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쪽 시한에 쫓겨 퍼주기 우려

[분석] 한미FTA 7차협상... '빅딜'은 모양새일 뿐?

등록 2007.02.12 21:16수정 2007.02.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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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달 16일 오후 한미FTA 6차 협상장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민간대책위 리셉션에 참석한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달 16일 오후 한미FTA 6차 협상장인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민간대책위 리셉션에 참석한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류승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작년 2월3일 협상 개시후 1년만이다. 오는 14일까지 미국 워싱턴에선 7차 협상이 열린다.

이번 협상을 두고, 김종훈 한미FTA 수석대표는 "FTA 타결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부는 이미 3월말까지 협상을 타결 짓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3월 중순께로 예정된 8차 협상과 이후 최고위급(대통령) 협상을 감안할 때, 이번 협상에선 한미간의 '주고 받기'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우선 무역구제를 포함해, 자동차, 의약품 등 핵심 쟁점에 대한 양쪽의 '빅딜'이 본격화된다. 국내 농산물 시장과 미국의 섬유시장의 개방정도를 두고 '스몰딜'도 예상된다. 물론 국내 쌀시장은 예외지만, 미국의 개방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밖에 투자자의 국가제소권 문제도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문제는 국내의 한미FTA에 대한 반대여론이 여전한 가운데, 정부의 미국 일정에 쫓기듯 퍼주기 양상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미 우리쪽은 주요 빅딜 안건의 상당부분을 미국쪽에 양보하는 내용을 제시해 놓은 상태다.

이해영 한미FTA반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기획연구단장(한신대교수)는 "그동안 미국의 다른 나라와의 FTA협상 과정을 보면 협상막바지에 '다 받든지, 아니면 그만두든지(Take them all or leave)!'라는 말을 자주해 왔다"면서 "머지않아 우리도 이 말을 곧 듣게될 것이고, (FTA가) 체결되려면 그저 다 내주는 길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커틀러의 '쌀 개방' 압박 속셈... "쌀협상 자체가 잘못"

a 한미 FTA 6차협상 마지막 날인 지난 달 19일 정오 서울 신라호텔 브리핑실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국내 취재진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곤란한 질문을 연속적으로 받던 도중에 물을 마시고 있다.

한미 FTA 6차협상 마지막 날인 지난 달 19일 정오 서울 신라호텔 브리핑실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가 국내 취재진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곤란한 질문을 연속적으로 받던 도중에 물을 마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협상 첫날부터 한미 양쪽은 '쌀 시장 개방'을 두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쌀시장 개방 문제는 한국입장에선 일종의 금기사항.


하지만 미국쪽은 지난 2차협상때부터 쌀 추가개방을 요구해왔다. 5차협상땐 한발 더 나갔다. 웬디 커틀러 미국쪽 수석대표는 당시 "쌀시장 개방도 예외일수 없다"며 "쌀에 대한 논의도 어느 시점에선 개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7차 협상인 11일 커틀러 대표는 다시 이 문제를 꺼냈다. 그는 "쌀이 한국에 민감한 사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쌀 시장 접근선의 개선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쪽에선 우리의 아킬레스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다른쪽에서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쌀만은 지킨다는 입장이다. 협상단 일부에선 쌀을 지키기 위해선 다른 쪽의 양보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쌀 문제는 이미 현행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에서 결론이 난 상태라는 지적도 많다. 한미FTA로 한국이 미국에만 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005년 WTO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를 2014년까지 유예하는 조건으로 미국산 쌀의 의무수입물량을 할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2015년부터는 관세화로 개방될 경우, 관세율이 400% 적용된다,

따라서 FTA 협상단이 '쌀만은 지켰다'고 할 경우, 자칫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전농 관계자는 "쌀을 협상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이미 2005년에 개방 일정이 확정돼 있었고, 이것 가지고 섬유분야와 협상하는 것 자체가 우리의 부실한 협상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종훈 우리쪽 수석대표는 "기타로 분류돼 있는 235개(농업분과) 품목중 진짜 민감한 품목은 7차협상이 끝난뒤 마무리 단계에서 종합적으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농산물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협상은 8차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복병으로 떠오른 미국산 뼛조각 쇠고기 수입

a 지난 달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범국본 주최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달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한미FTA 범국본 주최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미국산 수입쇠고기 상징물을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미국산 뼛조각 쇠고기 문제도 한미 FTA의 협상에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는 이미 한미간 오래된 통상 현안이었다. 미국은 FTA 협상개시 전에 우리쪽에 이른바 '4대 선결조건' 가운데 하나로 쇠고기 문제를 넣었다.

