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물만 대충 먹여주면 일하는 소입니까?"

GM대우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호소문... "부평공장 내에서 고용보장하라"

등록 2007.02.06 13:44수정 2007.07.1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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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상생모델로 호평 받아온 GM대우차 부평공장의 비정규직 문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인사명령을 따르지 않자 곧 해고통지서가 날아들었는가 하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사내폭력'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또 일부 작업장을 공장 밖으로 이전하려는 구조조정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I/P패드 서열작업을 맡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작업장 이전'이라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들이 눈물로 써내려간 호소문입니다. <편집자주>
a GM대우차 부평공장 안에 있는 IP패드 조립·서열 작업장.

GM대우차 부평공장 안에 있는 IP패드 조립·서열 작업장. ⓒ GM대우차 비정규직 제공.


우리는 GM대우차 부평공장 정문으로 들어오면 조립1공장 왼편 개천가에 자리 잡은 천막 속에서 일하고 있는 I/P패드 서열 보급장 작업자들입니다. 같은 대우자동차 안이고 다른 분들도 모두 힘들게 일하고 계신 줄 알고 있지만, 이곳의 작업환경은 조립1부 안쪽과는 완전 딴 세상입니다.

석유 떨어지는 밤엔 얼어 죽었다고 생각하고 일해야

@BRI@겨울에는 아무리 추워도 자재보급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문을 닫을 수가 없어서 바람을 그대로 맞아야 합니다. 장갑을 두 겹, 양말도 두세 겹씩 껴 신어도 손발이 얼고 손끝이 갈라져서 피가 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추워도 변변한 난방시설조차 없습니다. 30여 명씩 교대로 일하고 있는데 고작 대여섯 대의 선풍기 난로와 애들 키만한 석유난로가 두 대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석유가 수시로 떨어지는데, 이게 바닥나면 그날 밤 관리자에게 몇 번씩 애걸복걸해야만 합니다. 한밤중에 석유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날 밤은 그냥 얼어 죽었다 생각하고 일해야 합니다.

선풍기 난로 몇 대 더 달라고 했더니 대우에서 승인이 안 나서 안 된다고 할 뿐입니다. 석유난로를 한 대 더 사준다고 (지난해) 11월부터 약속했지만 1월말인 지금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찜질방 못지않은 공기에 선풍기 몇 대뿐인 건 그렇다 쳐도, 장마철이라도 되면 더 가관입니다. 바닥에 물이 차올라 운동화가 젖을까봐 맨발로 일하던 분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장화를 얻어 신기도 했습니다. 그 찜통 같은 더위에도 먼지 많은 선풍기 바람 때문에 여름 내내 감기로 고생하시던 분도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60여명의 작업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주된 일은 I/P패드에 무거운 전동드릴로 스크루를 박아 넣는 일인데, 젊은 남자들도 며칠 안 하고 관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워낙 일도 힘들고, 조건도 나쁘고, 월급도 짜다 보니(한 달 주야 뛰어봐야 100만원이 조금 넘을 뿐입니다, 연봉으로 계산해보니 상여금까지 다해서 1600여만 원 정도) 젊거나 딸린 식구들이 많은 사람들은 남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40~50대의 나이든 아주머니들이나 세상물정 모르는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이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 이 회사에서 나가면 달리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회사에서는 이를 이용해 먹는 것입니다.

업체 바뀌면서 더욱 열악해지는 근로조건


작년 3월부터 7월 사이에 두 번이나 업체가 바뀐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바뀌는 그날이 돼서야 그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상여금을 400%에서 200%로 깎으려 들거나 월차를 없애서 하루 결근하면 월차수당, 주차, 일당까지 3일치를 까는 등 조건도 나빠지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부당함에 항의하면 처음의 신성개발 소장은 "괜찮아, 아줌마들은 3일이면 다 까먹어"라고 천하태평이었고, 두 번째 화인테크 이사는 "회사방침이야, 시키는 대로 하기 싫으면 나가면 될 것 아냐"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습니다. 또 현재의 DYT 사장은 "다 들어줄게요"라며 사람들을 안심시키고는 나중에는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발뺌합니다. 화인테크로 바뀌던 날엔, 원래 일하던 작업자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사람들을 새로 몽땅 데려와 우리는 한동안 잘릴까봐 불안해해야 했습니다.

