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쉰 손자, 어린이라고 스트레스 없을까

우진아! 힘들 땐 언제고 할머니 집에 오거라

등록 2007.01.16 09:22수정 2007.01.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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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월요일 제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큰 손자의 어깨가 조금 가벼워 보인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손자는 "할머니 나 며칠 자고 또 올게.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제 집으로 가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듯이 "할머니~~할머니"하면서 나를 꼭 끌어안는다. 그래도 하루 푹 쉬고 나니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


@BRI@손자가 우리집에서 자게 된 것은 돌발적이었다. 지난주 일요일 놀러왔던 손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 뜬금없이 제 엄마한테 이렇게 요구했다.

"엄마 나 오늘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갈래."
"너 내일(15일) 영어공부 첫날이잖아. 가야지."
"아~~잉, 오늘 여기에서 자고 갈래."

듣고 있던 내가 "그래 하루 자고 가라고 해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제 엄마가 "그 대신 엄마한테 데려다 달라고 하면 안돼"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큰손자가 하룻밤 우리 집에서 자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손자는 편안한 잠 삼매경에 빠져 있다.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오늘만이라도 유치원 갈 걱정하지 말고 실컷 자라고 그대로 놔두었다. 평소대로라면 아침 7시20분에 일어나 7시45분쯤 유치원 버스를 타고 한바퀴 돌기 시작할 시간을 훨씬 넘겼을 무렵이다.

아침 7시45분에 유치원 버스를 타면 거의 9시30분이나 되어서 유치원에 도착한다. 그 시간까지 손자는 버스 안에서 자다 깨다를 번복하면서 고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 종일 유치원에서 이것저것 배우고 좋아하는 그림공부도 배운다. 저녁시간이 돼 다시 유치원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 참 바쁘고 숨 가쁜 하루를 그렇게 마치게 된다.


아침에 제일 먼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저녁에 제일 늦게 버스에서 내린다. 힘들어서인지 얼마 전 손자는 위아래 입술 전체가 부르터서 밥을 못 먹고 물도 제대로 못 마셔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또 가끔 변비로 고생을 해서 응급실에도 두 번이나 실려 갔다. 그래도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어린 손자도 좀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었나보다. 하기야 어린이라고 왜 스트레스가 없을까?

늦게 일어난 손자는 씻고 아침밥을 먹었다. 난 손자한테 "우진아 오늘 할머니 그림공부 하러가는 날인데 우진이도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응 할머니 나도 같이 갈래. 내 것 색칠 공부하는 거 가지고 가"라고 한다. 난 손자를 데리고 그림공부를 하러 갔다. 그곳에서 손자는 내 옆에서 색칠을 하면서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다 아줌마인데 할머니는 왜 여기에서 그림공부 해?"라고 묻는다.


"할머니가 그림공부 하고 싶어서."
"그런데 선생님이 왜 할머니 그림 안 봐줘?"
"할머니 차례가 되면 봐줄 거야."

궁금한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 손자다. 난 손자의 손을 잡고 그림공부 하는 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가서는 "이 아줌마는 김미숙 아줌마야, 아줌마가 그린 그림 좀 봐 어떤가?"라고 말했다. 손자는 멋쩍은지 웃기만 했다. 그림공부가 끝난 뒤, 손자를 데리고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이야기도 하고, 붕어빵도 사먹었다. 마트도 가서 같이 물건도 골랐다.

이리저리 자유롭게 뛰어다닌 손자는 이젠 만화 비디오를 빌리러 가자고 한다. 비디오가게에 가서 손자가 고른 비디오를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신이 나는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껑충껑충 뛰어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온 손자는 우유 한잔을 마시고 TV앞에 앉았다. 비디오를 틀어주니 나한테도 옆에 앉아 같이 보자고 한다. 난 손자 옆에 앉아 주인공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보았다.

종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는 손자
종이 비행기를 만들고 있는 손자정현순
재미있는지 앞으로 몇 번이나 되돌려 보고 또 본다. 그때 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우진아 엄마 전화 받아."
"아니 안돼. 지금 너무 재미있는 거 하기 때문에 전화 못 받아."

손자의 여유롭고 평화스러운 모습에 "우진아 재미있니? 유치원 친구들 보고 싶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응 너무 너무 재미있어. 친구들 안보고 싶어"라고 답한다.

"그럼 내일도 유치원 가지 말고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하고 놀자."
"그건 안돼. 내일은 가서 영어공부 해야 해."
"그래서 오늘 갈 거야?"
"응~~"

비디오를 볼만큼 봤는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려 보내곤 한다. 큰 비행기 작은 비행기. 어떤 비행기가 더 멀리 높이 날아가는지 보면서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제 엄마도 찾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손자가 정말 많이 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웬만한 이야기도 통하고 같이 웃고 같이 놀 수 있으니 말이다.

맞벌이 하는 부모를 둔 덕에 일찍부터 놀이방에 다니고 조금 큰 후에는 유치원으로 옮겨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는 손자가 대견했다. 가끔은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건강하게 저만큼 자라준 것이 어찌나 고마운지. 어린 아이들도 힘들고 지칠 땐 편안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손자를 보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우진아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든지 할머니 집에 놀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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