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로또 당첨될까?"... 임기 4년째, 바닥과 대박 사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인의 대통령 회견 뒷담화

등록 2007.02.28 09:44수정 2007.02.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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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1. 대통령 만나러 가는 길 - "청와대 법인카드 덕 좀 보자"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27일 오전. 나는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목에 맸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적어도 지난 5년 동안 넥타이를 메 본 기억이 없다. 많이 어색했지만 결국 넥타이를 목에 둘렀다.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는 대통령이지만, 최대한 단정한 차림을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2명도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23살 대학생도 있었고, 55살 주부도 있었다. "기자회견은 오후 3시 시작인데, 왜 1시 30분부터 오라 그래요?"라는 '항의'도 있었지만 모두들 곱게 차려 입은 건 마찬가지였다. 한담이 오갔다.

"기자회견 끝나면 노무현 대통령이랑 뒤풀이 갑시다."
"술값은 누가 내는데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법인카드 갖고 오겠죠. 제가 말할게요."
"정말? 푸하하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말했다. 서민들과 편안하게 소주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그러니까 시민기자들과 주고받은 말은 '농담'만이 아니었다.

#2. 대통령 만나고 오는 길 - "복권 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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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2시간 30분 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던 건 태어나 처음이다!"
"노 대통령 말 정말 잘하네. 노 대통령 살짝 촉촉해지는 것 봤어요?"


1시간 30분 예정이었던 기자회견은 무려 1시간이나 초과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자회견) 좀 더 하죠"라며 스스로 시간을 연장했다. 그리고 작정한 듯 많은 말을 토해냈다. 김귀현 시민기자는 "노 대통령의 격정토로"라고 표현했다.

쉬는 시간 없는 2시간 30분간의 기자회견. 어떤 시민기자는 중간에 졸기도 했단다. 졸 틈이 없었다는 몇몇 시민기자 사이에선 노 대통령의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는 설왕설래가 오갔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 버스는 우리들을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떨궜다'.

시민기자 10명이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식당으로 향한 이유는 배가 고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통령에 대한 '뒷담화'가 더 고팠다.

식당의 상은 순식간에 채워졌고, 뒷담화는 화려하게 펼쳐졌다. 어떤 시민기자는 "노 대통령은 막말하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했고, 어떤 시민기자는 "대통령 노무현에게서 힘 잃은 가장의 쓸쓸한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시민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과 '조중동'의 입장이 무엇이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두 주부 시민기자는 "노 대통령이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를 봐야 민생 해법을 찾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 대통령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직업 알선 투자도 과거에 비해 곱빼기로 늘리고 있다"는 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취업준비생인 한 시민기자의 "노 대통령이 업적인양 말한 직업 알선 교육은 허점이 많다, 많은 직업 알선센터는 구직자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 곳이나 소개한다"는 비판에, '고졸' 동생을 두었다는 또 다른 시민기자는 "내 동생은 돈을 받아가며 좋은 직업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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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새겨진 시계를 놓고 시민기자들은 제비뽑기를 했다. ⓒ 차예지

이야기꽃만 만개한 게 아니다. 밥상 위에는 '대통령 노무현'이 새겨진 선물도 펼쳐졌다.

이날 청와대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과 방청객들에게 선물로 볼펜 하나씩을 줬다. 그리고 인터넷 신문사 대표들에게는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우리에게 그 시계를 '기증'했다.

그것을 놓고 제비뽑기를 했다. 보잘 것 없었지만 '노무현'이 새겨진 게 '브랜드 가치'였다. 그 시계는 김정혜 시민기자에게 돌아갔다. 김 기자는 이런 말도 했다.

"어머니가 '대통령 만나면 복권 하나 사 온나' 하시더라. 나올 때 신발을 보니 어머니가 만원짜리 한장을 넣어놨더라. 버스 요금까지 아끼시는 양반인데, '대통령 얼굴 똑바로 보고 나오라'고 신신당부했다. 꼭 사가야겠다. 꿈에 대통령 만나고 로또 1등 먹은 사람이 3명 있다더라."

기상청의 일기 예보가 빗나가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그래도 대통령은 여전히 '대박'의 기원이 되고 있었다. 비록 미신이지만 말이다. 지지율 바닥과 대박의 기원 사이. 노 대통령은 그 안에 있었다.

#3. 대통령 만나보니... - "너무 만만한 거 아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은 그 '노무현'을 주제로 배를 채우고 술잔을 기울였다. 청와대 법인카드 들고 술자리에 나타나는 대통령은 농담으로만 머물렀다. 술값은 <오마이뉴스>가 해결해 줬다.

훗날 노 대통령과 '삼겹살 토크' 하는 날을 꿈꿨던 자리. 다음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10명이 이 자리에서 풀어낸 뒷담화다.

▲차예지(25·대학원생) - "솔직함만 필요한 게 아닌데..."

