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이라는 낱말이 기록된 태조실록이정근
혁명을 다져가는 신세력은 백성들의 환호를 이끌어 낼 정책을 사헌부 상소문 형태로 발표했다. 기강을 확립하고 상벌을 엄격히 할 것이며 환관을 멀리하고 간언을 경청 하라는 등 총 10개항의 정책 중에서 백성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있었으니 승니(僧尼) 척결이다.
승니는 본디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적게 하여 정신을 수련하면 될 것인데 지금은 평민들과 섞여 살면서 고상한 말과 미묘한 이치로써 사류들을 현혹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을 공갈(恐喝)치기도 한다. 심한 자는 재물을 늘리고 여색(女色)을 탐하니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태조실록>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공개적인 표방이다. 사회악의 표적을 승려들에게 맞춘 것이었다. 물론 고려 말 사찰과 승니들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과도한 토지를 소유하고 기층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던 사찰은 백성들의 원성의 대상이었으며 권력자들에게 빌붙어 갖은 사회문제를 야기한 승려들은 비판의 대상이었다.
5·16직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하여 부정부패와 사회악 일소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한 깡패소탕작전과 너무나 흡사하다. 또한 이 상소문에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혁명(革命)이라는 낱말이 등장한다.
"왕은 이르노라. 하늘이 많은 백성을 낳아서 군장(君長)을 세워 이를 길러 서로 살게 하고 이를 다스려 서로 편안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도(君道)가 득실(得失)이 있게 되어 인심(人心)이 복종과 배반함이 있게 되고, 천명(天命)의 떠나가고 머물러 있음이 매였으니, 이것은 이치의 떳떳함이다."즉위교서-<태조실록>
정도전이 지은 즉위교서 첫머리다. 당대의 문장가 정도전의 혼이 녹아 있는 명문이다. 고려를 멸하게 된 당위성과 신생국의 좌표를 설정한 명문장이다. 사람의 마음에 복종과 배반함이 있고 천명의 떠나감과 머물러 있음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낙향하여 시묘살이 할 때 정몽주가 전해준 <맹자>에서 원용한 것이며 그가 방원에게 전해준 <맹자>에서 인용한 것이다.
혁명세력은 즉위교서를 발표하고 공신도감을 설치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공신록이 작성된다는 소문이 도성에 퍼지자 정도전의 집 앞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신록에 오르면 당대는 물론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위한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신하들의 조회를 서서 받았다. 용상에 앉으라는 신하들의 간청을 한사코 뿌리쳤다. 군주로서 격식을 파괴하고 신하들에게 친밀감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군막에서 수없이 되풀이된 '대학연의' 강독에서 체득한 것을 몸소 실천하기 위한 치밀한 전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문화면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