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에 안은 조계산

천자암 곱향나무에서 선경을 보다

등록 2007.01.14 19:10수정 2007.0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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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조계산(884m, 전남 순천시) 산행을 한번 하고 싶었다. 어쩌면 16국사(國師)를 배출한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우리나라 삼대 사찰 가운데 하나인 송광사와 태고총림의 천년고찰인 선암사를 포근하게 품고 있는 산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침 지난 12일 조계산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나섰다. 오전 8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오전 10시 30분께 선암사(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매표소를 거쳐서 산행을 시작했다.


선암사 승선교에서 삶의 번뇌를 씻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뒤로 보이는 강선루와 어우러져 아늑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순천 선암사 승선교(보물 제400호). 뒤로 보이는 강선루와 어우러져 아늑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김연옥
태고총림(太古叢林) 선암사(仙巖寺)는 조계산 동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조계산 중턱 비로암터에서 절을 세워 해천사(海川寺)라 불렀다 한다. 그 뒤에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가 지금의 가람 위치에서 다시 절을 세워 선암사로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부도밭을 지나 좀 더 걸어가자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400호)가 나왔다. 조선 숙종 39년(1713년) 선암사의 호암스님이 착공을 한 지 6년만에 완공한 돌다리이다.

길이는 14m이고 높이가 4.7m인 무지개다리로 그 뒤로 보이는 강선루와 어우러져 평화롭고 아늑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옛날 승선교를 건너다니던 사람들은 그 다리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을 내려다보며 삶의 온갖 번뇌와 고통을 씻었으리라. 시대를 건너뛰어 그 간절한 기도가 내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불교 사상을 배경으로 신라의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인 선암사 삼인당. 어렴풋이 강선루가 보인다.
불교 사상을 배경으로 신라의 도선국사가 만든 연못인 선암사 삼인당. 어렴풋이 강선루가 보인다.김연옥
선암사 앞에는 신라 경문왕 2년(862년)에 도선국사가 축조했다는 삼인당(三印塘, 지방기념물 제46호)이란 독특한 이름의 연못도 있다.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의(敎義)인 무상인(無常印), 무아인(無我印), 열반인(涅槃印)을 뜻하는 삼법인(三法印)을 배경으로 만든 것으로 연못 안에 조그마한 섬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산악회를 따라 산행에 나서면 대체로 출발지에 있는 절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산행을 하며 그들을 따라잡을 생각으로 잠시 선암사에 들렀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그날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선암사 대웅전과 삼층석탑. 그날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는 소리로 가득했다.김연옥
여느 절과 달리 일주문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대웅전(보물 제1311호)에서는 스님들이 예불을 드리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웅전 앞에 나란히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395호)의 동탑과 서탑이 그 엄숙함을 더해 주는 것 같았다.

지난 해 선암사 사태에 관한 안타까운 보도를 접해서 그런지 절의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예불 소리가 도리어 내겐 큰 침묵으로 와 닿았다. 그 정확한 사연은 모르나 어떤 일이든 진실을 위해 필요한 진통은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에 비해 귀가 크다.
선암사 마애여래입상.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에 비해 귀가 크다.김연옥
벌써 일행들보다 30분 정도 뒤처진 것 같아 서둘러 선암사에서 나와 대각암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내 눈길을 끄는 마애여래입상(문화재자료 제157호)이 있었다.

이미 늦어 버린 김에 보고 싶은 건 보고 가자 싶어 나는 암벽 쪽으로 뛰어갔다. 그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쓰여져 있는데 얼굴에 비해 귀가 큰 것이 인상적이다.

조계산은 산세가 부드럽고 아늑해 푹신푹신한 흙길을 밟으며 한가한 산행을 하기에 좋은 산이다. 오솔길 같이 포근하고 푸른 산죽이 많은 산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다 보니 어느덧 비로암을 지나 작은굴목재에 이르렀다.

작은굴목재에서.
작은굴목재에서.김연옥
거기서 장군봉(884m)으로 올라갈까 하다 맛있다고 소문난 보리밥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갑자기 산행 길에 그 지방의 별미를 맛보는 느긋함을 부리고 싶었다. 그 길에는 바닥의 돌멩이까지 환히 들여다보이는 티 없이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어 내 마음마저 깨끗해지는 것 같았다.

소문난 보리밥집에서. 호박탕이 별미였다.
소문난 보리밥집에서. 호박탕이 별미였다.김연옥
그 보리밥집에서 반갑게도 일행 몇몇과 만났다. 나도 5000원 하는 보리밥 한 그릇을 시켜서 후딱 먹었는데 조선간장으로 간을 했다는 호박탕의 독특한 맛이 기억에 남는다. 밥장사를 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다는 주인 아줌마에게 그 맛의 비결을 물었더니 무조건 호박을 많이 넣으면 된다고 일러 주었다.

천자암 곱향나무에서 선경을 보다

천자암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 수령이 700년이라고 한다.
천자암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 수령이 700년이라고 한다.김연옥
보리밥집에서 나와 일행들과 같이 송광굴목재에 이른 시간이 낮 1시 10분께. 그곳 표지판을 보니 거기서 35분 정도 가면 송광사의 암자인 천자암에 갈 수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천자암 곱향나무(천연기념물 제88호)를 꼭 보고 싶어 일행 한 분과 같이 갔다.

엿가락처럼 비비 꼬인 듯한 천자암 곱향나무는 수령이 700년이 되었다 한다. 그 나무를 가만히 올려다보면 그저 아름답다는 차원을 넘어 선경(仙境)에 이른 기분이 든다.

그러니 조계산에 천자암을 짓고 수도하던 보조국사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나란히 꽂아 놓자 뿌리가 내려 자랐다는 전설이 전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천자암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에서.
천자암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에서.김연옥
천자암에서 송광사로 가는 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다. 그 예쁜 길을 따라 송광사에 도착한 시간이 낮 3시께.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송광사다. 깊은 고요 속에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느껴지는 절이다.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앞에서.
순천 송광사 대웅보전 앞에서.김연옥
송광사의 홍교와 우화각을 바라보며.
송광사의 홍교와 우화각을 바라보며.김연옥
나는 대웅보전 계단 밑에 앉아 있는 네 마리 돌사자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해우소(解憂所)에 들러 근심을 풀기도 했다. 그리고 살얼음이 낀 연못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징검다리에 서서 예쁜 홍교와 우화각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천양희의 '뒤편'


나는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천양희의 시 '뒤편'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삶에는 늘 고통스런 뒤편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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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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