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측 주도로 만들어진 <시사저널> 899호가 발행된 가운데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근무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커버스토리는 잡지의 얼굴이다. 커버스토리만으로 잡지 판매의 성공 여부가 좌우되니 말이다. 선거 전날까지 노무현과 한 배를 타고 있었던 김행씨가 '써 갈긴(이라는 표현은 전혀 과하지 않다)' 커버스토리를 보자.
"사형수, 특히 교수형인 경우 시체 부검을 해 보면 사정의 흔적이 발견되는 예가 많다고 한다…노무현 대통령은 사망선고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다. 지지율로 보면 '식물 대통령'이다…(그는) 동물적 감각으로…자신의 정치적 정자, 즉 노무현 세력과 철학을 남기고 싶은 것이다."
클린턴의 비행(?)으로 대통령의 지퍼 얘기가 오르내린 적은 있지만, 대통령의 정자까지 들먹인 것은 아마도 사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게다가 무려 여덟 페이지에 걸쳐 혼자 쓴 커버스토리엔 팩트가 없다. 맥락을 무시한 채 말의 일부분만 따와도 침소봉대나 왜곡이니 반론이 나오는 마당에, 이 커버스토리 전체엔 아무 인용도 팩트도 없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이렇게 보일 것이고 저것은 저렇게 보일 터이니 결국 이러이러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라는 느낌과 직관으로 일관한다. 일일히 전부 인용할 수는 없고 일부만 보면 아래와 같다. 품위있는 독자로서는 차마 보기 민망한 장면이 많다.
"노 대통령 처지에서 보자면 2007년 대선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2007년 대선의 성격을 규정하자면 한마디로 '무능하고 부패한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와 퇴출 명령'이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물결치는 '신보수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로의 적극적 합류다."
"(김근태 정동영 천정배 등도 여당 몰락의 공동책임자이므로) 이를 빤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가관일 것이다…노 대통령 처지에서 보자면 "둘이 손잡는다고 신당이 되겠느냐?"는 비웃음을 낳고도 남는다."
"마음은 굴뚝같겠지만 현재의 민심으로 보자면 '코드 인물'을 내세울 경우 곧 '죽음'이다. 그래서 가장 탐나는 후보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인 것이다…노는 이미 '작업'에 들어갔다."
"(노 대통령이) 보는 고건은 '보수 꼴통'이고 호남의 지역 정서에 수혜를 입은 톡혜자다."
"만약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면 2008년 4월, 차기 대통령 취임 두달 만에 총선을 치르게 된다. 보나마나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현 여권의 완패가 예상된다. 그 때 탄생하는 야당은 호남당으로 전락할 것이다…그래서 그와 친노파는 죽어라 하고 당을 사수하려는 것이다."
"가만히 곱씹어 보면 그의 말마따나…북한은 동포이고 굶주린 채 고립되어 있으며 미국은 전세계를 무대로 날뛰는 존재이다…노대통령의 친북·반미 노선이 첨예화되고 이를 기준으로 유권자가 갈릴 경우 어느 쪽이 더 많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기사 아닌 정치 격문... 노무현 이후로 이런 적은 처음
이것은 기사라기보다는 정치 격문에 가깝다. 물론 노 대통령의 리더십 방식이나 정치행위에 대한 비판이 많이 존재하고 나 또한 그다지 호의적으로는 보지 않는다. 언론의 문제 같은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지지율이 10%도 안 되는 수치는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커버스토리 내용 중에는 주장으로만 보자면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꽤 있었다. 하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오래 보아온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이 읽을 만한 것인지 아닌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것은 노무현에 대한 경멸을 늘어놓은 넋두리에 가깝다.
'2007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신자유주의로의 합류이고 좌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증오와 퇴출 명령'이라면, 그래서 어차피 현 여권이 필패할 수 밖에 없는 구도라면, 이렇게까지 경멸을 표출하는 것은 정말 그야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을 수 없는 감정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어법을 다른 사람에게 한 번 적용해 보면 알 수 있다. 한번 적용해보자.
"박근혜는 동정심 유발의 귀재이다. 별 정치의식 없는 유권자들에게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간다. 전형적인 향수 자극 수법이다."
"빤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박근혜 의원이 보기에 이명박 전 시장이 하는 행보는 가관일 것이다. '대운하 계획을 발표한다고 무슨 대통령이 되겠느냐?' 하는 비웃음을 낳고도 남는다. 이명박은 감이 아닌 것이다."
"박근혜가 보기에 손학규는 교수 출신의 '학삐리'에 불과하다."
"이 구도를 흔들면 안 되기에 노 대통령이 하는 제안은 죽어라 거절해대는 것이다."
"박근혜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은 전세계를 공산도당에서 지켜주는 고마운 은혜와 은총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여덟 페이지에 걸쳐 쓴 매체가 있다고 하자. 게시판 글이나 술자리 잡담이 아니라 활자화된 지면에 말이다. 3000원이라는 돈을 주고 사볼 기분이 과연 들겠는가?
이미 돈을 지불하고 책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명의 독자들만 생각하더라도,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희망사항과 관심법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것은 독자에 대한 폭력에 가깝다.
내 돈 3000원이 이렇게 아까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