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의 노래와 봉황의 춤이 어울리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세종어제 <봉래의> 현대화 시도

등록 2007.02.26 11:11수정 2007.02.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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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립국악원이 처음 현대화작업으로 무대에 올린 세종의 봉래의. 무대 뒤편으로 유리벽에 무용수들이 비치면서 동시에 후면에 배치된 정악단 악사들이 보여 신비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이 처음 현대화작업으로 무대에 올린 세종의 봉래의. 무대 뒤편으로 유리벽에 무용수들이 비치면서 동시에 후면에 배치된 정악단 악사들이 보여 신비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 국립국악원


세종이 한글을 창제하고, 그것을 통해 용비어천가를 짓게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종은 한글 외에도 나라의 문화적 기틀을 바로세우기 위한 많은 일들을 했는데, 그중 하나가 궁중음악을 새로이 만들고자 노력한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훈민정음에도 그 뜻을 분명히 한 바, 세종은 우리나라의 말과 문화가 중국과 다르며 또한 달라야 한다는 분명한 민족주체성을 갖고 있어 보인다.

한글이나 용비어천가의 경우 문헌으로 분명하게 남아 있고, 그 가치가 범용적이어서 익히 알려져 있으나 세종이 만든 궁중음악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음악과 춤은 문헌상의 전래만으로는 실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조선의 궁중음악이 현재에 전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한정된 공간 속에서 연행되던 것이라 그 전래에 어려움을 않고 있으며, 게다가 조선 말 일본의 방해와 자체 왕조의 쇠약함으로 많은 음악적 자산을 잃었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다.


@BRI@현재 국립국악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이왕직아악부는 그런 아픈 역사의 흔적이 담겨 있고, 친일과 부일의 의심과 오해에 대해서는 아직 더 많은 연구가 요구되지만 그나마 그를 통해 조선왕조의 궁중음악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왕직아악부가 끝내 문을 내리고 현재의 국립국악원으로 다시 출범하기까지는 중도 공백이 있었고, 막상 전시 중에 출범한 국립국악원도 유실된 궁중음악에 대해 전적으로 매달릴 형편은 되지 못한 채 5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런 까닭에 국립국악원이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조선왕조 궁중음악 복원 및 재현노력은 완성도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세종 때의 음악을 되살리는 일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세종의 지시로 만들어진 궁중음악은 별도의 프로젝트는 아니다. 기왕에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 음악과 춤 그리고 악기연주를 붙여 합목적적으로 활용한 것이기에 세종에게는 문화에 대한 커다란 청사진이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a 봉래의는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세 악곡으로 음악적 구성을 하고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봉래의는 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세 악곡으로 음악적 구성을 하고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 ⓒ 국립국악원


용비어천가에 음악과 춤을 곁들인 것을 따로 <봉래의>라고 하는데, 이는 세종실록에 그 악보가 남아 있고, 악학궤범에는 춤의 절차와 내용이 상세히 수록되어있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명확치는 않지만 봉래의는 조선왕조기를 통해 자주 공연되지 않았다. 문헌에 기대지 않고 추측하자면, 초기를 벗어난 조선왕조가 중국에 대해 사대의 자세로 전환하면서 주체성을 높이고자 했던 세종의 업적을 드러내기 꺼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 국립국악원 서인화 박사는 “ 봉래의가 500년이라는 긴 왕조 동안 금나라에 대한 강경론을 펼쳤던 인조대와 대한제국을 건국한 고종대에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며 완곡한 해석을 보였다.

