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농수로, 시멘트 때문에 죽어간다

함안 산인 개간들·송정들 농수로 공사... 바닥까지 시멘트로 시공

등록 2007.01.18 20:51수정 2007.01.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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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넓은 농수로를 양 옆 둑은 물론 바닥까지 철근과 시멘트를 넣어 공사를 하고 있다.
제법 넓은 농수로를 양 옆 둑은 물론 바닥까지 철근과 시멘트를 넣어 공사를 하고 있다.윤성효

폭 6미터 정도의 제법 넓은 농수로가 둑 양 옆은 물론 바닥까지 시멘트로 공사를 해놓았다.
폭 6미터 정도의 제법 넓은 농수로가 둑 양 옆은 물론 바닥까지 시멘트로 공사를 해놓았다.윤성효

"개울이며 하천을 시멘트로 모두 발라 죽고 나면 나중에 농촌공사는 할 일이 없어지지 않느냐."

@BRI@18일 오후 경남 함안 가야읍에 있는 한국농촌공사 함안지사 사무실을 찾은 이호석씨가 한 말이다. 함안환경보호협회 이사인 이씨는 이날 오후 마산창원환경운동연합 관계자와 함께, 함안 산인면 개간들ㆍ송정들을 둘러본 뒤 농촌공사 관계자들에게 이같이 항의했다.

개간들ㆍ송정들은 함안군 산인면ㆍ대산면 송정리ㆍ내인리ㆍ부봉리ㆍ구일리에 걸쳐 있는 제법 넓은 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논이 경지정리가 되어 있는데, 산에서 내려온 물이 들녘을 지나면서 농사를 짓는데 쓰이기도 하고 송정천과 함안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들녘의 거의 대부분의 수로가 시멘트로 되어 있다. 논과 논 사이의 작은 수로는 유(U)자형 관을 만들어 묻어 놓았다. 제법 넓은 개울(하천)까지 유자형으로 만들어 놓았다. 들녘 가운데에는 제법 넓은 개울이 두 개가 있는데, 각각 폭이 3m와 6m 내외다. 그런데 이 개울의 바닥도 모두 시멘트로 되어 있다.

들녘 한 쪽에서는 철근에 시멘트를 넣어 수로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바닥은 물론, 수로의 양 옆으로 철근과 시멘트가 들어가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지금 공사를 하고 있는 곳에 이어진 수로의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으며, 그 바닥에는 흙이 보였다. 그런데 철근으로 바닥을 찔러보았더니 조금 들어가다가 말았는데, 바닥까지 시멘트로 공사를 한 뒤 그 위에 흙을 덮어 놓았던 것이다.

농수로 공사가 한창이다.
농수로 공사가 한창이다.윤성효

폭 3미터 정도의 농수로도 바닥까지 시멘트로 공사를 해놓았다.
폭 3미터 정도의 농수로도 바닥까지 시멘트로 공사를 해놓았다.윤성효

"50년 넘게 살았는데, 지금은 물고기가 없어"


논과 논 사이의 작은 농수로에는 유자형 관이 설치되어 있다.
논과 논 사이의 작은 농수로에는 유자형 관이 설치되어 있다.윤성효
이호석씨는 바닥까지 시멘트로 할 경우 자연파괴가 심하다며 우려했다. 이 곳에서 50년 넘게 살았다고 한 그는 "이전에는 조그마한 농수로뿐만 아니라 개울이며 하천에는 미꾸라지며 장어 등 물고기들이 많이 살았고, 고기들이 낙동강과 함안천으로 자주 오르내리며 살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언제부턴가 들녘에 시멘트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면서부터 자연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겨울이 되면 철새들도 많이 날아왔는데 요즘은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농민들이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바닥까지 시멘트가 들어간 U자형을 원하는 모양인데, 농촌공사가 농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다 보니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생태환경을 생각하면서 수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면 잠시 공사를 멈추었다가 관심이 소홀해지면 또 공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2008년 람사총회가 경남에서 열리고, 최근 들어 습지 보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면서 "그런데도 무조건 용수공급만 이롭게 하기 위해 시멘트를 바르고 있으니 문제다"고 지적했다.

마창환경운동연합 이보경 간사는 "큰 하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도시며 농촌도 작은 하천이며 실개천이나 지천을 살려야 한다는 게 전반적인 추세다"면서 "하천의 경우 담수와 자정능력이 중요한데, 바닥까지 시멘트로 할 경우에는 자정능력을 기대할 수 없고, 더군다나 생물 서식처는 물론 이동통로로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생태환경 고려한 시공 가능하나 널리 활용 안돼

농수로 중간에 유자형 관 대신에 5미터 정도 길이로 돌로 둑을 만들고 바닥은 흙과 돌로 되어 있는 공간이 있다.
농수로 중간에 유자형 관 대신에 5미터 정도 길이로 돌로 둑을 만들고 바닥은 흙과 돌로 되어 있는 공간이 있다.윤성효

제법 넓은 농수로인데, 양 옆 둑은 시멘트로 시공을 해놓았으나 바닥은 시멘트로 하지 않고 돌을 중간에 놓아 두었다.
제법 넓은 농수로인데, 양 옆 둑은 시멘트로 시공을 해놓았으나 바닥은 시멘트로 하지 않고 돌을 중간에 놓아 두었다.윤성효

이곳에는 간간이 생태환경을 고려해 시공된 수로도 있었지만, 널리 활용되지는 않고 그 구간은 짧았다. 가령 폭이 제법 넓은 수로의 경우 둑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근과 시멘트로 시공하더라도 바닥은 그대로 둔 채, 제법 큰 돌을 중간마다 두는 공법이다.

또 논과 논 사이에 있는 작은 농수로의 경우에는 U자형 관을 묻으면서 중간에 5m 안팎으로 돌로 둑을 만들고 바닥은 흙으로 두는 공법이다.

이호석씨는 "그동안 여러 차례 건의를 한 끝에 간혹 바닥까지 시멘트로 바르는 공법은 하지 않고 있는데, 많이 활용된 게 아니고 극히 일부에 그친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공사 함안지사 유지관리팀 관계자는 "농업인들이 용수확보를 위해 시멘트로 된 U자형관을 설치해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으며, 바닥까지 시멘트로 시공하는 것은 용배수로 유지관리 차원이다"고 말했다.

그는 "농수로의 경우 시멘트 시공을 하지 않고 흙이나 돌로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경우 정기적으로 수초도 제거해 주어야 하고 준석작업도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현재 농촌의 경우 고령화되다보니 그런 작업을 할 인력도 부족한 처지여서 농업인들의 요구에 의해 바닥까지 시멘트를 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개 용배수로 공사에는 환경성 검토를 하는데, 개간들ㆍ송정들에 대한 공사에는 환경성 검토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면서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윤성효

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다.
바닥은 시멘트로 되어 있다.윤성효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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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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