4대 선결조건으로 수입된 3차례의 미국산 쇠고기에서 모두 뼛조각이 검출됐고, 이는 모두 반송 처리됐다. 미국 축산업계는 크게 반발했고, 미국 상원재경위원장인 막스버커스는 쇠고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한미FTA 타결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한미간 기술협의도 양쪽 입장차가 커서 타결되지 못했다. FTA 의제가 아닌 쇠고기문제가 공식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커틀러 수석대표도 "FTA 위생-검역(SPS) 분과에서 이것을 의제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미국쪽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와 한미FTA 타결을 분명히 연결짓고 있다. 이태식 주미대사도 지난 1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은 미국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건강권과 직결되는 문제를 협상 과정에서 다른 분야와 양보하게 될 경우 국민 여론은 크게 악화될 가능성도 크다.

무역구제 대폭 축소하고도, 자동차-의약품과 딜... 누굴 위한 빅딜?

이번 협상의 또 하나 주요 포인트는 무역구제를 비롯한 자동차, 의약품 분야의 '빅딜' 여부다. 정부는 무역구제와 관련해 지난 3차 협상에서 10개 항목, 4차협상땐 15개 쟁점 항목을 미국쪽에 제시했다. 물론 미국쪽에선 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5차협상 땐 정부는 5개 항목으로 대폭 줄인 협상안을 내놨다. 당초 내용보다 크게 후퇴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것을 받든지, 아니면 협상을 그만두든지 최후통첩을 던졌다. 하지만 미국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쪽에선 지난달에 무역구제와 자동차, 의약품 부분을 이번 협상에서 서로 연결해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미 무역구제에 거부의사를 밝힌 미국에 대한 우리의 협상카드였다. 미국에서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우리쪽에선 이미 어느정도의 '선물 보따리'를 공개한 상태다. 미국쪽에서 그동안 제기해 온 자동차의 세제관련 부분에서 현행 5단계의 세제를 3단계로 축소하고, 특별소비세도 단일화하는 방향을 사실상 확정했다. 이는 국내 세금 수입의 감소와 함께, 자동차 배기가스의 규제완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의약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 8일 국회 FTA특위를 통해 신약의 특허권 연장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쪽은 그동안 의약품의 경우도 신약 특허심사 기간이 길어질 경우 그 기간을 특허 기간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해 왔다. 약제비 적정화 방안도 '수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쪽 시한 쫓긴 빅딜은 모양새, 사실상 '퍼주기'

a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 20여명은 12일 오후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7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돼지와 염소 등 가축을 동원해 기습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의 시위에 동원된 돼지를 경찰들이 파출소로 끌고 가려하자 몸통이 끈으로 묶여있는 돼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 농축수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민 20여명은 12일 오후 서울 명동 입구에서 한미FTA 7차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돼지와 염소 등 가축을 동원해 기습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의 시위에 동원된 돼지를 경찰들이 파출소로 끌고 가려하자 몸통이 끈으로 묶여있는 돼지가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논란이 된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문제도 어떻게 해결될지 관심거리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는 투자와 관련해 협정 준수여부를 두고, 미국 '투자자'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기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처음 도입됐다.

문제는 이 조항이 단순한 무역촉진을 넘어서 상대국의 법과 제도, 관행까지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정부 내에서도 ISD에 대해 위헌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법조계 일부에선 소송과정에서 정부가 지고,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해줄 경우 헌법상 재산권 보상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는 주장이다.

정부 협상단 관계자는 "ISD 문제는 7차 협상의 마지막에 가서 다뤄질 것"이라며 실무선을 넘어선, 고위급 회담에서 진행될 가능성을 보였다.

결국 이번 7차 협상에선 주요 쟁점에 대한 빅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타진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8차협상 전까지 한미 양쪽의 수석대표이상 고위급 회의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최근 "7·8차협상이 끝나면 협상 쟁점의 97~98%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이후 3월말께 양국 정상 차원에서 대타결의 모양새로 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협상과정에서 미국쪽 시한에 쫓겨 퍼주기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여전하다.

국내 반FTA 진영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정태인 전 청와대국민경제비서관은 <한겨레21> 기고에서 "정부는 자동차세제든, 의약품이든, 투자자의 국가제소권이든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지금이라도 협상 중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미FTA가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한미FTA 추진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정된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한미FTA 파고를 어떻게 넘어서야 할지 결단의 시간은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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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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