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오소리·너구리·반달곰까지 죽었다

올무로 사라지는 야생동물들... 언젠가 인간 목조일 올무

등록 2007.01.16 17:28수정 2007.01.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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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올무에 의해 숨진 산양, 몇 살이나 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올무에 의해 숨진 산양, 몇 살이나 되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 녹색연합


매서운 바람이 산자락을 타고 마을로 내려온다. 산촌 사람들은 동장군의 기세에 밀려 문밖 출입도 않는다. 하루 한 차례 연탄재를 들고 나오는 할아버지의 시린 손이 겨울 추위를 짐작케 할 뿐이다.

알몸으로 선 나무들은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바람이 휘돌자 나무는 춥다는 듯 윙윙 소리를 낸다. 눈덮인 산자락은 멀리서도 그 속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텅 비었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어디론가 숨었다.

먹을 것 없는 산자락은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파헤친다고 먹을 게 생기는 것도 아니다. 고작해야 도토리 정도. 그것도 이미 다람쥐나 청설모가 먹어치운지 오래다. 동물들에게 긴 겨울은 시련과 고통의 계절이다. 추위와 싸우는 것은 기본. 산자락은 먹을 것조차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초식동물의 경우 그 사정이 절박하다.

사정이 이렇지만 정작 동물들에게 더 큰 위협은 인간들이 놓는 올무와 덫이다. 한 번 걸리면 죽음이다. 생사를 건 겨울나기는 이 시간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올무꾼, '자연에 대한 예의'를 배워라

@BRI@심마니들은 산을 오르기 전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다. 또한 산을 정성으로 모신다. 적어도 산삼은 그렇게 해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심마니들은 절대로 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자연에 대한 예의가 있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임을 그들은 안다. 그들은 산에 오르기 전 마음부터 비운다. 애초 욕심이 자리하면 있던 산삼도 모습을 감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이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밀렵꾼들은 그와 정반대의 행동을 보인다. 자연에 대한 예의라고는 손톱에 낀 때만큼도 없다. 산을 망치러 가는 이들에게 무엇을 바라겠냐마는 그들의 욕심은 끝을 모른다.

전국의 산이 올무로 덮여있다. 밀렵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다 그들의 먹잇감이다. 어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면 오히려 그 동물을 찾아나선다.


올무꾼들, 대체 어떻게 생긴 자들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머리에 뿔이라도 났는지 아니면 도깨비 같은 형상을 한 얼굴인지. 설사 그들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인간이라 해도 같은 인간이기를 거부하고 싶다.

a 올무 제거에 나선 환경단체 회원이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올무를 확인시키고 있다.

올무 제거에 나선 환경단체 회원이 캠페인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올무를 확인시키고 있다. ⓒ 녹색연합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은 10년 가까이 놓은 올무나 덫을 수거하는 일은 하고 있다. 전라도 지리산에서부터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까지 올무꾼들이 나타난다는 곳은 반드시 찾아간다. 이들을 도와주는 건 일반 시민들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이들이 주로 가는 곳은 백두대간이다. 자연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도로 개설과 송전탑 건설, 석회광산 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신음하고 있다. 각종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는 동물들을 갈 곳 없게 만들었다.

지금 백두대간은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다. 야생동물의 이동통로가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다. 갈 곳 없는 야생동물을 노리는 것은 밀렵꾼이다. 밀렵 전문가뿐 아니라 산촌 주민들까지 합세한 곳이라 그 피해도 크다.

개발로 서식지 파괴하고, 밀렵으로 '확인사살'

산양은 설악산과 강원 남부, 경북 북부지방인 울진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울진에서만 올무에 의해 죽어간 산양이 5마리나 된다. 밀렵꾼들의 손에 넘어간 숫자까지 따지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멸종 위기종이다. 반드시 보존해야할 우리의 자연이다.

설악산에서 산양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박그림(설악녹색연합대표)씨는 산양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몇해 전 산양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산양똥을 먹는 사람>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a 환경단체 회원들이 올무를 제거하고 있다.

환경단체 회원들이 올무를 제거하고 있다. ⓒ 녹색연합

"산길을 오르면서 어쩌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산양 냄새만으로도 잿빛 몸과 순한 눈빛, 작은 뿔, 주저앉아 하염없이 되새김질을 하던 산양의 모습이 선하게 떠올라 그리움으로 온몸을 떨곤 했었다.

한줌 뿌려놓은 소금을 땅바닥이 반질거리도록 핥아먹은 우묵하게 들어간 땅바닥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온몸을 휘감는 산양냄새를 가슴 깊이 빨아들여 내 몸 구석구석 산양 냄새가 배도록 숨을 멈춘다.

늘 코끝에 맴도는 냄새, 고향처럼 여겨지는 냄새, 바람결에 묻어와 코끝을 스치기만 해도 몸을 떨었던 냄새,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래도록 코를 떼지 못한다. 이제 산양은 나의 다른 몸이며 나의 형제인 것이다.

산양이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 산양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꿈꾼다." (박그림 글 중에서)


울진에서는 산양뿐 아니라 오소리, 너구리, 담비 심지어는 수달까지 올무에 의해 죽어갔다. 올무는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지리산 반달곰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 가공할 힘이다.

"인간만이 욕심을 부려 동물을 죽입니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연말 2박3일 일정으로 경북 울진에서 야생동물 밀렵 방지 캠페인도 벌였다. 아래 글은 고등학생인 김민정양이 쓴 소감이다.

"동물의 왕인 사자나 호랑이도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만 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항상 사납다고만 생각하는 동물들도 절대 욕심은 부리지 않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욕심을 부려 이 땅의 많은 야생동물들의 목숨을 빼앗고 있습니다.

이번 밀렵방지 캠페인으로 인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고, 제 힘으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에 더없이 고마웠습니다. 야생동물이 살 수 없는 이 땅은 인간들도 다른 생명들도 살아나갈 수 없습니다.

산에서는 야생동물을, 하늘에서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만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랍니다."


기특하다. 대견하다. 어른들이 부끄러워할 대목이다. 어른들이 놓은 욕심을 어린 학생이 산자락을 헤매며 거두어들였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있으면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작은 지리산'을 지키자

녹색연합은 1월 말부터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에서 야생동물 밀렵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다. 가리왕산은 1561m의 높은 산으로 작은 지리산이라 할만큼 그 품이 넉넉한 곳이다.

가리왕산은 예로부터 산삼이 많아 조선조에 '산삼봉표비'가 세워질 정도이며, 각종 식물과 멧돼지와 수달을 비롯한 동물들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곳은 야생동물 밀렵에 대해서는 단속의 사각지대다. 불법 밀렵이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는 그에 대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녹색연합의 이번 불법 밀렵에 대한 실태조사로 인해 가리왕산에 살고 있는 동물들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일 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야생동물 밀렵방지 캠페인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하나 같이 "올무 놓은 어른들이 나쁘다"고 말한다. 어린 학생들의 비친 어른들의 모습이 이래야 되겠는가. 어른들의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올무나 덫은 자연을 황폐화 시키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한번 놓으면 수거도 어렵거니와 동물이 걸리기 전까지는 그 위험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전국의 산에는 올무가 지천입니다. 언젠가 인간인 우리도 올무의 위협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할 날이 올 것입니다."

박정운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국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언젠가 올무가 우리의 목을 조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것은 인간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a 올무를 놓고 산을 내려오는 올무꾼. 무엇이 두려워 저리 서두는가.

올무를 놓고 산을 내려오는 올무꾼. 무엇이 두려워 저리 서두는가.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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