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 대단한 일했다고 그라요?"

22년 동안 모은 1000만원 장학금으로 내놓은 전남 함평 모복덕 할머니

등록 2007.01.22 16:20수정 2007.07.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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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2년 동안 한 푼씩 모은 돈 1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모복덕 할머니가 메주가 매달린 집 앞마당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22년 동안 한 푼씩 모은 돈 1000만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모복덕 할머니가 메주가 매달린 집 앞마당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아따! 조용히 돈만 갖다 줬는디, 으떻게 알고 사방데서 전화오고 찾아오고 그란다요? 이럴라면 아무도 모르게 어디다 줄 걸 그랬어라…."

나비축제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전라남도 함평군하고도 신광면 보여리에 사는 모복덕(68) 할머니. 모 할머니가 22년 동안 한 푼 두 푼 모은 돈, 1000만원을 최근 장학금으로 내놓아 화제다.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를 더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써달라면서….

여느 기업가나 재력가가 내놓은 억(億)대의 장학금보다 아름다운 1000만원. 그 할머니의 질곡 어린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함평으로 찾아갔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지난 세월

할머니는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고개 넘어 신광면 삼덕리에서 연지곤지 바르고 시집을 왔단다.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며 이듬해 남자 쌍둥이를 낳고 그 뒤로 딸 넷을 더 낳았다. 똥장군 지고 떼밭을 일구며 악착같이 살았지만 해가 갈수록 딸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고.

옆에서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할아버지(채동만·70)가 말을 이어갔다.

"한국전쟁 때 물팍에 총탄을 맞아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의 술주정과 매질에도 우리 할멈 고분고분하며 농사일이며 집안일이며 고상(고생)한 거 이야기하다 보면 끝이 없어라."


순간 깊게 패인 할머니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애들이 학교에 들어가니 증말로 힘들었어라.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한 푼 두 푼 꿔가며 학교에 보냈는디, 전에 꿔 간 돈이나 얼른 갚으라 하며 문전박대할 때는 그 집 대문에 쭈그려 앉아 눈물 한 바가지는 쏟았지라. 우리 아들놈들 학교는 보내야 쓰겄는디…. 참말로 많이도 울었소."


첫째와 둘째 아이가 고등학교 들어간 뒤엔 양말장사, 생선장사, 김장사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는 것. 장사가 잘 된 날이면 명태라도 사 오고, 안된 날이면 콩나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자식 가르치려 눈물 반 한숨 반

"그때 다짐했지라. 우리 자식 같은 아이들이 어딘가에도 분명히 있을 것인디… 내 꼭 돈 모아서 그 아이들 눈에 닭똥 같은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힘들었던 옛 이야기를 꺼내던 할머니는 한 마디로 '한숨 반 눈물 반'이었다고 했다.

"이제 쌍둥이는 쉰을 넘어 서울과 인천에서 직장생활하며 먹고는 사는디, 다른 집처럼 아들 가르치느라고 큰딸을 못 가르친 게 후회 됩디다. 그래서 큰딸 집에는 김치며 반찬거리를 한 포기, 한 국자 더 가져다 주지라. 애들 아버지 생신 때 내려오면 내가 항상 그라요. '미안하다. 못 갈켜 미안하다'고."

그런 어머니에게 큰딸과 사위는 "괜찮아요. 괜찮습니다"하며 다른 자식들보다 훨씬 더 잘해준다고 자랑했다.

모 할머니는 5년 전 위의 일부를 잘라냈다. 위암 3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수술을 했다. 지금도 밥 한 숟가락밖에 먹지 못한다. 매달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 할아버지 또한 경운기 사고로 머리와 척추를 다치고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는 집은 9년 전, 누전으로 추정되는 화재에 몽땅 타버렸다. 이후 판잣집에서 살면서 연탄가스를 마셔 생사를 넘나들기도 했다. 이처럼 할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 옛날, 자신과 했던 약속을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할멈 잘했네. 잘했어."

할머니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2년 전부터 한 푼씩 돈을 모았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생기면 모았다. 가을에 벼 수매를 하면 조금 더 모았다. 할아버지한테도 알려주지 않고 한 푼 두 푼 모은 게 얼마 전 1000만원이 만들어진 것.

함평군청을 찾아가 인재육성장학금으로 써달라며 1000만원을 주고 온 그날 저녁.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22년 만에 고백을 했단다.

"우리 자식들 옛날 생각해 내가 얼마 모아서 어디다 갔다 줬어라" 했단다. 이에 대해 할아버지는 "당신이 한 푼 두 푼 모았당께, 당신 알아서 쓰소" 했단다. 그 액수가 얼마인지, 어디다 줬는지 묻지도 않았단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자 여기저기서 집으로 할머니를 찾는 전화가 왔다.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들은 할아버지는 그날 저녁 딱 한마디 했단다. "잘 혔네, 잘 혔어." 그리고 단 둘이 있는 방에서 업어줬단다.

집에 불이 나고 연탄가스에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새 집을 지었을 때 업어주고, 이번에 두 번째 업어주었다는 게 할머니의 귀띔이다.

할머니는 요즘 '손자·손녀들 머리에 좋다'며 호박씨를 까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런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말밖에 해줄 말이 없다"며 "이제 건강하게 오래오래 곁에 살아주기만 바랄 뿐"이라며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졌다.

날마다 안부를 묻는 자식들도 장학금 기탁 소식을 전해듣고는 "어머니, 좋은 일 하셨네요" 했단다.

"땅을 소중히 여기는 농사꾼이 목돈이 생기면 논 한 마지기라도 더 살려고 할텐데 할아버지가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모 할머니는 "이제 우리 할아버지랑 먹고 살만큼은 논이랑 밭이 생겼어. 글고 뭐니뭐니 해도 자식농사가 최고 아니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

a 버거운 농촌생활에서도 '함평천지'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지닌 모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에도 집안일을 돌보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버거운 농촌생활에서도 '함평천지'만큼이나 넓은 마음을 지닌 모 할머니가 이야기 도중에도 집안일을 돌보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 이돈삼

#모복덕 #장학금 #1000만원 #함평군 #채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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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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