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느꼈을 그 맛! 한번 맛보실래요?

짭짤한 새우젓 반찬에 밥 한 공기 뚝딱

등록 2007.01.26 09:40수정 2007.01.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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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이 없다는 거, 예전에는 그런 거 잘 몰랐다. 밥맛이 없다는 사람 보면 정말 부러웠다. 어떻게 하면 밥맛이 없는 걸까? '난 밥맛이 없을 때가 없으니깐 이렇게 통통하지.' 살찐다고 불평할 일도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밥맛이 없는 날이 늘어나고 있다.


밥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무슨 반찬하고 먹을까? 밥맛이 없을 땐 김치도 싫다고 하더니. 아무리 생각을 해도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럼 뭘 배달시켜 먹어볼까? 양념 통닭, 피자, 족발, 숯불 바비큐…. 모두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따끈한 물 한잔 마시고 산책하러 나가 본다. 산책하러 나갔다 온 후 냉장고 문을 열어봤다. 찬찬히 살펴보자, 지난 겨울 김장을 하고 남은 새우젓이 눈에 띄었다. 새우젓 반찬이라!

냉장고에서 꺼낸 새우젓
냉장고에서 꺼낸 새우젓정현순
새우젓 통을 꺼냈다. 조금 덜어 양념하기 시작했다. 파, 마늘 약간, 청양고추, 고추가루, 깨소금 등을 넣고 골고루 섞었다. 참기름을 넣으면 칼칼한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넣지 않았다.

양념을 하고 한점 맛을 봤다. 짭짤한 맛과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났다. 금세 새로 지은 하얀 쌀밥을 한 숟갈 듬뿍 담아 새우젓을 올려놓고 입으로 쏘옥∼ 한 공기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파, 고추가루등을 넣고 양념한 새우젓
파, 고추가루등을 넣고 양념한 새우젓정현순
따끈한 쌀밥과 새우젓
따끈한 쌀밥과 새우젓정현순
김치 이외에는 다른 반찬은 꺼내지 않았다. 두세 숟갈 맛있게 먹었다.


그때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도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밥맛이 없을 땐 물 마른 밥에 이 새우젓 한 가지만 달랑 놓고 식사를 하시곤 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혼자 식탁에 앉아 그러고 계셨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난 '짜기만한 저 새우젓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라' 했었다.

언니는 젓갈로 유명한 광천을 가면 엄마한테 맛있는 새우젓을 사다 드리곤 했었다. 광천에서 사온 새우젓을 내놓으면서 "엄마 이 새우젓 맛있는 거니깐 한참 잡수실 수 있을 거예요"하면서.


그때 난 새우젓이 무슨 맛인지 정말 몰랐다. 새우젓은 김치할 때, 족발 먹을 때, 계란찜할 때, 그럴 때만 같이 먹는 정도였다.

난 다시 새우젓 반찬에 밥을 먹는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엄마도 느꼈을 이 맛!' 그러고 보면 새우젓 반찬에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엄마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의 쓸쓸함, 고독함, 외로움, 허전함 등을 진정 알 것만 같았다. 밥이 조금 남았다. 난 물에 남은 밥을 말았다. 그리곤 새우젓을 올려놓고 천천히 밥을 먹었다. 엄마가 느꼈을 그 맛을 나도 느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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