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남고 싶어요"

홀트일산복지타운 맏언니 영희씨의 새해 소망

등록 2007.02.20 15:56수정 2007.02.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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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트아동복지회

새날, 새해가 되면 누구나 가슴 속 새로운 계획, 새로운 소망을 다짐해 본다. 홀트일산복지타운에도 2007년 새 태양이 떠올랐다. 270여 명의 홀트가족들은 새해 어떤 소망과 희망을 품고 있을까!


홀트 모든 가족들의 소망을 듣고 싶지만 대표하여 홀트마을에서도 가장 많은 새해를 맞이한, 그래서 더욱 돌아오는 한해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되는 한 분. 홀트마을의 가장 맏언니이자 50년을 홀트마을 터줏대감으로 지내 온 영희씨의 지난 이야기와 새해 소망을 들어 보았다.

@BRI@"계세요?"

영희씨를 만나가 위해 백합방 문을 두들겼다. 백합방은 홀트마을 여자분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분들이 지내는 곳으로 경증 장애를 가진 분과 중증 장애를 가진 분들이 생활지도사 없이 서로 도우며 살고 있는 숙소이다. 지금은 영희씨를 포함 10명이 살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영희씨가 밝은 웃음으로 반가이 맞아 주었다. 쌍꺼풀에 까맣고 큰 눈 소녀 같은 모습은 전혀 58세로 보기 어려웠고, 거기다 최근 흰머리까지 검게 염색해서 더욱더 홀트마을 최고 고령자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영희씨는 뇌성마비(뇌병변) 1급 장애 중에서도 중증인 편이라 주변 도움 없이는 먹는 것, 입는 것 어느 하나라도 혼자 하기 어렵다. 오늘도 같은 방 영애씨의 통역(?)으로 겨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신기하게 영애씨는 척척 대답해 준다. 역시 대화는 입이 아닌 마음으로 나누는가 보다. 영희씨와 영애씨가 함께 보낸 40년도 넘는 시간을 내가 어찌 쫓아갈 수 있을까.

영희씨는 9살 되던 해인 1958년 홀트마을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해 홀트할아버지가 처음 세운 서울 은평구 녹번동 고아원으로 들어왔다. 할머니에 손에 이끌려 온 낯선 고아원…. 영희씨는 어렸지만 그때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기억도….


영희씨는 어렴풋하지만 할머니와 아버지, 오빠와 남동생이 기억난다고 했다. 혹, 영희씨를 고아원에 맡긴 가족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영희씨는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전쟁 직후 모두가 가난한 그 시절, 자신처럼 심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돌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며 가족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아주 가끔 가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고.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녹번동에 머물 때 잠시 할머니가 다녀갔었다고 말을 하는 영희씨의 눈에 그리움이 비쳐 보였다.

꽃집 아가씨, 눈 덮인 강원도

a 10대 소녀시절 영희씨(위, 좌측)와 친구들. 가장 사랑하는 버다홀트 할머니와 함께(아래).

10대 소녀시절 영희씨(위, 좌측)와 친구들. 가장 사랑하는 버다홀트 할머니와 함께(아래). ⓒ 홀트아동복지회

영희씨가 홀트가족이 된 지 올해로 50년이 되는 해이다.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영희씨는 홀트아동복지회와 홀트할아버지, 특히 오랜 시간 가족처럼 버팀목이 되어 준 버다 홀트할머니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그 누구보다도 깊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한동안 우울증까지 앓았을 정도라니…. 영희씨의 앨범 속에 고이 간직된 할머니의 편지와 사진들이 이를 말해 주듯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은 할머니를 대신해 말리언니(홀트 부부의 둘째 딸이면서 현 홀트 이사장으로 50년간 한국에서 봉사하고 있음)가 선물을 챙겨 주고 있다.

맏언니답게 영희씨는 항상 동생들을 배려하려 노력한다. 장애를 가진 자신 때문에 늘 손발이 되어 주는 동생들, 한편으로 고맙고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 혹 자신 때문에 불편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단다.

사랑하는 동생들과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맏언니로서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운동도 꼭 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아이에서 소녀로 이제는 왕언니로 비록 불리는 명칭과 외모만 바뀌었을 뿐 마음은 언제나 소녀처럼 말고 순수해 보였다.

새해 소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더니 "건강하고 예쁜 모습으로 남고 싶다"고 전했다. 거창한 대답이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생각해보니 건강한 모습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예쁜 꽃을 키우는 꽃집을 운영하고 싶다는 영희씨. 예쁘게 치장하고 꽃집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영희씨를 상상해 보니 무척 어울렸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참! 영희씨의 새해 소망 중 또 다른 하나는 하얀 눈으로 덮인 강원도를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본 아름다운 경치를 직접 보고 싶단다. 장애 때문에 외출이 어려워서인지 영희씨는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비록 꽃집 아가씨는 좀 어렵지만 눈 덮인 강원도는 그래도 도전해 볼 소망인데 2007년 한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짧은 영희씨와 만남, 입으로 나눈 대화는 작았지만 가슴 속 수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려 휠체어를 꽉 잡고 나의 질문에 온몸으로 대답해 주었던 영희씨. 힘들었을 텐데 연방 큰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 주어 감사했다.

영희씨를 만난 후로 내가 자유롭게 말하고 걸을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부귀나 명예보다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홀트아동복지회 사보 <홀트소식 145호>(2007년 2월)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www.holt.or.kr

* 김은희 기자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홀트아동복지회 사보 <홀트소식 145호>(2007년 2월)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www.holt.or.kr

* 김은희 기자는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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