업체에서 당해온 일을 이야기하자면 날밤을 새도 모자랍니다. 신성개발 때는 그 쥐꼬리만한 월급도 늦게 나오기 일쑤였고, I/P장에서 나갈 때는 로비하느라 자금이 '딸린다'며 상여금이랑 퇴직금도 안주고 도망가려 했습니다. 화인테크 때는 이사님 눈 밖에 나면 열심히 일 잘하는 사람을 풍기문란이라고 해고시키고, 불량 좀 냈다고 해서 자르고 해서 1주일 동안 서너 명이 잘려나간 적도 있습니다.

DYT로 바뀐 후 여름에 준다던 작업복을 결국 못 받고 겨울을 맞이했고 '월급을 9월에 올려준다, 상여금은 3개월 넘으면 50%, 3개월이 안 돼도 얼마간 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하더니 받을 때가 되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발뺌합니다.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줄은 알았지만, 왜 이렇게 당하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힘 없고 돈 없는 게 죄지'하고 그냥 참기만 해야 하는 겁니까? 나이 많다고 무시하고, 여자라고 무시하고, 어리다고 무시하고, 힘없다고 무시하고….

회사 눈에는 우리가 여물만 대충 먹여주면 일하는 소로 보이나 봅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월급봉투 받을 때마다 속상하고, 무시당해서 억울하고, 매번 속는 것도 분통 터져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열악한 근로조건에 이어 사기근로계약까지...

a IP패드 조립·서열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작업장 이전'이라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 농성에 들어가면서 작업은 중지된 상태다.

IP패드 조립·서열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작업장 이전'이라는 일방적 구조조정에 맞서 농성에 들어가면서 작업은 중지된 상태다. ⓒ GM대우차 비정규직 제공

IP장은 작년 2월까지 신성산업개발이었습니다. 신성은 경영이 어려워 폐업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더러 딴 직장을 구해보든지, 새로 들어올 업체에 들어가든지 하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새로 들어온 화인테크는 신성 때보다 낮은 근로조건을 들이밀며 '일할 사람은 남고 싫으면 나가라'고 했습니다. 폐업한다던 신성은 한 달 후에 조립1부 생관 안에서 배선 일을 맡았습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화인테크가 들어오고 나서 석 달 후, 화인테크도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직원들이 불안해하며 작업장 분위기가 술렁거리니까 일요일 날 주야 직원 전체를 불러 모아 거창한 회식을 해주더군요. 사장까지 나와서 '절대 철수 안한다, 안심하고 일하시라'고 철석같이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출근해보니 업체는 철수를 결정했고 관리자들도 떠나버린 뒤였습니다.

세 번째 뒤통수는 완전사기극이었습니다. 화인테크가 철수하고 작업자들이 똘똘 뭉쳐 싸운 결과 본사인 대의테크가 우리를 직접 고용하게 됐습니다(고용승계). 그러나 정식 근로계약서 작성을 계속 미루더니, 한 달여 후에 DYT로 계약서를 쓰라고 하더군요. 대의테크가 아니라 왜 DYT냐고 물었더니 대의테크의 영문 약자라고 했습니다.

사업주 이름도 대의테크 대표이사 이름으로 돼 있어서 별 의심 없이 사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희대의 사기극일 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대의테크 대표이사는 물러나서 DYT라는 용역업체를 차린 것이더군요. 결국 저희는 사기계약을 당한 것입니다.

