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들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정보화 현장

등록 2007.01.19 16:58수정 2007.01.1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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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5일 컴퓨터교육 시작하던 날 ⓒ 강민구

전남 영광에 있는 성지송학중학교(모경희 교장)에서는 지난 15일부터 학교 주변 농촌지역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컴퓨터 교육을 시작했다.

군서면(이종근 면장)과 함께 기획한 이번 방학 중 컴퓨터 교육은 농촌이라는 지리적 여건상 소외되고 마땅히 교육받을 곳이 없었던 차에 가까운 학교를 이용한 점이 지역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BRI@더구나 겨울철은 농한기로 마땅히 소일거리가 없었던 지역 어르신들에게도 유익한 시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육 첫날에는 15분이 넘게 오셔서 방학 중 조용하던 작은학교에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가득했다.

둘째 날까지는 컴퓨터와 친해지며 켜고, 끄기, 한글 타자연습 등을 지도했다. 셋째 날부터는 처음으로 컴퓨터를 대하신 분들이 대부분인지라 참석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나오시던 어르신 중에 홍일점이셨던 ○○○분은 "아따 적게 오니께 선상이 개인지도를 해주구만, 수준에 딱 맞아서 난 좋아"라면서 "앞으로도 시방처럼 했으믄 쓰겄네"하고 웃으시며 얘기를 건네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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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정보를 검색하시는 모습 ⓒ 강민구

셋째 날에는 드디어 인터넷이란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검색사이트를 알려주고 어르신들께 검색어를 넣어보라고 하니 '술', '영광', '군서면' 이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어르신이 대뜸 "인터넷으로 자식 월급도 알 수 있나?"라고 물었다. 이에 왜 그러시냐고 여쭸더니 "자식이 돈을 잘 버는 것 같은데 알려주지 않아서 그러네"라고 하셨다. 은연 중에 좋은 직장에 다니는 자식을 조금이나마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보여서 엷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자 주위 분이 "내 딸래미는 천안 00전자에 있는디"하시며 거들어주시는 모습이 꼭 마을 회관에 와 있는 듯했다. 다른 어르신은 인터넷으로 고추 모종값과 양파값을 보고 계시기에 깊은 주름이 더 깊이 패이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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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보내는 어르신의 모습 ⓒ 강민구

네째 날, 이제는 '이메일'이라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봉투에 집 주소 쓰고 우표 붙이던 시절이 전부였던 어르신들에게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고 하니 대뜸 꼭 해야 하는 거냐고 되물어서 한참을 설명드렸다.

처음 가입해보시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집 전화나 핸드폰 번호로 아이디를 만들고, 혹시나 잃어버릴까 봐 가져오신 메모지에 또박또박 쓰시는 모습이 얼마나 열심인지 부끄럽기만 했다.

1시간에 걸쳐 회원가입을 마치고 드디어 메일을 작성하게 되었다. 처음이라 서로 아주 짧은 내용의 메일만 주고받고 있을 때 한 어르신께 자제분에게도 연락해봄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더니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일주소를 알려주고 짧은 내용이지만 부자간의 편지를 왕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힘든 농사일로 굵어진 손은 갈라져서 거칠어졌지만 배우고 자식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하나하나 정성들여 자판을 누르시고 있었다. 이 거친 손이 그 어떤 발레리나의 발보다도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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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우며 가르치는 모습의 어르신들 ⓒ 강민구

다섯째 날, 이제는 컴퓨터를 켜는 일은 먼저 시작하시면서 인터넷을 시작하고 계신다. 하지만 로그인의 단계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을 보면서 어제의 일을 반복해야만 했다.

1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곧잘 따라하시며 나에게 답장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이 점차 늘어만 갔다. 짧은 내용의 메일이지만 금과 같은 문장들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첫 주 교육을 마치며 좀 더 많은 어르신들에게 꾸준한 교육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실질적으로 정보화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좀 더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리라 본다.

또 본교에서도 현재의 낙후된 시설을 보완하여 쾌적하고 좀 더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여 지역 정보화 교육의 중심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유관기관에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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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중학교(대안학교)에서 일어나는 교육을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작은 학교지만 어느학교보다 내실있는 프로그램을 얘기하고 자랑하고 싶어서 가입했습니다. 글은 학교와 교육 그리고 환경에 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물론 능력이 된다면 더 많은 분야에도 다양하게 넓혀가고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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