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들 '착취의 혐의'를 벗다

[서평] 이미지프레스 두 번째 무크집 <사람들 사이로>

등록 2007.01.17 07:13수정 2007.01.1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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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미지프레스 두 번째 무크지 <사람들 사이로>

이미지프레스 두 번째 무크지 <사람들 사이로> ⓒ 청어람미디어

기다리던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트워크 이미지프레스(www.imagepress.net)의 두 번째 비정기 무크지가 나왔다.

이번 무크지의 주제는 <사람들 사이로>. 첫 번째는 <여행하는 나무>였다. <여행하는 나무>가 2005년 6월에 나왔으니 딱 1년6개월이 걸린 셈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1년에 두 번은 내놓겠다는 이미지프레스의 약속을 내심 믿고 싶었지만 둘째 권이나 제대로 낼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그래도 빛을 보았으니 다행이다.


사진과 글, 그 중에서도 사진에 방점을 찍는 잡지가 거의 사라진 지금, 이미지프레스의 고군분투가 눈물겹기도 하고, 어떻게든(1년 간격으로 내든 2년 간격으로 내든) 생명을 부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아마 이미지프레스 편집진도 앞날을 기약할 수 없었기에 '부정기 무크지'라는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을 것이다.

더 이상 책이 나오질 않아도 독자들도 '부정기'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에 좋은 책 왜 안 만드느냐 책임 추궁은 아니 할 것이다. 이제 두 번째 책이 나온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동안 사라져버린 읽고 책꽂이에 쟁여둘 좋은 잡지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출판시장에서 좋은 잡지가 발 디딜 바닥이 좁다는 소문이 사실이리라.

이미지프레스 편집인 사진가 이상엽씨가 책 머리글에 밝힌 심정을 옮겨본다. 독자보다 애를 태웠어야했던 편집인의 마음이 읽힌다.

"지난 호에서 매년 두 권은 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1년 반 만에 두 번째 책을 상재합니다. 진지전을 펼친다며 파놓은 참호가 다행히 포탄을 맞진 않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첫 번째 책을 찾아주셔서 17개월 만에 2000부가 넘게 판매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분발해서 매진의 속도를 높여보겠습니다."

초판으로 펴낸 2000부가 모두 매진이 되어야 두 번째 책을 펴낼 수 있었나보다. 출판사에서도 초판조차 팔리지 않았는데 두 번째 책을 펴내는 위험을 감수할 순 없었으리라. "파놓은 참호(2000부)가 포탄(판매 부진)을 맞지 않았다"는 이상엽씨의 안도가 오히려 안타까울 뿐이다. 좋은 책 사보는 이가 왜 이렇게 없는 것인지, 대한민국 사진 인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데 1만8000원(<여행하는 나무>의 책값)이 아깝지 않을 사진무크지 초판 매진시키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여행하는 나무> 출간 후 17개월 만에 나온 <사람들 사이로>

<사람들 사이로>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머릿속으로 깊이 생각해 봤을 '훔쳐보는' 숙명을 가진 사진가와 얼굴을 '착취' 당해야 하는 피사체(=사람)에 대한 내용들로 채웠다.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 사이에 서는 순간 사진가는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은 카메라 뒤에 숨고 사람의 면면을 까보이는(혹은 까보여야 하는) 사진가의 행위는 사진가라는 이유로 용서 받기도 한다.


a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굶주리는 수단 소녀'. 이 사진을 촬영한 케빈 카터는 사진을 촬영하기 전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3개월 후 목숨을 끊었다.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굶주리는 수단 소녀'. 이 사진을 촬영한 케빈 카터는 사진을 촬영하기 전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그는 퓰리처상을 받은 3개월 후 목숨을 끊었다. ⓒ Kevin Carter

하지만 사진가에겐 고뇌가 없을까. 1994년 '수단의 굶주리는 소녀'를 촬영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케빈 카터(Kevin Carter)는 사진을 찍기 전 소녀를 먼저 구하지 않았다(그는 촬영 후 소녀를 난민 캠프에 데려다 주었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33살 젊은 나이로 목숨을 끊었다. 살찐 독수리가 굶주림에 지쳐 쓰러진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끔찍한 현장을 담은 그의 사진은 기아에 시달리는 수단의 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비난은 케빈 카터에겐 쉽게 끊을 수 없는 고통의 올가미였을 것이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자동차에선 이런 글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절망적이다. 전화가 끊어졌다. 집세도 없고 양육비, 빚 갚을 돈이 없다. 나는 살육과 시체들과 분노와 고통에 쫓기고 있다. 굶주리거나 상처를 입은 아이들, 권총을 마구 쏘는 미친 사람, 경찰, 살인자, 처형자 등의 환상을 본다."

케빈 카터의 자살은 피사체를 '착취'해야 하는 사진가의 딜레마를 보여준 가장 극명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사진가'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셔터를 먼저 눌렀을 것이다. 사진가로 현장에 섰다면 그것이 비록 '착취'라는 비난을 받을 지라도 자신이 보는 것을 필름에 담아야 한다. 그것은 마땅히 카메라를 든 사진가의 '소명'이다. 그 사진 한 장이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버거운 '짐'이 될지라도.

