록 완고한 표현이나마 상장자문위 분석의 문제점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돈 받고 쓴 용역보고서가 이 정도로 표현했다면, 이건 낙제점이다.

우선, 자산할당모형은 장기투자자산의 미실현 이익까지를 포괄하여 분석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임을 이 용역보고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상장자문위가 과거 배당의 적정성 여부를 분석(Case 1)할 때 사용한 자료에는 미실현 이익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국내 생보사는 장기투자자산의 핵심인 부동산과 계열사 주식을 매각한 적이 없다. 따라서 배당의 적정성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배당가능 이익 자체가 과소평가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상장자문위는 회사설립(삼성생명의 경우 1957년)부터 2005년 말까지의 자료를 한꺼번에 '뭉개서' 사용했다. 그런데 1980년 3500억원 수준이던 삼성생명의 자산은 지금 100조원이 되었다. 30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따라서 1957년부터 2005년까지의 자료를 몽땅 뭉개서 분석하면, 국제수준의 이익배분기준이 적용된 외환위기 이후 최근의 자료가 전체 분석결과를 결정해버리게 된다. 이러면 과거 배당이 부족했다는 결론이 나올 리가 없다.

나동민 위원장은 이 분석결과를 두고 노벨 경제학상 감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내가 학술저널의 심사위원이라면, 이런 논문은 당장 '거부감(reject)'이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지자

a 지난 8일 금융감독원 앞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이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 최종안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8일 금융감독원 앞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단체 회원이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원회 최종안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외람되지만, 나동민 위원장을 비롯한 상장자문위원들께, 아니 이들을 들러리로 내세우고 있는 윤증현 금감위원장을 비롯한 금융감독당국 종사자들께 한마디 충고하고자 한다. '역사 앞에서 겸손해지시기 바랍니다.'

외환위기 이전에 국내 생보사가 주식회사답게 경영되고 주식회사답게 감독되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사람 아무도 없다. 주주의 불법부당행위, 금융감독당국의 직무유기는 역사적 사실이다. 보험계약자의 절반 이상이 1년도 지나지 않아 (납입한 돈을 대부분 떼이면서도) 계약을 해지했다는 통계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주식회사? 상호회사? 혼합회사? 뭐라고 불러도 좋다. 그러나 주주의 불법부당행위와 금융감독당국의 직무유기에 의해 보험계약자의 권익이 침해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생보사 상장의 핵심 원칙은 권익을 침해당한 보험계약자에게 주주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러한 보상이 적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책임이 금융감독당국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이 단순히 '역사 바로 세우기'만은 아니다. 계약자 권익의 침해 상태를 방치하고서 생보사 주주와 금융감독당국이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는 것이고, 계약자의 신뢰 없이 생보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생보사 상장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은 신뢰를 먹고 사는 산업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부탁한다. '회사 돈'으로 이른바 사회공헌기금 출연하여 면죄부를 사려는 얄팍한 꼼수는 두지 말기 바란다. 회사 돈은 계약자 것이다. 따라서 회사 돈으로 사회공헌기금 출연하는 것은, 계약자가 계약자를 보상하는 셈이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계약자에 대한 보상은 주주 돈으로 해야 한다.

생보사 상장, 가능한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다. 상장을 계속 지연시키는 것은 계약자에도, 생보산업에도, 국민경제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상장할 수는 없다. '카이사르 것은 카이사르에게' '계약자 것은 계약자에게' 돌려주고, 순수하게 주주 것만을 가지고 상장하면 된다. 이번 상장자문위의 사이비 '최종안'을 즉각 폐기하고, 진짜 최종안을 조속히 만들자.
#생보사 상장 #생보사 #생명보험사 #상장자문위 #김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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