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가 다시 죽기라도 한 거야?

[해외리포트] 애나 스미스에 대한 미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등록 2007.02.19 15:32수정 2007.02.26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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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으로 찍은 CNN 방송의 애나 스미스 뉴스 속보
휴대폰으로 찍은 CNN 방송의 애나 스미스 뉴스 속보한나영
CNN, 뉴스 전문 채널 맞아?

지난 8일 오후(미국 현지 시간), 기자는 자동차를 고치기 위해 해리슨버그에 있는 한 정비회사를 찾게 되었다. 휴게실에 앉아 차가 고쳐지기를 기다리며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 전문채널인 CNN 화면에 '뉴스 속보' 타이틀이 뜨는 것이었다.

무슨 큰일이 난 줄 알았다.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도 뭔가 큰일이 났나 싶어 모두 시선을 TV에 고정시켰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한 연예인의 돌연사 소식이었다.

주인공은 애나 니콜 스미스.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기자는 애나의 시신이 안치된 플로리다주 할리우드의 한 병원에 진을 친 채 속보를 '쏟아내고' 있었다. 쏟아낸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기자의 애나 스미스에 관한 '다면 취재'는 대단히 철저했다.

애나가 쓰러진 할리우드의 세미놀 하드록 호텔에 함께 투숙했던 변호사 친구, 보디가드와 개인 간호사, 병원에 도착했을 때 천에 싸인 애나의 시신을 처음 목격한 사람의 인터뷰, 애나 가족의 반응, 애나가 출연했던 영화와 TV 프로그램, CNN 래리킹 쇼에 나왔던 애나와 래리킹의 대담 장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화면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이 뒤따랐고, 래리킹 쇼 진행자인 래리킹과는 계속 전화 연결을 하면서 생전의 애나를 추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애나의 5개월 된 딸의 생부가 누구이고, 후견인이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의학 전문기자가 나와 법률적인 쟁점 등을 분석하면서 심층 보도 했다. 마치 거물이 죽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CNN이 처음 보도했다는 이번 애나 스미스의 사망 속보는 그냥 단순한 뉴스 속보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CNN은 이 사건을 현장 뉴스로까지 비중 있게 다루면서 애나 스미스의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애나와 그 주변을 마구 파헤치고 있었다.

이 방송은 기자가 휴게실에 있던 2시간 여 동안 계속되었다. 현장 뉴스 속보는 기자가 그곳을 나올 때까지 끝나지 않았으니 그 후로 더 얼마나 이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TV를 보면서 실망스러웠던 점은 연예인의 죽음을 그토록 다각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채널이 다름 아닌 뉴스전문채널인 CNN이라는 점이었다.

애나 스미스가 누구이기에?

<USA 투데이> 2월 9일자에 실린 애나 스미스 관련 기사
2월 9일자에 실린 애나 스미스 관련 기사
'21세기 마릴린 먼로'로 불리던 섹스심볼 애나 니콜 스미스.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이 금발 여성이 미국의 TV와 신문을 뜨겁게 달구었다. 도대체 애나 스미스가 누구이기에 미국 언론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을까.

본명이 '비키 린 호간'인 애나 스미스. 그녀는 1967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났다. 2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손에 키워졌는데 애나는 '제2의 마릴린 먼로'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짐스 크리스피 프라이드 치킨'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애나는 함께 일하던 16살 빌리 웨인 스미스와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나이 17살이었다. 결혼 이듬해 애나는 아들 대니얼을 낳지만 아들이 1살이던 1987년,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다.

그 뒤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애나는 토플리스 바(가슴을 드러낸 댄서가 있는 술집)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누드 사진을 <플레이보이>에 보내 창업주인 휴 헤프너의 눈에 띄게 된다. 그리고 '이달의 플레이보이 걸'로 선정되고 1993년에는 <플레이보이>가 선정한 '올해의 플레이메이트'로도 뽑힌다.

애나는 그 이후 게스 청바지 모델로서도 이름을 알리게 되고 '네이키드 건 33⅓'이라는 영화로 영화계에도 데뷔한다. 그러다 1991년, 자신이 일하던 토플리스 바에서 억만장자인 석유재벌 하워드 마셜 2세를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그 때 애나 나이 26살, 마셜은 89살이었다.

그러나 마셜은 13개월의 짧은 결혼생활을 끝으로 죽게 된다. 애나는 16억 달러로 추산되는 엄청난 돈을 남긴 마샬의 유산을 두고 마셜 아들과 재산분할 소송을 벌인다.