<봉래의>는 다른 궁중연과 구별되는 몇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보통 궁중무용은 향악정재와 중국에서 유래한 당악정재로 구분한다. 물론 조선후기에는 양자의 구별이 의미가 사라지기는 했으나, 세종 때만해도 그 구분은 명확하였다. 그러나 세종이 만든 <봉래의>는 후대에 향악정재로 구분하면서도 실제 공연 내용에는 당악정재의 요소가 많이 포함된 점이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또한 공연을 본 한예종 김석만 교수는 무대에서 노래와 춤을 함께 한 공연역사는 유럽의 오페라보다 한 세기 가량 앞선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도 했다. 물론 정재에는 무용수가 노래하는 것은 비단 <봉래의>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악사가 춤을 추는 것은 아마도 <봉래의>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악사가 본격적으로 춤을 추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20세기 록뮤직에서나 익숙해진 풍경이다. 그만큼 세종의 <봉래의>에는 대단히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a 봉래의가 다른 정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춤추며 노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고증을 통해 만든 정재복을 입고 춤을 추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봉래의가 다른 정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춤추며 노래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고증을 통해 만든 정재복을 입고 춤을 추는 국립국악원 무용단. ⓒ 국립국악원


그러나 <봉래의>는 고종 이후 공연되지 않다가 한국궁중음악의 살아있는 역사인 김천흥 선생에 의하여 1981년 처음 재현되었고, 작년에는 김천흥 선생의 제자인 국립국악원 무용단 안무가 하루미 씨에 의해 대대적인 재현 작업이 수행되었다. 그때 <봉래의>가 완성도를 갖출 수 있는 데는 국악원 바깥에서 묵묵히 비파 복원작업을 해온 한은영 씨가 있어 공연이 부족함 없이 갖춰졌다.


작년까지의 <봉래의>가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한 구명이었다면, 올초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이 지난 23, 24일 예악당에서 무대에 올린 <봉래의>는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의미들을 담고 있어 구별된다. 또한 흔치 않은 정재안무가 한 명을 새로이 배출하게 된 의의를 갖고 있다. 연출 이병훈, 안무 심숙경, 무대 이경표 등이 주요 스태프이고, 음악과 노래는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맡았다.

기존 국립국악원 정재 재현무대가 복원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이번 <봉래의>는 본디 세종의 의도였던 실험성에 시선을 맞추고자 한 듯 보였다. 우선 무대가 기존 정재와 전혀 다르게 만들어졌다. 흔히 설치되었던 궁중환경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그 자리에 유리벽이 삼면을 둘러싸고 그 뒤로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이중구조를 보였다.

정재를 오랫동안 접해온 사람에게는 무척 낯설고 당황스럽기도 한 무대였으나, 기존 방식대로의 정재공연이 워낙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까닭에 자주 무대화되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도 자체를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말이 실험이지 실제 보여지는 의상이나 들려지는 음악에 있어서는 오히려 작년 공연 때보다 더 많은 고증과 재현 성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실험적 재현공연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듯하다.

a 악사가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연주와 함께 춤을 추는 것도 봉래의만의 특징.

악사가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연주와 함께 춤을 추는 것도 봉래의만의 특징. ⓒ 국립국악원


이틀 공연을 마진 국립국악원 무용단, 정악단은 대체적으로 만족한 듯 한 분위기였다. 물론 음악과 춤 모두 작년에 한 토대에 더 보태고 단련해서 완성도를 높인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현대적 분위기의 정재도 그 나름의 무대미학이 엿보여 감상에 새로운 감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무대 위가 아닌 바깥에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조선왕조실록이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인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종묘제례악이 우리나라 최초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조선왕조문화는 한국만이 가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작년 국립극장의 경우 국가브랜드사업이라는 명목 하에 산하단체에 별도의 예산이 책정되어 3년 동안 추진되게 하였다. 물론 국립극장 산하단체의 작품들도 국가브랜드를 만들어야 하겠지만, 국가브랜드화의 가능성과 요소를 풍부하게 가진 국립국악원의 궁중예술이 그 프로젝트에 제외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문화정책가들이 입버릇처럼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끼를 거론하는데 막상 우리 문화현실 속에서 그와 견줄 충분한 소재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이런 아이러니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정작 해외에 내놓을 우리만의 문화브랜드 찾기는 도로에 그치고 말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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