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탁'을 시작한 딸아, 파이팅!

등록 2007.02.13 16:27수정 2007.02.1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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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딸애 싸이홈피 -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딸애 싸이홈피 - 고민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 인터넷캡처

"엄마, 나 내일 개학이야. 이제 '행복 끝, 불행시작'인데 마지막으로 뭐 맛있는 걸로 위로라도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어쭈, 요놈 봐라. 엄마 닮아 엉덩이가 항아리만하다며 '다이어트' 노래를 부르더니 벌써 '쫑' 내시려나.

개학을 하루 앞둔 주일(일요일), 미사를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딸애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 곧 그토록 중요하다는 중학교 2학년이 되니, 단단히 마음 다잡을 수 있게 '맛있는 것'으로 위로라도 해달라는 소박한 부탁을 해 왔다.

때마침 뭉치 털 깎는 날이니, 남편 목에 걸린 털이라도 씻어줄 겸 삼겹살로 푸짐한 점심을 차렸다. 고기를 노릇하게 구워 아이들 접시에 놓아주며 남편이 한마디했다.

"통돌이, 이제 6학년이니까 슬슬 공부 할 준비해야지?"
"네-"
"나옹이, 2학년은 '나 죽었소' 하고 덤벼봐. '왜 공부하지'라고 고민하기엔, 일분일초가 금쪽같은 시기야. 딱 일 년 동안만 네 안에 너를 숨기는 거야. 아빠 말 들어서 결코 손해 볼 일 없으니까 명심해라."
"…."

@BRI@미루어 짐작컨대, '마지막'이란 비장한 마음으로 딱 오늘만큼은 편하게 밥상 앞에 앉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공부'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아빠가 고마울 리 없다. 수더분한 답변 대신 알맹이 섞인 말이 돌아왔다.


"아빠. 저 초등학교 때, 정말 공부 안 했거든요?"

아빠와의 대화에서 선문답이기 쉬운 사춘기 딸애와의 대화에선 간혹 엄마의 '통역'이 필요하다. 생각이 많아진 딸애는 복잡한 제 속을 간추려 말하기 힘든지 질문과는 동떨어진 엉뚱한 대답을 내놓곤 한다.


공부에 '공'자도 모르던 놈이 중학생이 되어 중상위권에 들 수 있었던 것은 피나는 '노력'의 열매라는 것을 알아달라는 뜻이다. 격려하지 못할 바에 의욕을 꺾지 말라는 뜻도 들어 있다. 성적이 오르는 데도 단계가 있으니 너무 조급하게 밀어붙이지 말라는 저항의 의미도 숨어 있다. 아직도 늘 뭔가 부족한 아이 취급당하는 게 당연히 기분 나쁠 사춘기 딸애다.

이제 더 이상 '스스로'라는 자율에 맡길 수 없을 만큼, 우리 부부 역시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줄탁'을 지켜보는 어미닭의 마음이 이럴까. 조기 교육을 시킨 적도 없는 딸애에게 지금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기'라는 것을 자주 강조할 뿐이다. 또한 중학 시절 황금 같은 시기에, '사춘기'라는 미로에서 길을 덜 헤매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편한 것에만 익숙했던 딸애는 불편함을 잘 견디지 못했다. 별로 특별한 재능을 보이지 않는 평범한 아이에게서 '가능성'을 찾아주기란 부모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공맹지도(孔孟之道)를 논하기엔 아이 앞에 놓인 사회가 결코 만만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들의 학창 시절엔 너 나 없이 가난해서 잘 살아야겠다는 물질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가 있었다. 그 '욕구'는 부모가 억지로 잡아끌지 않아도 될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보니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부모와의 사이에 좁힐 수 없는 '자기논리'의 강이 가로 놓였다. '인생'이란 험난한 준령을 넘어온 선배인 양 앞장서서 아이의 삶을 재단하고 관리하며 아이를 마치 기계처럼 다루는 집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대화'와 '타협'은 시간을 허투루 쓰는 '낭비'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가정이 우리처럼 비슷한 고민으로 부부가 머리를 맞댈 것으로 믿는다. 내가 나를 볼 수 없듯, 서로의 모습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말이다.

젓가락으로 밥알을 헤아리며 억지로 입으로 가져가는 딸애를 보자, 속에서 버럭 화가 났다. 나누는 대화가 아닌 남편의 일방적인 '일갈'이 못마땅해졌다. 미안했지만 말허리를 잘랐다.

a 저 하늘 높이 훨훨 날갯짓 하고파라

저 하늘 높이 훨훨 날갯짓 하고파라 ⓒ 김나영

"감사하며 먹어야 할 음식 앞에서 지금 뭣들 하는 시츄에이션? 먹기 싫으면 수저 내려두고 얼른 자리 비켜!"

딸애가 얼른 수저를 내려놓고 제 방에 가서 웃옷을 걸쳐 입고 현관에 섰다.

"너, 어디 가?"
"그냥요. 바람 쐬러요."
"그럼 딱 삼십분만 고민해. 알았지?"

언제 가지고 나갔는지 밖에서 돌아온 딸애가 내민 카메라 속에 하늘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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