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에 새겨진 민중의 염원

호남문화의 젖줄, 영산강 문화권을 찾아서 1

등록 2007.01.21 09:14수정 2007.01.2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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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운주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남역사교사모임 천장수 선생님

운주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남역사교사모임 천장수 선생님 ⓒ 이기원


"파격 그 자체야."

운주사를 둘러본 소감을 함께 간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정말 그렇다. 구름이 머무는 곳에 세워진 절 운주사에 가면 수많은 불상과 석탑이 있다. 그 많은 불상과 석탑의 대부분이 우리가 생각하는 불상이나 석탑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그 많은 불상과 석탑을 통틀어 천불천탑이라 부른다.


a 운주사 석불군과 거지석탑

운주사 석불군과 거지석탑 ⓒ 이기원


천불천탑은 옛 문헌에서도 등장한다. 1530년에 증보된 동국여지승람에도, 1632년에 간행된 능주읍지에서도 '천불산 좌우 산마루와 계곡에 석불과 석탑이 각기 천 개씩 있고, 두 석불이 등을 마주 대고 앉아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 중에서 등을 마주대고 앉아 있는 석불은 현재 운주사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석탑과 석불이 각기 천 개씩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천불천탑을 숫자의 의미보다는 많음이나 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a 옛 문헌에 등장하는 석불감 쌍배불좌상

옛 문헌에 등장하는 석불감 쌍배불좌상 ⓒ 이기원


천불천탑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운주사에 가면 다양한 모습의 불상과 석탑을 볼 수 있다. 불상도 석탑도 일반적인 절에서 볼 수 있는 잘 생기고 근엄한 모습, 온화한 미소를 띤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목구비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못생긴 모습이 대부분이다.

석탑 또한 그 모양과 형식이 천차만별이다. 사각형의 옥개석을 올린 석탑이 있는가 하면 원형의 옥개석을 올린 석탑도 있고, 벽돌탑 양식을 지닌 석탑이 있는가 하면 옥개석이 밥그릇이나 호떡같이 생긴 것도 있다.

불상이나 석탑을 둘러보면서 오랜 세월 돌을 다듬으며 살아온 솜씨 좋은 석공의 작품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석공들의 실습장이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이곳의 석재가 제대로 된 불상과 석탑을 만들기에 적합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배경을 설명하기도 한다.


a 운주사 석불군

운주사 석불군 ⓒ 이기원


a 원형다층석탑(좌), 원형구형탑(우)

원형다층석탑(좌), 원형구형탑(우) ⓒ 이기원


엉성하고 부족한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다름 아닌 민중의 모습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을 제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잘난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극에 등장하는 뛰어난 인물들은 언제나 잘 생긴 사내이거나 꽃 같은 미인들이다. 그네들의 손발이 되는 사람이 그네들보다 못나거나 못생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현상은 불상이나 석탑에서도 확인된다. 석굴암 본존불의 세련된 아름다움은 부처와 동일시되는 왕을 상징하는 것이다. 석가탑 다보탑의 조화와 균형 잡힌 모습 또한 지배체제의 안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힘과 재력을 바탕으로 부처의 이름으로 자신의 모습을 돌에 새기고자 했던 것이다. 더불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통치체제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석탑을 만들었던 것이다.

반면에 제 몸뚱이 하나도 제 뜻대로 움직이기 어려웠던 민중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새긴 불상이나 자신들의 꿈을 기원하는 석탑을 제작하기 어려웠다. 솜씨 좋은 석공을 데려올 권력도 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천불선 계곡에 조각되고 새겨진 수많은 불상과 부처는 그래서 어느 특정 시기에 제작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세월 속에서 민중들의 간절한 꿈과 희망을 이루어줄 불상과 석탑을 조각해온 것들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황석영은 <장길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의 간절한 꿈과 희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a 장길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운주사 와불

장길산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운주사 와불 ⓒ 이기원

우리가 세상의 밑바닥에 처박힌 것처럼 미륵님도 처박혀 있는 게야. 세상이 거꾸로 되었으니 상족하수(上足下首)가 맞네. 그래야만 우리가 힘을 합쳐 바로 일으켜 세울 것이 아닌가. 모두들 그 말에 따라서 머리와 다리를 정하고 와불을 새겨나갔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코를 눈을 어떤 사람은 몸을 배를 어떤 이는 팔 다리를 새겼다. 미륵님의 형상이 이루어졌다.

자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네.

그들은 머리와 어깨와 몸에 달라붙어 힘을 썼다. 북은 그들의 힘쓰는 앞소리와 뒷소리에 장단을 맞추었다. 미륵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미륵은 다시 넘어졌다. 사람들은 지칠 줄 모르고 미륵님을 밀어 올렸다. 그때에 도저히 이 캄캄한 밤의 노고를 참지 못한 사람 하나가 있어, 손을 떼고 혼자 떨어져 나가며 거짓말로 외쳐버렸다. 닭이 울었다!
-황석영, <장길산> 10권 441쪽.


운주사의 누워있는 와불을 소재로 거꾸로 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처절하게 몸부림치다 좌절하는 민중들의 애환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a 공사바위에서 내려다본 운주사 전경

공사바위에서 내려다본 운주사 전경 ⓒ 이기원

전남대 박물관의 발굴 조사에 의해 운주사(雲住寺)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굴되었다. 구름이 머물다 가는 절이란 뜻이다. 구름이 머물다 가는 천불산 운주사 계곡에는 세상에 버림받고 천대받던 이들의 비원이 못생긴 부처가 되어 엉성한 석탑이 되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관하고 전남역사교사모임이 준비한 자주연수가 있었다. 이번 자주연수의 주제는 '호남 문화의 젖줄, 영산강 문화권을 찾아서'였다. 이 기사는 답사 코스 중의 하나였던 화순 운주사를 답사하고 쓴 것이다.

덧붙이는 글 1월 12일부터 1월 15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주관하고 전남역사교사모임이 준비한 자주연수가 있었다. 이번 자주연수의 주제는 '호남 문화의 젖줄, 영산강 문화권을 찾아서'였다. 이 기사는 답사 코스 중의 하나였던 화순 운주사를 답사하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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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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