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의 다른 글 고구려(高句麗)를 하구려(下句麗)로 폄하한 '간 큰' 인물이 있었다. 그래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던 인물이 있었다. 그는 바로 한나라(전한)를 무너뜨리고 신(新)나라를 건국한 '이상주의자' 왕망(王莽, BC 45~AD 23년, 재위 AD 8~23년)이다. 왕망은 국내정책에서는 호족의 대토지 소유를 억제하기 위해 왕전제(王田制) 같은 개혁정책을 실시하는 등의 긍정적 면모를 보였지만, 국제정책에서는 '대책 없이' 주변 이민족들을 자극하는 등 상당히 '인색한' 정책을 펴는 데에 그쳤다. 대(對)고구려 정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왕망은 서북방의 골칫거리인 흉노족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위하여 고구려에 파병을 요청하였다. 이때 고구려는 형식적으로나마 신나라의 패권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가 파병을 거부하자, 왕망은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고치고 고구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했다. 물론 왕망이 하구려라고 불렀다 하여 고구려의 국호가 바뀐 것은 아니다. 왕망이 그렇게 불렀을 뿐이다. 당시 왕망은 고구려만 자극한 게 아니었다. <후한서>에 의하면, 왕망은 당시 중국 사방의 이민족들을 '무차별적'으로 자극하였다. <후한서> 권13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의 주석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림에서 [五]라고 쓰인 부분이다. 큰사진보기 ▲<후한서> 권13 외효공손술열전(隗囂公孫述列傳)대만 중앙연구원 25사 D/B "망(왕망)이 구정왕(句町王)을 후(侯)로 깎아내리고, 서역(西域)에 대해서는 그 왕들을 모두 후로 바꾸었고, 선우(單于)도 복우(服于)라고 불렀으며, 고구려를 하구려라고 불렀다. 지금은 모두 그 작호(爵號)를 회복시켰다."(莽貶句町王為侯 西域盡改其王為侯 單于曰服于 高句麗曰下句麗 今皆復其爵號) 이에 따르면, 왕망이 주변 이민족 국가들에게 '심통'을 상당히 많이 부렸음을 알 수 있다. 중국 남쪽의 구정, 서쪽의 서역제국(西域諸國), 서북쪽의 흉노족, 동쪽의 고구려에 대해 한결같이 그 군주의 호칭을 격하시켰다. 구정·서역·고구려의 '왕'을 '후'로 격하시킨 것이다. 그리고 흉노족의 선우는 복우(服于)라고 불렀다. 복우는 문자 그대로 복종(服從)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고구려에 대해서는 한 가지 '벌칙'을 더 얹어 주었다. 군주의 호칭만 격하시킨 게 아니라, 나라 명칭까지 고구려에서 하구려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왕망의 이러한 대외정책은 결국 그 자신에게 '재앙'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주변국들이 신나라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항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반고는 <한서> 권24상(上) 식화지에서 "만이(蠻夷)들이 화하(華夏, 중국)을 어지럽혔다"라고 기술하였다. 큰사진보기 ▲<한서> 권24상(上) 식화지대만 중앙연구원 25사 D/B 왕망은 안 그래도 내부에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보수적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스스로 외부의 적까지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안팎의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왕망의 신나라는 결국 개국 15년만에 멸망하고 말았다. 후계자를 두지 못한 왕망은 이후 중국 역사에서 두고두고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왕망이 이상적 개혁의 꿈을 끝내 성취하지 못하고 슬픔 속에 사라진 이유 중의 한 가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상대방을 인정해 주지 못하는 그 '속좁음'이 결국 화를 부른 것이다. 중국의 국제관계가 안정된 것은 왕망이 죽고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한 뒤였다. 내부적 안정이 절실했던 광무제는 주변국들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일환으로, 그는 하구려를 다시 고구려라고 부르고 고구려 군주의 칭호도 왕으로 되돌려놓았다. 중국의 안정을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얼마 전부터인가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북한'(North Korea) 대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북한이 듣기 좋아하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최근 들어 북미관계를 점차 안정시키고 있다. 옛날이건 지금이건 간에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것이 외교의 출발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추천 댓글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네이버 채널구독다음 채널구독 10만인클럽 10만인클럽 회원 김종성 (qqqkim2000) 내방 구독하기 트위터 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이 기자의 최신기사 오물 맞은 대학설립자, 그의 문제적 과거 구독하기 연재 김종성의 <동북아 진단> 다음글321화주몽이 부여왕이 될 수는 없었을까? 현재글320화고구려를 하구려로 폄하한 자의 슬픔 이전글319화일 공산당, 아베 총리의 헌법개헌 폐기 촉구 추천 연재 난생처음, 달리기 러닝화 계급도,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꽃보다 소년 5분 지각에 '대외비' 견학 버스는 떠났고 아이는 울었다 박병춘의 산골 통신 다리 위에서 결혼식을? 어느 신혼부부의 특별한 이벤트 최병성 리포트 산림청이 자랑한 명품숲, 처참함에 경악했습니다 SNS 인기콘텐츠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윤석열·심우정·이원석의 세금도둑질, 그냥 둘 건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도 똑같은 '법의 잣대'를 경북대 교수·연구자 179명 "윤석열 해고"...박근혜 때보다 2배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영상뉴스 전체보기 추천 영상뉴스 낙동강에 푸른빛 독, 악취... 이거 정말 재난입니다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AD AD AD 인기기사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4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5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Please activate JavaScript for write a comment in LiveRe. 공유하기 닫기 고구려를 하구려로 폄하한 자의 슬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밴드 메일 URL복사 닫기 닫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취소 확인 숨기기 이 연재의 다른 글 322화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주역, 마이크 혼다 321화주몽이 부여왕이 될 수는 없었을까? 320화고구려를 하구려로 폄하한 자의 슬픔 319화일 공산당, 아베 총리의 헌법개헌 폐기 촉구 318화"동지나해를 '평화의 바다'로 부르자" 맨위로 연도별 콘텐츠 보기 ohmynews 닫기 검색어 입력폼 검색 삭제 로그인 하기 (로그인 후, 내방을 이용하세요) 전체기사 HOT인기기사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미디어 민족·국제 사는이야기 여행 책동네 특별면 만평·만화 카드뉴스 그래픽뉴스 뉴스지도 영상뉴스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대구경북 인천경기 생나무 페이스북오마이뉴스페이스북 페이스북피클페이스북 시리즈 논쟁 오마이팩트 그룹 지역뉴스펼치기 광주전라 대전충청 부산경남 강원제주 대구경북 인천경기 서울 오마이포토펼치기 뉴스갤러리 스타갤러리 전체갤러리 페이스북오마이포토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포토트위터 오마이TV펼치기 전체영상 프로그램 쏙쏙뉴스 영상뉴스 오마이TV 유튜브 페이스북오마이TV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TV트위터 오마이스타펼치기 스페셜 갤러리 스포츠 전체기사 페이스북오마이스타페이스북 트위터오마이스타트위터 카카오스토리오마이스타카카오스토리 10만인클럽펼치기 후원/증액하기 리포트 특강 열린편집국 페이스북10만인클럽페이스북 트위터10만인클럽트위터 오마이뉴스앱오마이뉴스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