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누룽밥과 따끈한 숭늉정현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다 마친 남편이 나왔다. 주방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나가려 한다. 난 남편을 불렀다. "이거 쭉 마시고 나가" "밥맛이 없다니깐" "밥이 아니라 숭늉하고 누룽밥이야" 그 소리에 남편이 식탁에 앉는다. 처음엔 숭늉을 한 술 두 술 뜨더니 나머지는 한 입에 쭉 마신다. 그리곤 누룽밥에 저절로 손이 간다. 구수한 그 자체로도 반찬이 필요없는 듯했다.
김치와 누룽밥을 다 먹고 일어선다. 그러더니 "속이 든든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새벽 찬공기에 밖을 나가도 춥지 않을 터. 남편이나 아이들이 아침에 빈 속으로 나가면 집에 남은 나는 마음이 하루종일 편치 않다. 요즘같은 쌀쌀한 겨울엔 그런 마음이 더하다.
아침을 먹지 않고 빈 속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온종일 기운이 없고 맥이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대문만 나서면 배가 고파 오는 것이 '집에서 밥 한숟갈이라도 먹고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수한 누룽밥과 따끈한 숭늉을 다 먹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든든해 보인다. 하루종일 내 마음도 느긋하고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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