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에서 해직된 이찬수 전 교수가 '강남대 이찬수 대책위' 주최로 16일부터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에서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의 이해'라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인권실천시민연대
1월 16일 저녁 7시,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에서 '강남대 이찬수 교수 부당해직사태 해결을 위한 대책위'(아래 대책위) 주최로 이찬수 전 교수의 '종교 다양성을 통해 본 기독교 이해' 강좌 1강이 열렸다.
대책위는 지난해, 이 전 교수에 대한 강남대의 부당한 해직을 규탄하고 시민사회에서의 올바른 기독교 이해를 위해 '기독교와 현대사회' 강좌를 개최했다. '기독교와 현대사회'는 이 전 교수가 강남대에서 6년 넘게 진행한 교양강좌 제목이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번 강좌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종교 현상을 둘러보고, 이를 통해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일반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강좌의 목적이다.
'다양성, 진리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1강은 '진리를 부정하지 않되 다양한 '진리 현상'에 대한 이해와 관용적 태도를 통해 진리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종교적 진리도 마찬가지다.
종교만 진리에 이르는 다양한 흐름 외면
@BRI@사회의 많은 분야 중에서도 특히 종교는 '진리'에 민감하다. 종교적 사고와 생활의 밑바탕에 '신'이라는 우주적 진리에 대한 규정과 지향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많은 종교인들은 그 '신'을 '자명한 대상'으로 설정하고 다양한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종교적 인식의 함정이 있다.
현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주관성을 강조한 칸트의 지적처럼, '자명한 대상'이란 단지 또 하나의 회의의 대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관심사도 제각각이다. 따라서 온갖 감각 기관을 통해 접하는 외부 세계의 모습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주관적인 감상과 평가,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라는 그물망을 통해 걸러진 것들이다.
이처럼 주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획일적이며 맹목적인 사유의 틀을 벗어나 더 깊은 진리에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현대 사상이나 철학, 문학, 예술 등의 공통적인 흐름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과 흐름을 외면하고, 왜곡하며, 배제하는 유일한 영역이 바로 종교다.
이 전 교수는 "종교가 우주에 통하는 보편적 진리를 이야기하지만, 그런 진리도 인간의 제한된 언어로 수용되고 표현되는 순간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면, 사람들은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보고 있습니다. 지극히 제한된 언어의 함정에 빠져, 언어를 넘어서는 참된 우주적 진리, 보편적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전 교수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개신교, 천주교, 유교, 불교, 이슬람 등의 언어가 사실은 종교에 대한 참다운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각기 다른 듯이 보이는 종교를 하나의 이름으로 명사화해 표현하는 것은, 그 내면에 각각의 종교가 그 이름만큼이나 서로 다른 종교이며, 공통적인 부분을 갖지 않는다거나 서로 소통할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도 합니다. 각각의 종교가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 서로 융합하기는커녕 대화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명사와 명사 사이에는 오직 차이를 강조하는 두꺼운 벽이 서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차이의 벽은,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종교간 차별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조장하기까지 한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종교 영역에서, 차이에 대한 맹목적인 강조와 차별하기 관행이 유독 심하다. 개신교면 개신교, 천주교면 천주교, 불교면 불교, 이슬람교면 이슬람교 각각의 이름에'만' 절대적인 전 우주적 진리가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전 교수는 "종교를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의 '이름'으로 최종 규정하고 구분하는 순간 종교 본연의 세계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직 기독교의 진리, 이슬람의 진리, 불교의 진리만이 서로 떨어져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자체가 반종교적이며, 반진리적이다.
"종교를 명사로만 이해하면 보편적이고 전 우주적이라는 '신'의 속성이 각각의 '명사'로 국한돼 제한적이며 편협한 '신'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각각의 종교는 자신들의 신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모순이며, 인식의 왜곡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 '명사적 이해'보다 '형용사적 이해'로 접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