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환 압박 다주택자 "내놔도 안 팔려"
"더 떨어진다" 우려에 급매물만 쌓여

[현장] '집값 거품붕괴' 시나리오 현실화되나

등록 2007.01.24 10:55수정 2007.01.3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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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부의 연이은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집값 거품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일부 지역에서 재건축이 진행중이다.

정부의 연이은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집값 거품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잠실아파트 단지. 일부 지역에서 재건축이 진행중이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은 가운데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의 집값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분양가가 비쌀수록 인기가 많았던 이른바 '강남 공식'도 정부의 고강도 정책에 된서리를 맞았다.

여기에 매매가의 선행지표인 전세도 침체돼 있어 앞으로 집값이 더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출상환 압박을 받고 있는 다주택자들이 시세보다 싸게 집을 내놓아도 매수세가 완전히 끊겨 하락 압력이 큰 상태다.

@BRI@부동산 시장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논란이 돼 온 집값 거품붕괴 시나리오가 현실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나 거품 붕괴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풀릴 경우 이는 건설업계의 이해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서초자이' 미분양, 버블 붕괴 신호탄?

높은 분양가를 내세울수록 잘 팔렸던 이른바 '강남 분양공식'이 깨졌다. 평당 3000만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고 분양가로 화제를 모았던 서울 서초구 '서초아트자이' 주상복합 아파트가 최근 공개청약 결과 미분양사태를 맞았다.

서초아트자이는 분양가격이 ▲54평형 16억~19억원 ▲62평형 18억~21억원 ▲101평형 34억5000만원에 달한 사상 최대 분양가 아파트로, 분양 전부터 집부자들의 큰 관심이 쏠렸던 것.


54평형은 56가구 모집에 서울·수도권 1순위를 합해 17명, 62평형은 104가구 모집에 26명만 신청해 1~3순위 모두 미달됐다. 4가구를 분양하는 펜트하우스 101평만이 서울 1순위에서 4명이 신청해 겨우 모집 가구수를 채웠다.

안시찬 서초동 시티랜드부동산 대표는 "대출규제를 중심으로 정부의 고강도 대책이 잇따르면서 이제 더 이상 고분양가 아파트가 인기를 끄는 시대는 사라졌다"며 "특히 앞으로 분양가 인하 압력이 높아질 경우 비싸면 무조건 잘 팔리던 시대는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서초아트자이 미분양을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고분양가 시장의 위축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강남 불패 신화'를 주도해 온 이른바 '큰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들이 부동산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서 강남권 고분양가 아파트들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는 것.

10년 이상 강남 부자 고객을 상대로 재테크 관리를 하고 있는 이숙철 동양종합금융증권 강남골드센터 지점장은 "과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던 고객들도 올해 들어서는 부동산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미 강남권 큰손들은 부동산 거품 붕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 기대감 커지면서 매수세 완전 실종

a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과천 정부종합청사 인근 주공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남소연


강남권 고분양가 아파트의 분양 미달에 이어 재건축과 일반 아파트의 매매가도 심상치 않은 모습이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와 대출 규제 등 집값 하락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매물은 늘고 매수세는 실종됐다.

재건축의 경우 정부의 1.11대책 발표 뒤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추가 하락을 우려한 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시세보다 최대 5000만원 싸게 매물을 내놓고 있지만 매수자의 발길은 뚝 끊겼다.

재건축 단지인 잠실주공 5단지 34평형은 호가가 지난 연말보다 1억원 이상 떨어진 12억5000만원에 형성돼 있다. 해마다 겨울철이면 '방학특수'로 인기를 모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올해 만큼은 예외다. 호가가 11억원선인 이 아파트 31평형은 최근 5000만원 이상을 낮춰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호가가 떨어지는데도 좀체 사려는 이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개포 주공 5단지 인근의 우진공인중개사 고재영 대표는 "지난 1.11 대책이 나온 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고객을 중심으로 급매물이 나오고 있지만 더 하락할 것으로 기대한 매수자들이 사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 집값 폭등의 진원지였던 과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10억원짜리 주공2단지 18평형은 시세보다 최고 1억원 가량 하락했으며, 주공 1단지는 5000만원 이상 싼 6억5000만원짜리 급매물이 나와 있다.

과천 주공단지 인근 오렌지컨설팅 박강호 대표는 "매수자들도 추가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감으로 급매물조차 외면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이자 부담이 크고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1가구 2주택자들이 자금사정상 집을 팔려고 해도 안 팔려서 고통 받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흔히 매매가의 선행지표로 인식되는 전세도 침체돼 있어 앞으로 집값 하락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겨울철마다 전학생들 때문에 인기가 높았던 양천구 목동의 경우 전세가 빠지지 않아 비어 있는 집도 있다.

한 달 전만해도 목동아파트 27평의 경우 2억5000만원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지만 현재는 2억원까지 내려갔는데도 물건이 쌓여 있다. 35평형도 4억에서 3억5000만원까지 하락했다.

목동 주공 7단지 인근의 평화부동산 최희성 대표는 "지난달 중순 이후 한 달이 넘도록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비어있는 집도 있다"며 "올해처럼 전세 시장마저 꽁꽁 얼어붙은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벌계 연구소 거품 붕괴 부정적 측면 집중 부각

a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안정화방안 관련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5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부동산안정화방안 관련 관계장관 합동브리핑에서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이처럼 부동산 거품 붕괴 조짐이 시장 여기저기서 관측되자 관련 분야 전문 연구원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삼성경제연구소, 현대경제연구원 등 재벌계 연구소들은 일단 정부의 대출규제 중심의 고강도 금융정책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잘못된 대책으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 가계 몰락으로 나타나고 이는 다시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이어지면서 국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현재와 같이 고강도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 경우 부동산 거품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면서 자칫 장기 불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가을 이후 폭등한 아파트 값에 대한 거품 붕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히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로 다주택자들의 이자부담과 경기 둔화에 따른 집값 하락은 가계 몰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또 이정원 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주택 가격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버블 징후가 존재하며, 중·장기적으로 가계 소득의 급감과 금리 급등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할 때 급락할 위험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벌계 연구소들은 현재의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에 대해서는 건설업계와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정부의 직접 규제보다는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주택 공급물량 조절을 통해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일부선 "거품붕괴 두려워해선 집값 잡을 수 없다"

이처럼 재벌계 연구소들이 거품 붕괴를 우려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도 정책 실행에 앞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미 대출규제의 경우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총소득에서 각종 대출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와 관련 시가 3억원 이하 주택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또 3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해서도 DTI 규제가 40∼60% 범위 내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 금융감독당국이 투기지역뿐 아니라 전 지역에서 주택가격과 상관없이 DTI를 40%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연구원들은 정부가 거품붕괴를 두려워해선 집값을 잡을 수 없다며 정부 대책의 일관성 있는 실행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거품이 붕괴되면 일본식 장기침체가 온다는 걱정이 '장기침체의 단초가 될지 모르니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키면 안된다'는 데까지 확대 해석돼서는 곤란하다"며 "부동산 가격하락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거품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일부 민간 연구소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품 붕괴의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순철 경실련 아파트값거품빼기운동본부 국장은 "부동산 거품 붕괴의 부정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부풀릴 경우 이는 건설업계의 이해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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