"평소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수준 낮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이 맞구나'하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대면하고 이야기 들어보니 친절하고 소탈했다. 언론을 통해 볼 때보다 친근하고 인간적이었다. 고모부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국민에게 가식 없이 다가서려 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에게는 솔직함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김귀현(27·취업준비) -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만만했다"

"친구 같은 대통령? 그래 좋다. 그러나 친구 중에는 편안한 친구가 있고 형 같은 친구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노 대통령은 너무 '만만한 대통령'이었다. 오늘 기자회견 사회자 김미화씨가 "힘내라"는 격려에 노 대통령이 살짝 눈물을 보였다. 노 대통령이 계속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기만 하다가 사회자의 격려에 살짝 감동을 받은 듯 했다."

▲이정혜(24·대학생) - "이제 내 목소리를 내야겠다"

"노 대통령이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해서 많은 신뢰가 생겼다. 이제 임기가 1년 남았는데 기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너무 말을 쉽게 한다는 평가가 있다. 기자들이 대통령 말을 전후 맥락을 생략하고 국민들에게 전달한 탓도 큰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을 다는 놀이도 있었다. 돌아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나의 견해는 없었다. 보수 매체가 전해준 것을 여과 없이 내 견해로 받아들였다. 이제 나의 목소리를 내야겠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공부도 좀 해야겠다."

▲이덕원(25·대학생) - "한미FTA 찬성 논리 반박하겠다"

"얼마 전에 있었던 신년 연설에서도 노 대통령의 '화법'은 도마에 올랐다. 뉴스는 그의 말을 '계속되는 말실수'로 전했다. 보수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을 비하하기 위해서 발언의 앞뒤를 다 자르고 왜곡해서 보도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이 저급하다고 했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고졸 학력과 화법을 연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말을 직접 들어보니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다만 한미FTA와 양극화 문제가 별 상관없다는 식의 대통령 주장에는 동의 못하겠다. 공부를 해서 대통령의 논리를 반박하고 싶다."

▲선대식(26·대학생) - "기자들도 공부해야"

"노 대통령이 오늘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등 시종일관 적극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자도 공부를 해야 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인터넷 매체의 특성과 예리함이 없었다. 보수 언론의 기자회견과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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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홍성희(23·대학생) - "노 대통령, 진보 아니다"

"대통령이 진보논쟁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게 기억에 남는다. 도대체 누가 진보이고, 무엇이 진보인가. 국민들 상당수가 노 대통령을 진보로 생각하는데, 과연 그런가? 노 대통령이 추진한 구체적인 정책들 보자. 평택 대추리 문제, 한미FTA, 비정규직 문제 등은 조중동의 주장과 일치한다. 진보세력은 노 대통령과 확실한 선을 그어야 한다. 도대체 노 대통령이 왜 진보인가."

▲이병기(27·대학생) - "다시 '노빠'로 귀환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노빠'다. 2002년부터 노 대통령을 좋아했다. 그런데 주위에서는 비판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최근 노 대통령을 계속 지지해야 하는지 갈등했다. 그러나 오늘 기자회견을 통해 나의 답답함과 가려운 곳이 풀렸다.

개헌 문제나, 양도세, 한미FTA 등 전반적으로 노 대통령의 주장에 공감했다. 잠시 소원해졌던 대통령에 대한 믿음을 다시 찾아오는 계기가 됐다. 노 대통령의 말투와 논리는 시원했다. 물론 거친 화법은 조심해야 하지만, 그건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지지율은 왜 이렇게 낮을까? 내가 그런 걸 조사해보고 싶다."

▲김정혜(44·주부) - "노 대통령이 쓸쓸해 보였다"

"대통령은 참 쓸쓸해 보였다. 힘없는 아버지가 뒤돌아 앉은 채 이야기하는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지금 노 대통령은 국민들과 소통이 막혀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국민들은 과거 솔직하고 시원한 스타일을 가진 '인간' 노무현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제 국민들은 그런 노무현 '대통령'을 싫어한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은 건 그만의 잘못이 아닌 것 같다. 돌아보면 우리는 대통령에게 힘을 주기보다는 욕하고 비난하기만 했다. 대통령이 힘들면 때로는 국민이 힘을 줘야 한다. 우린 너무 일찍 노무현 대통령을 포기한 건 아닌가하고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현순(55·주부) - "많이 늙었더라"

"대통령 신년 연설회 때도 현장에서 지켜봤다. 오늘 다시 보니 1개월만에 많이 늙었더라. 노 대통령이 많이 힘들고 심정 고통이 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신년 연설회 때도 느꼈지만 노 대통령의 말은 설득력 있고 논리적이다. 대통령이 항상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솔직히 지난 대선에서 나는 노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 '노사모'가 왜 그렇게 노무현에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니까 이해가 된다."

▲이민선(38·자영업) - "북핵은 진보, 경제는 보수"

"우리는 오랫동안 '왕의 통치' 시대를 살아왔다. 조선시대가 그랬고, 일제는 왕보다 더 무섭게 통치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는 물론이고, 오랜 군사 정권은 왕의 통치보다 더 혹독했다. 우리는 이런 '왕의 통치' 시대를 거치면서 대통령은 늘 권위적이고 위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에 비해 노 대통령은 매우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노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유연한 진보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 정책은 보수적이다. 노 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시장자유주의를 옹호하며 빈부격차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두루뭉수리하게 넘어갔다. 실제 서민들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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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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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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