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으로 세상을 훔치자

[서평] 반칠환 <책, 세상을 훔치다>

등록 2007.01.14 16:15수정 2007.01.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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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과 <웃음의 힘>이라는 두 권의 시집을 낸 반칠환 시인이 시집이 아닌 특이한 책 한 권을 새로 펴냈다. '우리시대 프로메테우스 18인의 행복한 책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세상을 훔치다>(평단,2006)라는 책이 그것이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지금 우리 시대의 불을 지피고 있는 18인의 유명 인사를 찾아가 '사람과 책'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한 글 묶음집이다.

@BRI@시인 반칠환이 이 책에서 인터뷰한 우리시대 18인의 프로메테우스는 다음과 같다. 영문학자 장영희,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사진가 김홍희, 가수 김창환, 화가 김점선, 문학평론가 이어령, 시인 장석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만화가 홍승우, 건축인 김진애, 푸름이닷컴 대표 최희수, 번역문학가 김난주, 서울문화재단 대표 유인촌, 앵커 백지연, 작가 유용주, 화가 황주리, 영화감독 박찬욱, 개그맨 김미화가 그들이다.


이 책에는 어릴 적부터 충청도 산골에서 풍뎅이, 방아깨비, 사슴벌레 등과 인터뷰를 해온 인터뷰 전문가 반칠환 시인의 걸출한 입담에 의해 이들의 삶의 빛깔과 그것이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돌올하게 새겨져 있다.

그가 인터뷰한 글을 몇 군데 인용해 본다.

"여행이 단순히 몸의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과 정신의 충격을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는 치열한 여행가가 틀림없다. 눈치 챘겠지만 ‘독서는 여행이다’라는 말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이다. 독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도 천하를 여행하게 해준다. 글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세계를 여행하고, 세계를 경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를 경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 영혼이 어디 있으랴만, 그는 타고난 여행가다." - '광대한 독서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영문학자 장영희' 중에서

"'밑줄'은 '아침편지'의 기원과도 연관된 일이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읽던 책 속에서 밑줄 그어놓은 부분을 발견하고 '전류에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밑줄 속에 담겨 있는 아버지의 숨결을 느낀 것이다. '남이 그어놓은 밑줄 하나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밑줄'을 선물하는 아침편지를 기획하게 되었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 물지게꾼이 퍼나르는 삶과 글을 통해 청량한 아침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늘 남이 길어다 주는 물에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독서를 통하여 물줄기를 발견하고, 샘을 파고, 샘물을 길어 올리는 즐거움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궁극 바라는 바 또한 독자들이 저마다의 울 안에 자신만의 우물을 갖게 되는 것일 터이니, 우리들은 저 '아침편지'를 내 삶으로 가져와 '저녁일기'를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책에서 길어 올린 행복을 배달하는 사람-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중에서


"- 난리가 났습니다. 저 무수한 책들 가운데 세 권만 피난 보따리에 넣고 가야 한다면요?

노자의 <도덕경>과 니체의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 한 권을 가져가겠습니다. 나이 들면서 동양의 고전이 좋아지더라고요. 노자나 장자를 읽을 때마다 느낌과 깊이가 다르게 와 닿아서 좋습니다.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하였다>는 내가 그런 책을 꼭 써보고 싶기 때문이고, 네루다의 시로 하루를 시작하면 기분이 좋기 때문입니다.


- 책 읽기의 즐거움을 꼽는다면요?

제가 여름철 즐겨하는 피서법이 캔 맥주 하나, 접이의자 하나 들고 나무 그늘에 들어가서 책을 읽는 겁니다. 출출하면 콩국수도 한 그릇 말아 먹고요."

- 그건 즐거운 피서법이고요, 독서의 즐거움은요?

지식의 언덕이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인지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경으로 들어갈 때, 현기증과 함께 성취감에서 오는 희열이 있습니다. 당대높이뛰기 선수가 한 경지를 넘는 느낌,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 듭니다.

- 선생님에게 시란,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꿈에서 본 꽃이랄까, 물에 문득 비친 꽃 그림자랄까? 작은 기쁨과 작은 위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큰 기쁨과 큰 위안은 무엇이죠?

제일 큰 기쁨과 위안은 살아 있다는 것이죠.

돌아오는 길,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가갸거겨 국어책을 읽는 듯 했다. 매미소리도 들려왔다. 매암매암 수천수만 장 나뭇잎 대서가(大書架)를 이레 동안 독파할 기세다. 모두 저이에게 물든 탓이다. - '책 향기 가득한 사유와 묵상의 공간, 수졸재-시인 장석주' 중에서

"'삶이 문학이다'라고 할 때 그 말이 저이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도 드문 듯하다. 저이의 글은 책상물림의 글이 아니다. 삶과 문학이 따로국밥인 사람들과는 체질이 사뭇 다르다. 저이의 문학은 근육과 핏줄의 문학이요, 땀의 문학이다. 쩨쩨하고 옹졸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소 목소리 커도 통 큰 말씀을 동경한다. 저의 전력 가운데 하나가 목수였듯이 저이의 시와 산문은 건축물처럼 보인다. 저이의 문학은 유약한 펜이 아니라 꽝꽝 대못을 때려 박는 튼튼한 집짓기처럼 보인다.

앞으로 꿈요? 정말 좋은 작품을 쓰는 거죠. 돌아가신 윤중호 시인의 말대로 '귀신이 왔다가 울고 가는 시'를 쓰는 거죠. 늘 부족하지만 공부 많이 할 겁니다." - '근육과 땀의 문학-작가 유용주' 중에서

저자 반칠환 시인은 '바위도 독서를 한다'라는 재미난 책머리에서 독서의 궁극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왜 모두 서로를 읽는 것일까? 보건대, 누에는 뽕을 읽고 더욱 누에가 되었고, 개구리는 무논을 읽고 더욱 개구리가 되었으며, 귀뚜라미는 달빛을 읽고 더욱 귀뚜라미가 되었다. 암탉은 지렁이를 읽고 더욱 암탉이 되었으며, 바람은 계절을 읽고 더욱 바람이 되었다. 수능 때문에, 취직 시험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모두 더욱더 제가 되고, 제 갈 길을 잘 가기 위해서 읽는다. 그러니 독서는 궁극 너(대상 세계)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독도법'인 셈이다."

사람들이여, 책을 읽자! 혼자 사색하며 읽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훔치고 참된 나를 만나자.

덧붙이는 글 | 경북매일신문 '이종암 책 이야기'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덧붙이는 글 경북매일신문 '이종암 책 이야기'에도 송고할 계획입니다.

책, 세상을 훔치다 - 우리시대 프로메테우스 18인의 행복한 책 이야기

반칠환 지음, 홍승진 사진,
평단(평단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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