짊어져야할 이 '짐'의 무게가 무거운 사진가일수록 사람들과 부대끼고 치열한 삶의 현장을 떠나지 않은 것이리라. <사람들 사이로> 본문에 소개된 헬무트 게른스하임의 글을 옮겨본다. 사진가가 셔터를 눌러야만 하는, 아니 누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의 글 속에 담겨있다.

"사진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유일한 언어이다.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을 나눌 수 있게 해주고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여건을 명백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인류의 인간애와 무자비한 광경의 목격자가 된다."

시대를 필름에 담는 사진가의 소명, 그 무거운 짐

<사람들 사이로>에는 4명의 사진가가 21세기 대한민국의 '얼굴'들을 싣고 있다. 한번 제목이라도 훑어나 보자. '대추리·도두리의 늙은 농부들에 관한 보고서-노순택', '사할린에서 만난 한인들-이상엽',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혼혈인', 공간이 말해주는 특정 캐릭터-Area. Park'. 모두 대한민국의 변두리에서 그들만의 삶의 어떻게든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얼굴'들이다. 이들의 얼굴은 타인의 얼굴이 아닌 사진을 보는 나의 '얼굴'이기도 하다.

a 클로즈업한 인물사진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희망씨>와 <세기말 초상>

클로즈업한 인물사진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희망씨>와 <세기말 초상> ⓒ 희망제작소·갤러리051

이 얼굴들은 사진가 김홍희씨의 <세기말 초상>에서 만난 적 있고, 최근에는 사진가 김용호씨가 희망제작소와 함께 만든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희망씨>에서 마주하기도 했다. 김홍희씨는 <사람들 사이로>에도 '사람 얼굴 찍는다는 것 알고 보니 인연놀음'이라는 꼭지를 맡아 전남 강진 남녘교회를 지키고 있는 임의진 목사와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세기말 초상>과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희망씨>는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촬영하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가감 없이 독자들로 하여금 사진 속 얼굴의 눈빛을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사가 담겨있다. 그의 연륜이 짧든 길든 살아온 세월만큼의 희로애락이 슬프거나 기쁜 표정으로 눈빛으로 주름살로 상처로 얼굴에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사람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데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황새울 사진관에서 내가 만난 그들은 달랐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수줍게 웃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것은 정녕,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누구나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 있는 법이다. 반대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도 있을 것이다.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나는 그 두 모습을 모두 필름에 담았다. 사진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묻고 있었다. 이토록 고운 나를, 남들에게 해코지 당할 일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온 나를, 험상궂은 투사로 만든 것은 누구냐고." - '대추리·도두리의 늙은 농부들에 관한 보고서', 22쪽

'할머니·할아버지의 두 모습'을 사진에 담아야했던 사진가 노순택씨의 고백 속 이호순 할머니 삶도, 극동 사할린에서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는 동포 최 사장 삶도, 차별을 온몸으로 삭여야만 했던 혼혈인 김넨시 삶도, 사창가 붉은 조명 아래 세라의 삶도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사진가들이 카메라로 담은 그들의 '얼굴'을 통해 우리는 본다.

a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땅의 혼혈인, 김넨시씨(왼쪽)와 쟈아니 페루키씨. 클로즈업한 얼굴 속 그들의 눈빛이 살아온 질곡을 말해준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땅의 혼혈인, 김넨시씨(왼쪽)와 쟈아니 페루키씨. 클로즈업한 얼굴 속 그들의 눈빛이 살아온 질곡을 말해준다. ⓒ 이재갑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담아야하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고민을 옮겨본다. 가슴이 물컹해지는 피사체(=사람)를 향한 '연민'이 느껴진다. 사진가를 향한 '착취의 혐의'가 벗겨지는 순간이다. 카메라를 들면 가슴을 쥐어뜯어야 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민과 연민을 사진가는 동시 안고 살아야한다. 사진이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왜관에 살고 있는 커티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넨시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습관처럼 카메라를 준비해서 어머님이 계시는 병원으로 향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고… 그러나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곳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순 없었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혼자 어머님 옆을 지키고 있는 넨시의 삶을 보면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순간 내가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4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사진작업을 한 것인가, 깊은 고민을 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만의 전쟁 - 혼혈인', 81쪽, 사진가 이재갑

덧붙이는 글 | 이미지프레스는 1999년에 창간된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트워크다. 50여 명의 사진가들이 네트워크 형태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200여 편의 사진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2000년 전, 2001 <이미지프레스, 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 <경기도, 도자예술의 혼> 전을 기획했다. 현재 다양한 기획전시와 사진출판 등을 모색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미지프레스는 1999년에 창간된 다큐멘터리 사진가 네트워크다. 50여 명의 사진가들이 네트워크 형태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200여 편의 사진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2000년 전, 2001 <이미지프레스, 포토저널리즘 페스티벌>, <경기도, 도자예술의 혼> 전을 기획했다. 현재 다양한 기획전시와 사진출판 등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들 사이로

이미지프레스 엮음,
청어람미디어,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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