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정말 '여권의 응원단장'일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탈당선언'은 '기획' 아닌 '포기'로 봐야

등록 2007.02.23 10:01수정 2007.07.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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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초청 만찬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정세균 당의장, 장영달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탈당을 선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초청 만찬간담회를 갖기에 앞서 정세균 당의장, 장영달 원내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만찬에서 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탈당을 선언했다. ⓒ 연합뉴스 배재만


한나라당의 강재섭 대표는 "통합신당을 위한 꼬리자르기식 정치술수"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여권의 선거 기획단장, 응원단장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기획 탈당"이라는 것이다.

근거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지낸 우상호 의원이 그랬다. "통합신당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등 통합대상들이 거부의 명분으로 삼았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희상 의원도 말을 걸쳤다. '도로 민주당' 비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민주당과의 통합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

별반 차이가 없다. '기획 탈당'과 '탈당 결과' 중 어디에 방점을 찍을 것인가 하는 차이는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이 통합신당 추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명제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

정말 그럴까? 이럴 땐 김치 국물 마시는 사람보다 떡 줄 사람을 먼저 살피는 게 순리다.

민주당 논평이 나왔다. "노 대통령이 탈당 이후 정치에 간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번 탈당이 민주당이 그동안 요구해온 국정 전념의 의미보다는 열린우리당으로 하여금 정계개편을 주도하게 하고 노 대통령 자신은 막후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으로 보여져 우려스럽다"고 했다. 탈당 선언 '이후'를 본 다음에 떡을 줄 건지 말 건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다.

포인트는 역시 선언이 아니라 실천,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노 대통령은 과연 탈당 이후 정치에 개입하지 않을 것인가?

노 대통령의 '탈당선언'은 '기획' 아닌 '포기'


해답을 내놓기 전에 먼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노 대통령은 여러 차례 "도로 민주당은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탈당 선언과 동시에 민주당과의 통합을 거론하고 있다. 그럼 노대통령은 '도로 민주당'이 돼도 괜찮다고 생각한 걸까?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이 한 말이 있다. 어제 열린 청와대 만찬이 "각자 길은 다르지만 잘해보자는 분위기로 끝났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이 '도로 민주당'에 동의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태클을 걸 생각도 없다는 얘기로 해석할 만한 말이다.


실상이 이렇다면 노 대통령의 탈당은 '기획'이라기보다는 '포기'에 가깝다. 정치에 개입할 여지도 별로 없다. 포기를 하면 개입할 맘도 기력도 쇠하는 게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다.

문제가 발생할 지점은 따로 있다.

노 대통령이 선을 그었다. "선거를 위해 대통령을 정략의 표적으로 삼아 근거없이 공격하는 잘못된 정치풍토"를 비판하면서, "언론의 페이스로 날 공격하는 것은 대응하겠다"고 했다. "진보진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란 말도 덧붙였다.

노 대통령이 '정략적 공격'에 '맞장'을 뜨는 지점, 그래서 정치 개입 의혹을 살 수 있는 지점이 있다. 그게 뭘까?

우선 떠오르는 게 '대선용'이다. 참여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대선용'으로 몰아 방해하고 공격하는 행태다. 이런 행태가 빈발하면 여당 없이 국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노 대통령은 어려운 상황에 몰린다.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라도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대선용'이 정치권의 유행어가 되는 걸 경계하는 노대통령의 심사는 이해할만 하고, 정치에 개입한다는 의혹을 살 소지는 그리 크지 않다.

참여정부 공과놓고 과연 열린우리당이 노 대통령 편에 설까

꼬일 지점은 따로 있다. 평가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 지점에서 격렬한 정치적 논쟁이 촉발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본격적으로 나설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과정에서 참여정부의 국정 공과에 대해 할 말을 다 하는 태도를 보일 것도 자명하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국민중심당)과의 통합으로 세력 기반을 다진 후에 외부인사 영입에 착수하면 공과에 대한 평가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노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다고 간주할 경우 적극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대상으로 '진보진영'을 특정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논전을 벌일 것이다.

논전이 가열되고 확대되면 통합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노 대통령을 따르는 친노 그룹의 '엄호'를 유도할 수도 있고, 외부 진보진영의 '조소'를 유발할 수도 있다. 의도를 했건 안 했건 통합작업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정치 개입 의혹을 살 공산은 그만큼 커진다.

해법이 없다. 참여정부 국정은 노 대통령에겐 마지막 자존심을 걸고 지켜야 하는 영역이지만 열린우리당이나 통합대상에게는 맨 처음 뚫어야 하는 관문이다. 유일한 해법은 노 대통령이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묵언수행'에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고 이미 잘라 말한 상태다.

그래도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살피다 보니 드러난다. 노대통령이 여권의 '응원단장'으로 탈당을 '기획'했다는 비판은 재검토돼야 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탈당선언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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