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눈꽃에 새겨진 바람의 흔적

덕유산 산정설화(山頂雪花)의 향기

등록 2007.02.14 09:28수정 2007.02.1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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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람의 숨결이 그대로 새겨있는 덕유산의 눈꽃

바람의 숨결이 그대로 새겨있는 덕유산의 눈꽃 ⓒ 최향동

서쪽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 때문일까?

겨울철 덕유산 산정(山頂)능선에는 온통 눈꽃천지다. 새벽에 내린 눈과 바람 때문인지 눈꽃에는 그 흐름까지 새겨져 있다. 바람의 흔적이 고스란이 묻어있고 눈꽃향(香)이 피는 듯하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덕유산 눈꽃' 타령을 하는 까닭을 알 것 같다. 역시 직접 느껴봐야 그 진가를 맛볼 수 있으니 자연은 언제나 자신의 가치를 노력을 통해서만 허락한다.


a 바위에도 새겨져 있는 눈꽃

바위에도 새겨져 있는 눈꽃 ⓒ 최향동

지난 2월 11일, 일요일 새벽을 서둘러 지인들과 함께 덕유산을 찾았다. 들머리 입구인 덕곡저수지의 물은 얼어있지만 겨울 날씨 치고는 비교적 따뜻함이 묻어있다. 아내와 함께 목포 '늘푸른 산악회'와 광주'가자 지리로' 산악회 회원 30여명이 합동산행에 따라 나섰다.

a 죽어서도 향적봉을 지키는 고사목

죽어서도 향적봉을 지키는 고사목 ⓒ 최향동

우리는 덕곡제에서 출발하여 무주리조트의 리프트라인과 설천봉을 거쳐 향적봉(1614m)에 올랐다. 휴일때문인지 곤돌라를 통해 향적봉에 오르는 인파가 장난이 아니다. 누구는 밑산부터 눈숲을 헤치고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는가 하면 누구는 저리 편히 산에 오를 수 있으니 환경과 개발의 이면들이 덕유산에는 있어 보인다.

덕유산(德裕山)! 한반도의 중심, 백두대간이 남녘으로 힘차게 달리다가 추풍령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지리산으로 가는 길목에 힘차게 솟구치며 영호남을 가르는 높은 산줄기를 빚어놓았다. 그것이 바로 덕유산이다.

덕유산은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시작으로 남으로 중봉(1594m), 덕유평전(1480m)을 지나 무룡산(1491m), 삿갓봉(1410m)을 거쳐 남덕유산(1507m)에 이르는 장장 100리 능선을 펼치고 있어 덕유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덕유산은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다음으로 남한에서 네 번째 높은 산이다.

덕유산(德裕山)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산세가 크고 넓어 '덕이 넘쳐나리 만큼 넉넉하며 여유로워 보이는 모산(母山)'과 같은 모습에서 그 명칭을 얻었다 한다.


a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터널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터널 ⓒ 최향동

a 장군목다운 기상으로 눈꽃은 피고지고!

장군목다운 기상으로 눈꽃은 피고지고! ⓒ 최향동

그토록 아름다운 덕유산의 눈꽃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겨울철, 서해를 건너며 수증기를 흠뻑 머금은 하늬바람은 확장된 시베리아 고기압 덕분에 빠른 속도로 내륙으로 진입하여 결국 덕유산의 높은 산사면을 타고 상승, 급속도로 냉각되어 눈이 내리고 그 눈은 바람에 의해 눈꽃으로 피어난다.

이러한 자연의 숨가쁜 순간은 겨우내내 산정에서 온통 머물며 설화의 나라로 사람들을 이끈다. 그 격동의 힘이 덕유산의 눈꽃이다. 덕유산은 남녘의 중앙에 위치하고 산세가 깊어 외부의 발길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탓인지 역사의 격변기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남녘의 산에서 흩어져 유격활동을 전개하던 남로당 빨치산의 우두머리들이 이 곳 덕유산 송치골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6개도당위원장회의'를 통해 분산적인 유격투쟁을 사단급 투쟁으로 전개하기로 하고 남부군을 조직하여 총사령관에 이현상을 추대한 격변의 현장이다.

또한 덕유산은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이 전화를 피한 곳으로, 왜군들이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짙은 안개가 스미어 산 속에 숨은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는 일설이 있어서인지 전란이 미치지 않는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a 노력의 댓가만이 그 가치를 보여주는 자연의 힘

노력의 댓가만이 그 가치를 보여주는 자연의 힘 ⓒ 최향동

그래서인지 덕유산의 눈꽃에서는 역사의 격변기에 눈꽃터널을 지나며 바람처럼 살다간 산사람들의 향기가 바람의 흔적처럼 피어난다. 그 길을 마치 산양처럼 달리는 21세기의 산님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달리는 산행길은 어느새 백암봉과 송계삼거리를 지나 동엽령에 이른다. 그 길을 따라 수많은 산행인파가 교차한다.

역사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렇게 미래로 가는 것일까? 노송과 단풍나무가 울창한 '7연(淵)7폭(瀑)'의 칠연계곡으로 하산하면서 계곡 안 송정골에 한말 일본군과 싸우다 숨진 150여 의병들의 고단하기만 했을 자긍심을 생각하며 남으로 뻗은 귀환버스에올랐다.

며칠이 지났건만 아직도 눈과 마음 속에 담아둔 덕유산, 그 산정눈꽃이 아른아른 거린다.

a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산행 행렬

끝없이 이어지는 눈꽃산행 행렬 ⓒ 최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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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없음도 대답이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다. 더 좋은 민주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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