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인터뷰 중간, 김미화씨가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은 의기소침한 대통령의 모습보다는 열정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원할 것입니다. 아직 일 년이나 남았으니 힘내십시오."
김미화씨가 대통령께 그 말을 했을 때 참석한 방청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그때 대통령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듯했고, 눈자위가 다소 붉어지는 듯했다. '힘내라'는 격려 한 마디에, 박수 한 번에 저렇듯 얼굴이 붉어지는 대통령….
대통령은 그만큼 외로웠던 것일까.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목구멍이 싸해져 왔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함께 참여한 다른 시민기자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런 대통령의 모습에서 나는, 지난날 내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 그리하여 한없이 주눅이 든 가장의 모습….
생존경쟁을 위한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가족들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줄 수 없을 때의 가장의 무기력함. 가족들의 불만과 비난, 그러나 그 어떤 변명조차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가장.
또 잘했다는 칭찬보단 실수에 대한 비난으로 한껏 주눅이 든 가장.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그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늘 주눅이 든 가장…. 내 아버지는 늘 외로워 보였다.
무기력했던 아버지와 노무현 대통령
어릴 적, 부모님은 부부 싸움이 잦았다. 늘 찌든 살림살이 때문이었다.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곤 터벅터벅 언덕을 내려가셨다. 한참이 지나 인기척에 밖으로 나가 보면 아버지는 언덕배기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깊은 시름을 긴 담배 연기에 실어 허허로운 웃음과 함께 밤하늘로 날려 보내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 왜 그때는 보이지 않았을까, 아버지의 축 쳐진 두 어깨에 실려 있던 삶의 육중한 무게를. 왜 그때는 짐작조차 못 했을까, 아버지의 꾸부정한 등에 내려앉아 있던 깊은 외로움을.
아버지라고 처자식 고생시키고 싶으셨을까. 아버지라고 처자식 호강시켜 주기 싫어 게으름 부리셨을까. 그럼에도, 아버지의 그 애타는 심정을 단 한 번이라도 이해하고 보듬으려 애쓴 적이 있나 싶다. 아버지의 가슴속에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아버지의 가슴 속에 어떤 희망이 있는지 언제 한번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 본적이 있나 싶다.
아버지의 아픔을 위로해 드리고, 아버지의 희망에 가족의 희망을 함께 보탰다면 아마도 아버지는 덜 고단하고 덜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가족으로부터의 무기력한 아버지, 세상으로부터의 주눅이 든 아버지를 만든 건 바로 우리들, 가족이었다. 지금 와 되짚어 보면, 그런 아버지에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과 이해 아니었을까 싶다. 문득, 딸아이가 남편에게 자주 불러 주는 노래 하나가 생각난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아마도 이 노래는 무기력해진 가장에게, 주눅이 든 가장에게 백 년 묵은 산삼 뿌리보다 더 용한 보약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다를까. 우리가 만든 대통령이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들과의 소통에 답답함을 느끼고 친구 같은 다정함으로 국민에게 다가가고 싶으나 그마저도 외면당하고 있다. 어찌 무기력해지지 않고 어찌 주눅이 들지 않을까. 어찌 그 외로움이 뼈 속 깊이 사무치지 않을까.
애초,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실망도 컸으리라. 그러나 실망했다고 해서 모질게 외면해 버린다면 대통령은 어디에 기댈 것인가. 대통령이 힘들 때 우리는 대통령에게 그 곤한 머리 한번 기대라고 어깨 한번 내밀어 준 적이 있는가. 인터뷰 도중 대통령은 그런 비유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소속 16개사와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인터넷협회 합동인터뷰에서 인사말을 하며 웃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석가는 영웅도 아니고 신도 아니었다. 그러나 허리가 아프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런 솔직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존경했다. 나도 그런 모습을 한번 흉내 내 봤는데 비난만 돌아오더라."
대통령의 숱한 말실수를 비유해서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다. 대통령의 그 말 속엔 대통령의 아픔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못하고 권위와 위엄으로 거짓 포장하는 대통령이 정말 진솔한 대통령일까.
왜 우리는 친구 같은 편안함으로 국민에게 허심탄회하게 다가서는 대통령의 진솔함은 보려 하지 않았을까. 왜 우리는 그런 대통령에게 따스한 위로 한번 해주지 못했을까….
대통령에겐 앞으로 1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짧다면 짧고 길 다면 긴 시간이다. 그 1년이란 시간은 대통령에게 있어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더 힘든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따스한 위로와 든든한 격려가 함께 한다면 대통령의 남은 1년은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 '잘할 수 있다'는 이 짧은 한마디의 격려가 더 할 수 없이 좋은 보약이 된다면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서는 길. 나 하나의 미미한 힘이라도 대통령께 보태 드리고 싶어 마음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렸다.
"노무현 대통령님.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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