DYT는 구정에 라인을 이전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또 다른 용역업체인 재영실업과 계약했습니다. 재영실업은 DYT보다 더한 놈들입니다.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수당에 차이를 두면서 사람을 차별하고, 준다는 상여금은 막상 지급달이 되면 말 바꾸고, 직원들도 모르게 재영테크로 사업자전환을 하고, 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부터 시키고 마음에 안 들면 잘라버립니다.

급기야 우리의 일터인 IP장이 이전하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갈 때까지 갔습니다. 저희에겐 IP장이 나가면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곳에 남고 싶습니다. 이 안에서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IP장이 사외로 이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두어 달 동안 우리는 수차례 DYT 사장과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번번히 면담 회피와 거짓말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들은 우리의 요구를 모아 작업자 한 명 한 명이 서명해서 사장에게 전달하고 진지한 답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역시 이를 무시하고 여전히 무성의한 대답으로 일관할 뿐입니다. 대우(차)에서 함구령이 내려서 얘기해줄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이전이 한 달도 채 안 남은 상황에서 우리 밥줄이 걸린 문제인데, 왜 우리가 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까?

분노한 우리는 믿을 수 없는 DYT 사장의 약속 대신 대우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를 걸고 마침내 주간조 잔업거부, 야간조 전면 작업거부를 감행했습니다. 라인이 서자 그제서야 두어 시간 만에 대의테크 본사 사장이 와서 고용보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DYT 사장과 마찬가지로 현실성 없는 얘기들뿐이었고, 그나마도 서면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밤새 힘들게 싸웠지만 사장들의 협박과 대의테크에서 데려온 시커먼 복장의 대체인력에 밀려 작업 중지 6시간여 만에 밖으로 내몰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날 아침 다시 주간조와 합류해 어렵게 라인을 중지시켰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드디어 대우(차) 구매팀과의 협상을 주선한다고 해서 라인을 가동시키고 협상하러 복지관에 갔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 말입니까? 나온다던 구매팀은 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나타나지도 않고, DYT 사장은 각서 하나 달랑 써주면서 모든 일이 해결된 양 떠들고 있습니다. 금요일에 입찰 결과가 나오니 그때 세부적인 건은 다시 얘기하자더니, 막상 금요일엔 미국에 있는 GM 본사의 결재를 받아야 하니 또 일주일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고 더 속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복지회관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이대로 돌아가면 이번 설 때는 다들 길바닥에 나앉게 될 것이고, 회사는 라인을 세운 작업자들에게 모든 피해보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남 일이 곧 내 일 된다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 같은 수난을 겪을 것입니다. 힘든 싸움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열심히 싸워서 어린아이 불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제 쫓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겪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전하려고 펜을 잡아봅니다. 한 분이라도 저희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을 보이고 이야기해주신다면 1%의 희망을 품고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망의 불씨가 있는데 왜 그 불씨를 꺼버리려고 하십니까? 남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 일이 곧 내 일이 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든 싸움이라도 여럿이면 수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신경 쓰는 것조차 귀찮아합니다. 우리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상황을 널리 알릴 것입니다.

우리가 농성을 시작한 지도 어언 6일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저희가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은 복지회관 안에 있는 노동조합 선관위 사무실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도움주시는 분들과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릴 수 있습니다.

처음 농성을 시작했을 땐 생각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잘할 수 있을지, 승산 없는 게임에 무모하게 뛰어든 건 아닌지. 하지만 사람들의 응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이 불끈 샘솟았습니다.

저희에게 응원은 곧 농성의 의지와 각오를 다질 수 있게 하는 원천입니다. 매정하게 돌아서지 마시고 5분만 시간을 내 저희의 말에 귀 기울여 주세요. 희망이 있다면 해낼 수 있습니다.

a 지난 2일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부평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탄압을 방관하고 있는 GM대우차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지난 2일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부평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탄압을 방관하고 있는 GM대우차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 전국금속노조 비정규대표자회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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