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해안도로김대갑
그런데 희한하게도 공주병 환자에게는 그를 떠받드는 머슴이 꼭 한 명 있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춤에 넘어가 요한의 목을 자른 헤롯왕이나 서시의 요염한 자태에 빠져 나라를 망하게 한 오나라 왕 부차처럼 말이다. 수로부인이 헛웃음을 날리며 동해의 옥색 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던 중에 태권브이처럼 등장한 한 노옹이 있었다.
노인은 손에 임신한 암소를 끌고 있었는데, 수로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주저 없이 절벽 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붉은 철쭉꽃을 한 아름 따서 그녀에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아름다운 노래도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을진댄/제 꽃 꺾어 바치오리다.
노인은 <헌화가>라는 이 노래를 부른 후, 한숨도 미련없이 수로부인 곁을 떠났다. 요즘말로 하면 진짜 '쿨'한 사람인 것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바치는 행위는 성적인 행위를 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이다. 꽃은 처녀를 상징하는 것이며 꽃을 꺾는 행위는 처녀성을 정복하고 싶다는 심리적 표현이다. 결국 헌화가를 부른 노인은 수로부인에게 강한 성적 메시지를 전달한 후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경국지색인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고 말이다.
수로부인은 처용의 아내와 같은 영광(?)을 대단히 많이 겪은 미인이다. 그녀가 가는 곳마다 역신과 용, 괴물들이 주야로 나타나 그녀를 납치하곤 했으니 말이다. 순정공 일행이 다시 움직여서 어느 바닷가에 당도했는데, 갑자기 사나운 용이 나타나 수로부인을 물고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일행들이 어쩔 줄 몰라 할 때 역시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입으로 떠들자고 선동하였단다. 백성들을 불러 모아 막대기로 언덕을 두드리면서 항의의 노래를 부르면 부인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집회 및 시위를 감행하면서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 내 놓아라'라고 협박하였고 마침내 용이 수로부인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거북이는 수로부인의 미모를 탐하는 남성의 성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임이 분명하다. 결국 삼국유사 수로부인조의 헌화가는 성적인 상징과 암시가 곳곳에 배어 있는 노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