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덕유산 산행의 백미는 끝없는 철계단

등록 2007.02.07 20:45수정 2007.02.0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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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유산 산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던 기다란 철계단 코스.
남덕유산 산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었던 기다란 철계단 코스.김연옥
지난 6일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함양 남덕유산(1507m) 산행을 떠났다. 남덕유산은 경상남도 함양군과 거창군, 그리고 전라북도 장수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덕유산의 최고봉인 향적봉(1614m)에서 남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전 8시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은 10시 30분께 영각통제소(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갑자기 포근한 겨울 날씨로 언 땅이 녹으면서 이따금 질퍽대는 길을 걷게 되어 불편하기도 했다.


산행에서 만나는 예쁜 다리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산행에서 만나는 예쁜 다리는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김연옥
그렇게 20분 남짓 걸었을까, 정겨운 다리가 나왔다. 그 규모가 크든 작든 한쪽과 다른 쪽을 잇는 다리는 내게 늘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두 번째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어가자 지루한 너덜겅이다. 너덜겅은 돌이 많아 힘들기도 하지만 단조로워서 더 싫다. 그래서 머리를 텅 비우고 그냥 걷기만 했다. 간간이 응달에 남아 있는 하얀 눈에 눈길을 주며.

지루하고 단조로운 너덜겅을 걸어가기도 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너덜겅을 걸어가기도 했다.김연옥
우리는 오전 11시 40분께 능선 안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적당한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었다. 시원한 캔 맥주도 나누어 마시며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맛있는 점심과 유쾌한 이야기로 생기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왼쪽으로 난 능선을 타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철계단에서 맛본 산행의 묘미

김연옥
걸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첫 철계단이 나왔다. 누가 남덕유산 산행에서 가장 멋진 구간을 내게 물으면 그 기나긴 철계단 코스를 꼽고 싶다. 능선 안부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1km나 되는 거리에 가파르고 험준한 등산길을 대신하는 철계단들을 설치해 둔 이곳은 누구든 산행의 묘미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끝이 없는 듯 계속 이어지는 철계단들을 오르내리며 스릴을 즐길 수 있었다.
끝이 없는 듯 계속 이어지는 철계단들을 오르내리며 스릴을 즐길 수 있었다.김연옥
김연옥
무려 시간이 30분이나 걸리던 그 기다란 철계단 코스가 지금도 인상 깊다. 끝이 없는 듯 계속 이어지는 철계단으로 기암괴석을 타고 오르는 스릴과 아울러 그곳의 탁 트인 조망을 한번 만끽해 본 사람은 아마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철계단을 내려가는 등산객들.
마지막 철계단을 내려가는 등산객들.김연옥
남덕유산 정상(1507m).
남덕유산 정상(1507m).김연옥
마지막 철계단을 내려가 10분쯤 더 걸어 올라가면 남덕유산 정상이 나온다. 우리가 정상에 이른 시간이 낮 1시께. 정상에는 여러 산악회 사람들로 붐볐다. 산 정상에서는 힘든 산행을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어쨌든 해냈다는 기쁨 같은 게 느껴진다. 정상까지 그런대로 잘 버텨 온 자신에게 그저 흡족할 따름이다. 그리고 같이 올라간 친구들과 그 유쾌함을 함께하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는 거기서 장수 덕유산이라 부르는 서봉(1492m)으로 오른 뒤 다시 되돌아 하산하기로 했다. 서봉으로 가는 길에는 눈이 꽤 많이 쌓여 있어 우리는 미끄러지지 않게 아이젠을 신었다. 그래도 소복소복 쌓인 하얀 눈길을 한참 걷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던지 모른다.


서봉으로 가는 길에는 소복소복 하얀 눈들이 쌓여 있었다.
서봉으로 가는 길에는 소복소복 하얀 눈들이 쌓여 있었다.김연옥
서봉 정상에 이르는 초록색 철계단도 올라갔다.
서봉 정상에 이르는 초록색 철계단도 올라갔다.김연옥
하얗게 눈이 깔린 길을 50분 남짓 걸어가자 초록색 철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을 오르면 서봉 정상이 나온다. 거기서 동쪽으로 솟아 있는 봉우리는 남덕유산이다. 오후 2시 10분께 우리는 서봉 정상에서 왔던 길로 다시 하산을 서둘렀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장영희 번역)' 일부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가 떠올랐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명동에 있던 가톨릭 기숙사에서 2년 동안 지낸 적이 있다. 그때 내 책상에 그 시를 적은 종이를 붙여 두었다.

해야 할 일들을 차일피일 미루며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그 시를 꽤 진지하게 읊곤 했다. 무엇보다 마지막 시구인 '자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가 내 마음을 끌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이따금 눈이 하얗게 쌓인 풍경을 바라보면 그 시를 외우던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서상IC(2시간30분 소요)
(고속버스) 서울남부터미널→함양(3시간 소요)→영각사(40분 소요)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
(승용차) 서울경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서상IC(2시간30분 소요)
(고속버스) 서울남부터미널→함양(3시간 소요)→영각사(4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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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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