그런 와중에 애나는 작년 9월, 바하마의 한 병원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딸을 낳는다. 그리고 그 때, 자기를 만나러 온 아들 대니얼이 같은 병원에서 사흘 만에 죽게 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애나의 5개월 된 딸인 대니얼린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현재 딸의 아버지로 추측되는 인물은 변호사 하워드 스턴과 프리랜서 사진작가인 래리 버케드이다. 두 사람 모두 대니얼린의 생부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LA 법원은 애나가 죽기 하루 전날인 7일에 애나와 딸의 DNA 샘플을 21일까지 제출하도록 명령한 바 있다.

애나 사망사건을 다룬 미국 언론들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애나에 대해 대중들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애나가 대중들의 천박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스타이기 때문에, 시청률이나 열독률을 생명으로 하는 미디어의 속성 때문에 애나와 같은 매력적인 아이템을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지나치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관심을 보였기에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

ABC-TV는 애나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특집기사를 편성했으며 폭스뉴스채널 역시 웹사이트에서 그의 삶을 조명하는 포토에세이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신문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LA타임스는 애나 스미스의 풀 연대기를 게재하는가 하면 USA투데이는 주말판 커버스토리로 그녀의 죽음을 다뤘다.

<뉴욕타임스> 2월 9일자에 실린 사진. 애나 스미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진을 친 사진기자들.
<뉴욕타임스> 2월 9일자에 실린 사진. 애나 스미스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진을 친 사진기자들.
제임스메디슨대학교(JMU)에서 홍보학을 가르치고 있는 윤재환 교수는 이번 애나 사망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얼마 전, 미국인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애나 스미스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모두들 불편한 느낌을 갖고 있더군요. 왜냐하면 사람이 죽었는데 그에 관한 보도가 완전히 흥미 위주로 센세이셔널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었죠. 모든 게 까발려지고 가십성 기사가 난무하는 이런 선정적인 보도 태도에 대해 교수들은 불쾌한 느낌마저 갖고 있는 것 같더군요."

앞에서 기자가 들렀던 정비회사에서 만났던 한 남성도 미국은 현재 이라크 문제와 리크 게이트와 관련된 리비 재판 등 현안이 많은데 쓸데없이 애나 기사만 다루고 있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정적인 연예인 보도에 대해 이 지역 일간 신문인 데일리 뉴스 레코드(2월 13일자)에서도 신디케이트 칼럼니스트 존 러더포드의 칼럼을 통해 이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애나 니콜 스미스, 그녀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엔트로피 포르노배우다. 사람들은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에서 애나 스미스의 삶과 죽음의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보면서 마치 마더 테레사가 다시 죽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많은 미디어들이 이번 애나의 사망 사건을 비극으로 다루면서 적잖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사실 미디어가 속을 드러내 미화하고 있는 대상은 스트립쇼 댄서에서 모델로 바뀐 한 인물일 뿐이다.

그녀는 80대 억만장자인 석유재벌 노인을 토플리스 바에서 만나 결혼하고 1년여 뒤에 그의 미망인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의 남은 평생을 상속 싸움을 해야 할 판이다.

죽은 사람은 연민의 대상이긴 하지만 이번 애나 사건을 보면서 불쾌한 생각이 드는 것은 누드 사진 몇 점과 법정 소송, 그리고 5개월 된 아기를 남긴 게 고작인 사람을 언론이 지나치게 미화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에 있어서 진정한 비극은 애나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미국의 미디어가 미국 대중들을 계속적으로 실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그들은 우리에게 뉴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애나의 사망 사건은 뉴스가 아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에서 진짜 뉴스를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뉴스들이 엔터테인먼트 형태로 바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하는 현 사회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스 대부분이 공허한 엔터테인먼트 아이템으로 구성되고 있다.

둘째, 미디어가 가야 할 길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세계는 위기와 전쟁, 고상하고 용기있는 사람들의 죽음으로 황폐해져가고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그런 이름들을 찾아보기란 거의 힘들다. 그들은 단지 통계가 되고 있을 뿐이다. 전직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의 죽음보다 전직 스트리퍼의 죽음이 더 많은 미디어의 초기화면을 장식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비록 좋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디어는 우리 사회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말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슬프게도 지금의 미국 사회는 본질적으로 텔레비전이 확장된 사회다. 텔레비전이 미국의 신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확실히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은 텔레비전을 꺼야 할 때인 것 같다.


대중들의 천박한 호기심과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막강 자본을 끌어들인 거대 공룡 언론. 지금의 선정적인 언론 위기의 문제를 단순히 텔레비전을 끄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 태도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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