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봉우리', 그리움 안고 살다

[제주의 오름기행 28] 바다를 여는 수중화산 일출봉

등록 2007.01.21 11:21수정 2007.01.2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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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지코지에서 본 일출봉
섭지코지에서 본 일출봉김강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14번지. 바다위에 치솟은 봉우리 하나가 구멍 뚫린 겨울바다에 온몸을 적셨다. 파도는 '바다 속에서 수증 폭발한 화산체'를 세차게 때린다. 용암 분출로 이글거렸을 성산포 바다는 파도가 흔들어도 말이 없다. 바다위에 솟아 난 봉우리 때문이다.

일출봉 등성이에서 바라본 성산포
일출봉 등성이에서 바라본 성산포김강임
제주의 360여개 오름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 속에서 솟아난 화산체 일출봉. 해뜨는 마을로 유명한 일출봉 기행은 천년의 억겁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일출봉은 현무암질 마그마가 얕은 바다 밑으로 분출하며 형성됐다 한다. 수심이 낮은 곳에서 분출이 시작됐기 때문에 초기부터 폭발적인 형태를 보였다는 기록과 수백 m의 분수처럼 치솟은 화산재와 화산력들은 화구 주변에 한 겹씩 쌓여 다른 화산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층리를 만들어 갔다.

해안가에 나타난 퇴적층
해안가에 나타난 퇴적층김강임
황갈색과 짙은 회색의 응회암 층들이 무수히 쌓인 층리를 밟고 바다가 열리는 오름. 그 오름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오르면 의미가 더욱 깊다.

신양리 바닷가에 비친 해무리
신양리 바닷가에 비친 해무리김강임
신화처럼 솟아있는 오름 등성이에 오르니 겨울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여느 오름에서 느낄 수 없는 바다냄새가 코끝을 스민다. 우뚝 솟아 있는 화산재가 바닷물에 적셔 있음은 성산포 바다는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 그리움 때문인가? 이생진 님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가 생각났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사람 빈 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 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 눈으로 살자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중에서


암석위에 뿌리를 내린 생태계
암석위에 뿌리를 내린 생태계김강임
놓인 계단이 통해 분화구를 향했다. 오름 등성이에는 각양각색의 암석덩어리들이 산재해 있었다. 천년 베일의 신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암석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조각난 암석 사이로 바다가 보인다.

김강임

김강임
천년의 암석 덩어리에 뿌리를 내린 쥐똥나무와 음지식물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영주십경이 하나로도 불려지는 일출봉 사방이 신비롭기만 하다. 오름중턱에 서니 신양리 바닷가로 기우는 해무리가 장관이다.

일출봉 분화구
일출봉 분화구김강임
해발고도가 높아져 갈수록 풍경은 극치를 달했다. 정상을 밝는 기분은 태고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다. 드디어 일출봉 분화구에 섰다. 넓은 분화구 능선에는 병풍처럼 바위가 서 있었다. 마치 자연의 반란을 의미하는 듯하다. 탄성을 자아내는 순간이다. 무려 지름 6백m나 되는 정상은 자연이 낳은 극치랄까.

분화구 식생대
분화구 식생대김강임

정상의 능선은 병풍처럼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상의 능선은 병풍처럼 암석으로 둘러싸여 있다.김강임
제주오름의 묘미는 늘 자연의 조화라는 점이다. 하지만 바다 속에 곤두박질친 일출봉 한가운데 서니 지구 끝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밋밋하게 내려앉은 초원, 마치 한라산 병풍바위 같은 암석,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기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성산포에 솟아있는 화산체 일출봉은 그리움을 안고 산다.

성산 일출봉


성산 일출봉은 바다에서 수직으로 솟구친 수중화산으로 거대한 암석 왕관 모양을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비교적 완만하게 이어져 아름다운 초원능선이 성산마을까지 이른다.


높이 10여m, 둘레 3m의 커다란 바위기둥이 마치 영실의 오백나한과 같은 모습으로 여러 개가 우뚝 서 있어 장관을 이루며 해발 182m 정상부분의 가운데는 3만여 평의 큰 분지를 이룬다.

주변에는 99개의 깎아 세운 듯한 바위가 둘러서 있어 천혜의 산성을 이루고 있다하여 예부터 '성산'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일출봉 남쪽에는 길이 5천m의 타원형 해안이 신양반도, 섭지코지로 이어지며 해안에는 모래 암석이 평평하게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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