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미경의 쓸쓸한 묘지김대갑
작은 물줄기가 눈가로 내려앉는다. 눈을 감으니 16년 전의 그 날이 생각난다.
겨울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부산 앞바다에서 세차게 불어오던 계절이었다.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스프링처럼 사상공단 사거리로 달려갔다. 천 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눈물과 한숨, 탄식이 더러운 공단의 거리 위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은 피켓과 전단지를 차가운 공단의 밤거리에 뿌려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경찰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고 사람들은 '포위'라는 무거운 단어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덧 11시를 가리켰으며 인적이 드물다는 것을 간파한 경찰은 전투대형을 신속히 갖추었다. 경찰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치고 들어왔다.
여인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 낙엽처럼 굴러다니는 낡은 운동화들, 무겁고 칙칙한 군화발자국 소리,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붉게 뿌려진 핏방울들. 마치 영화 <전함 포템킨>에 나오는 '오뎃사의 계단 학살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파편화되고 깨어진 사람들의 모습. 광주 학살이 이렇게 진행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경찰은 무자비하고 냉정하게 집회장을 박살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