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구마에 김치를 곁들여서 먹으면 금상첨화이지요.이승숙
긴긴 겨울밤이면 입이 궁금해집니다. 그러면 언니가 슬슬 나를 꼬입니다.
"우리 가위, 바위, 보 해서 지는 사람이 고구마 깎아주기 하자."
언니와 나는 흙이 묻은 고구마를 만지기 싫어서 온갖 수를 다 써가며 가위, 바위, 보를 했습니다. 삼판이승의 내기에서 승률은 거의 비슷비슷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늘 이기려고 매번 할 때마다 온갖 수를 다 썼습니다.
물고구마는 생으로 먹어도 맛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게 맛있는 고구마인지 다 압니다. 겉껍질 색이 빨갛게 짙고 단단한 고구마는 보나마나 물기가 없습니다. 그런 고구마는 깎아 봤자 맛이 없습니다. 또 동글동글한 고구마도 맛이 없습니다. 씹어보면 물기가 없어서 팍팍하기만 합니다.
긴긴 겨울밤 입이 궁금할 땐 고구마를 깎아 먹었지요
껍질의 색이 옅고 덜 단단한 고구마는 틀림없이 물기가 많은 물고구마입니다. 그런 고구마는 동글동글하지 않고 길쭉합니다.
물고구마는 벌써 깎을 때부터 다릅니다. 뻑뻑하지 않아서 낫으로 잘 깎입니다. 다 깎아서 한 입 베어 물면 달달한 물기가 입 안에 고였지요. 그런 고구마는 암만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어요. 날고구마를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어서 물기 많은 똥을 누게 됩니다. 그래도 맛이 있어서 밤마다 바가지에 수북하게 껍질이 나오도록 깎아 먹었습니다.
생으로 먹는 고구마가 아무리 맛있다 해도 고구마라면 역시 군고구마가 제일 맛있지요. 우리 아버지는 아침저녁마다 고구마를 구워 주셨어요. 소죽 끓이고 나서 불기가 남아 있는 아궁이에 고구마를 몇 개 던져 넣고 재를 잘 덮어 주면 고구마는 저절로 익습니다. 아버지는 소죽 끓이고 나면 꼭 고구마를 묻어두었어요.
금방 꺼낸 군고구마는 얼마나 달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달디 단 국물이 흘러내릴 때도 있습니다. 아, 그 때 먹었던 그 고구마 맛이라니...
그렇게 맛있던 물고구마가 한 때는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물고구마보다는 밤고구마를 더 낫게 쳐주었어요. 밤고구마는 동글동글한 게 생긴 것도 귀여웠지요. 찌거나 구워 놓으면 까먹기도 좋았어요.
하지만 밤고구마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타박타박해서 목이 메는 밤고구마보다는 달달하고 물렁거리는 물고구마를 더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물고구마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구마 이름이 어느 순간부터 호박고구마로 바뀌었네요. 고구마 속살이 노랗다고 호박 고구마라고 부릅니다. 그래도 나는 물고구마라고 부를 거예요. 어린 시절 부르던 이름 그대로 물고구마입니다.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채반을 얹어서 고구마를 쪘습니다. 푹 익어야 제 맛이 나므로 김이 나고도 한참동안 더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젓가락으로 찔러보았더니 푹 들어갔습니다. 이러면 아주 잘 익은 겁니다.
고구마와 김치를 한 접시씩 담아서 내왔습니다. 식구들이 아주 맛있게 먹습니다. 고구마는 화학 첨가물이 하나도 안 들어간 완전 무공해 식품입니다. 섬유질이 많아서 변비에도 좋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앉은 자리에서 두 개 세 개씩 까먹습니다. 예전 나 어릴 때는 쌀 아끼려고 밥 대신 먹던 고구마를 지금은 맛으로 먹습니다. 고구마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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