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선과 솟대에 마음을 뺏기다

전주 한옥마을을 거닐며...

등록 2007.01.29 16:29수정 2007.01.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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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옥의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솟대

한옥의 지붕 위로 솟아 있는 솟대 ⓒ 김현

지난 밤 드세게 몰아치던 눈보라는 어디 갔는지 하늘이 화창하고 볕이 따사롭다. 아이들은 눈이 다 녹았다고 투덜대며 밖에 나가자고 한다. 아이들의 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옷을 주워 입고 한옥마을이 밀집되어 있는 교동으로 향했다.

전주의 대표적인 관광단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교동과 풍남동 일대엔 자생적 한옥마을이 밀집되어 있다. 현재 이곳엔 700여 채의 전통 한옥이 남아 있고, 3800여명의 주민들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한다.


a 고즈넉한 마당으로 걷고 있다. 누가?

고즈넉한 마당으로 걷고 있다. 누가? ⓒ 김현

@BRI@전주의 한옥 마을은 인위적으로 만든 민속촌과는 달리 평범한 주민들의 삶의 거주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전주에 한옥마을이 생기게 된 연유엔 역사적인 아픔이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1910년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들이 거주지가 늘어나게 됐고, 이에 대항하는 형태로 지역 중산층의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한옥을 짓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그러나 지금의 한옥은 대부분 1930~1940년대에 걸쳐 지어졌다고 한다. 한옥마을이 단순히 삶의 주거형태로서 지은 게 아니라 일제에 대한 우리 것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한옥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a 담 넘어 옆에서 바라본 경기전의 모습

담 넘어 옆에서 바라본 경기전의 모습 ⓒ 김현


a 무슨 생각으로 저리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저리 있을까 ⓒ 김현


a 선과 선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아름답다

선과 선이 만나 조화를 이루는 모습도 아름답다 ⓒ 김현

지금은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을 중심으로 한 태조로 일대에 전주 명품관과 전주공예 전시관, 한옥생활 체험관 등이 새롭게 건축되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전통한옥의 품격과 맛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 이곳에선 마음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메마른 아파트의 딱딱함에 눌려 있다 어머니의 버선처럼 곡선의 부드러움이 있는 한옥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고 따뜻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마당에 들어가 굴렁쇠도 굴리기도 하고, 절구 방아도 찧고, 제기차기도 한다. 내국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추억으로 웃고, 나이 어린 아이들은 새로움에 웃는다.

a 서로 마주보녀 무슨 말을 주고 받을 것 같은 표정

서로 마주보녀 무슨 말을 주고 받을 것 같은 표정 ⓒ 김현

함께 온 아이들이 굴렁쇠 굴리기에 열중하는 사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풍경이 바람에 딸그랑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솟대다. 평소 무심결에 보아 넘겼던 솟대들이 이런저런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앉아 있다.


솟대는 본래 삼한 시대에 소도에 세웠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하늘의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러던 것이 일반 백성들의 민간신앙으로 퍼져, 농가에선 새해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섣달 무렵 긴 장대에 볍씨를 주머니에 넣어 달아놓았다. 바닷가에선 별신대라 부르며 풍어를 기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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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또 마을에선 마을입구에 장승을 세우고 그 옆에 솟대를 세우기도 했다. 이때 세우는 솟대는 주로 나무를 깎아 만든 새 모양이다. 우리가 여행길에 보는 대부분의 솟대 형태이다. 그러나 도심 한가운데서 솟대를 보는 일은 쉽지가 않다.

가끔 길을 가다가 멀리서 솟대가 보이면 발길을 그곳으로 돌리곤 했다. 왠일인지 솟대를 보면 마음이 끌렸다. 장대 끝에 앉아 하늘의 한 방향을 바라보는 새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해져 왔다. 그러면서 잃어버렸던 내 소망의 볍씨들을 끄집어내곤 했다.

a 장승과 한옥

장승과 한옥 ⓒ 김현

한옥의 선과 솟대를 향해 눈길을 팔고 있는데 아이들이 춥다고 다른 곳에 가자고 한다. 햇빛이 비치지만 겨울은 겨울이라 아이들 볼이 차갑다. 춥다는 아이들에게 뻥튀기 한 봉지를 사주니 춥다는 소리가 이내 들어간다. 아이들의 추위나 심심함은 입의 심심함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이들과 뻥튀기를 입에 물고 골목길을 걸었다. 한옥마을 또 다른 멋이 골목길이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돌멩이를 쌓아서 만든 굴뚝도 보인다. 굴뚝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는 난 어린 시절의 굴뚝을 추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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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둑길에서 신나게 놀다가 저녁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피어오르면 우리들은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리곤 굴뚝 연기를 가지고 놀기도 했다. 굴뚝 밑 터진 틈에서 연기가 새어나오면 동생과 나는 연기를 들어 마시기도 하고, 연기 속에 숨어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하며 낄낄거렸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니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한옥과 솟대, 골목과 굴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마을을 아이들과 걷고 추억하다 보니 해가 기웃한다. 집으로 향하는 발길도 가볍다. 여전히 아이들의 입엔 보름달 같은 뻥튀기가 물려 있다.

a 춤추는 듯한 솟대의 모습

춤추는 듯한 솟대의 모습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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