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자전거정책, 느리게 페달 밟아라

공무원 자전거타기는 왜 '백전백패'하나

등록 2007.02.10 17:48수정 2007.02.1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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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하노버에서 시민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독일 하노버에서 시민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해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경남 창원시가 다음달부터 공무원 자전거 출·퇴근제를 도입,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관내 출장시 가능한 자전거를 이용하도록 유도하고, 각 부서 직원들이 저렴하게 자전거를 구입할 수 있도록 배려할 방침이다.

시장이 몸소 출퇴근을 하는 등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니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대전시장도 공무원들과 함께 꾸준히 자전거 타기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자전거 타기 캠페인은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창원시와 대전시의 경우 시장이 직접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1회성 이벤트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책상에서 구상한 정책과 직접 온몸으로 체험한 뒤 만드는 정책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이런 행사가 단지 시장만의 의지로 끝나거나 단기간 행사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공무원 자전거 타기는 왜 매번 실패할까?

@BRI@2003년 경상남도와 창원시는 공무원들 출퇴근용으로 전기자전거 100대와 일반자전거 400여대를 구입했다. 공무원들이 앞장서 자전거 타기 붐을 만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인구는 별로 늘지 않고, 자전거만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1년 뒤인 2004년 도청 자전거 주차장에 남은 전기자전거는 9대, 일반자전거는 7대에 불과했다.


2005년 7월 충북 청주시는 자전거 22대를 구입해 실과별로 1대씩 지급했다. 호응이 좋을 경우 구청과 동사무소에 보급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이후 관용자전거 이용은 전무했으며 구청 보급 계획은 무산됐다.

2006년 3월 경남 진주시는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전 직원 10%가 자전거를 탄다는 목표를 세우고 2700만원 예산을 들여 자전거 180대를 구입했다. 시 본청엔 150대 자전거 전용주차 시설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공무원은 거의 보이지 않는데 반해, 미이용 자전거는 반납되지 않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지난해 9월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차 없는 날' 행사를 주최했을 때, 자전거 타기에 동참한 공무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행사 당일 오전 7-9시 출퇴근 교통량은 한 주 전에 비해 2만대 이상 증가했다.

'자전거가 좋다'라고 인식하는 것과 실제 하는 것과는 이처럼 간극이 크다.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
독일 베를린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오마이뉴스 권우성
'가속페달' 대신 '멀리' '길게' 봐야

이처럼 공무원을 중심으로 한 자전거 타기 운동이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적응 문제다. 평소 자전거를 타지 않은 상태에서 타게 되면 엉덩이가 무척 아프다. 이후 손목·팔목·목 등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오게 마련이다. 웬만한 의지 없이는 이런 불편을 감당하기 힘들다.

복장 문제도 들 수 있다. 공무원들은 대부분 양복을 입고 출퇴근한다. 양복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바지에 기름이 묻지 않고 체인에 감기지 않기 위해서 몇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자전거는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달리기 때문에 언덕을 오르거나 적당한 기온 하에선 땀이 나오게 마련이다. 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출근한 뒤 씻을 곳이 마땅치 않거나 업무를 볼 상대방에게 결례가 된다고 생각했을 경우 자전거 타기를 주저하게 된다.

차도 운행 문제도 쉽지 않다. 해당 공무원이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탄 경험이 없을 경우 승용차와 버스 사이에서 달리기가 버겁다. 그렇다고 인도로 올라오면 사람에 치여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이럴 때 자전거가 결코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긴급조치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없을 땐 큰 곤란에 빠진다. 펑크가 났을 때, 체인이 빠졌을 때가 흔한 경우다. 특히 요즘 펑크를 때울 수 있는 수리점이 많이 없어 이럴 땐 그냥 자전거를 버릴 수밖에 없다.

기어를 바꾸다가 체인이 빠졌을 때도 장갑이 없으면 맨손으로 걸어야 한다. 이때 손에 기름때가 묻게 되는데, 업무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전거를 타기는 어렵지 않지만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자전거를 쉽다'고만 생각한다면 '쉽게' 포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장이나 상급자에 의해 자전거 타기가 시작됐을 때, 상급자가 바뀌면 운동 열기는 급속히 식을 수밖에 없다.

자전거타기, 쉽게 생각하면 쉽게 포기

최근 최근 <경남도민일보>가 보도한(2월 7일) 창원시 공무원들 출퇴근 교통수단 설문조사를 보면 자전거 타기를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491명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현재 자가용 이용자가 1047명(70.2%)으로 압도적이며, 버스 119명(8%), 자전거 30명(2%), 도보 295명(19.8%)순이다. 이중 자전거 출퇴근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234명(15.7%)에 불과했다.

찬성의견을 보이는 사람들도 실제 출퇴근을 시작하면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비춰보면 실제 자전거 타기에 나설 사람이 많진 않을 전망이다.

녹색자전거봉사단의 한만정 단장은 "자전거 특별구인 송파구도 구청장의 의지 아래 2000년 공무원 자전거 타기를 시도한 적이 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면서 "한 사람이 주도하는 자전거 타기 운동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장의 교체 등 변동이 있을 경우 자전거 타기는 얼마든지 무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행정자치부의 자전거 타기 지원이 1회성으로 끝났던 것도 이런 분위기를 키우는 데 한몫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자전거 타기는 밀어붙이기식이 아니라 충분한 교육을 통해 자발적으로 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에게 당장 자전거 타자고 요구하기 전에 오랜 세미나와 토론, 회의 등을 통해서 '자전거를 탈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자는 것.

자전거는 느린 교통수단이다. '가속페달' 대신 '천천히' '멀리' 보는 자전거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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