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영 님의 작품. '회화적 귀소를 위한 비회화적 모험'을 의도한 작품.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제목이 없다.박태신
그 화가 분과 1층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술에 문외한인 저를 최대한 배려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그림들은 이 분의 몇십 년 인생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 자유로운 시각에서 자유로이 선택한 미술세계였습니다.
화가는 비회화 속에서 회화를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회화 아닌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화가의 '비회화의 회화'의 의도와 이곳의 '비역할, 반역할'의 이미지가 어울립니다.
미술가들은 참 자유로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그림 그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한 화가의 삶과 경험과 앎, 생각 속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들이 구상되고 화가의 손끝에서 붓을 거쳐서 캔버스에 닿습니다.
형식의 파괴를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습니다. 학문들끼리 경계를 넘나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 특정한 형식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니 반형식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 비회화를 추구하는 것도 그것 때문 아닐까요. 그런데 화가는 그렇게 하다가 다시 회화로 돌아오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회화도 삶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객석 빌딩 들어가기 전에 살짝 비가 왔습니다. 객석 빌딩을 나오고 한참 후 저녁 무렵이 되면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가뭄에 단비였습니다. 오랜만에 온 비라 특별하기도 했던 일상입니다. 우산을 쓰고 잠시 걸어보았습니다. 퇴근 무렵의 분주한 시간 속에 환히 불 켜진 건물 모습이 정겹습니다. 불빛에 반사된 외줄 빗줄기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건물도 반갑고, 오랜만에 내리는 비도 반갑습니다. 가끔 내 삶이 폐허 같다고 느낄 때라도 그 속에서도 이런 비 덕분에 꽃들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힘이 나질 않을까요. 가끔 내 마음밭 속에 꽃씨를 뿌리는 작은 노력만 한다면요, 그런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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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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