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은 예와 다름없이 흐르건만...

[달내일기 97] 하상(河床) 공사 때문에 물이 죽어간다

등록 2007.02.28 17:17수정 2007.03.01 13:5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백토광산 오르는 길에 본 하상 정리가 된 계곡. 언뜻 보면 꽤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자연스런 물 흐름을 고려하지 못해 많은 문제점을 낳고 말았다.

백토광산 오르는 길에 본 하상 정리가 된 계곡. 언뜻 보면 꽤 멋있어 보인다. 그러나 자연스런 물 흐름을 고려하지 못해 많은 문제점을 낳고 말았다. ⓒ 정판수

달내마을에서 걷기 운동을 할 수 있는 길은 세 군데다. 하나는 뒷산으로 오르는 길, 다른 하나는 명대리로 내려가는 길, 마지막 하나는 백토광산 길이다.


요즘엔 세 길 중 뒷산으로 주로 오르기만 하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백토광산 길을 택했다. 백토 광산이란 말 그대로 흰 흙을 채취하는 곳이다. 이 백토는 도자기 원료로, 비료 원료로, 피부 마사지용 화장품 원료로 쓰인다는데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선지 몇 년 전 문을 닫았다.

이 백토광산 길은 거리가 짧아 운동하기에는 적당치 않아 땀 흘릴 곳을 찾다 보니 거의 일 년쯤 가지 않던 길이다. 그러나 이 코스가 짧기는 하지만 달내(月川)란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는 달내계곡이 죽이어진 곳이다.

달내계곡은 위로 오염원이 하나도 없다. 집이나 축사는 물론 논도 밭도 없다. 오직 있는 거라곤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유유히 흘러가는 뭉게구름뿐. 바로 달내마을 주민이 마시는 산수도(山水道)도 흐르는 계곡물이 묻어둔 파이프를 타고 흘러내려 오지 않는가.

a 멀리서 보면 폭포처럼 보이나 가까이 가면 아래 위 흐르는 물빛이 매우 누렇다. 그러니 이끼가 낄 수밖에.

멀리서 보면 폭포처럼 보이나 가까이 가면 아래 위 흐르는 물빛이 매우 누렇다. 그러니 이끼가 낄 수밖에. ⓒ 정판수

물은 정직하다. 오염원이 없으면 한없이 깨끗한 물을, 오염원이 있으면 더러운 물을 내려보낸다. 물은 거짓을 모른다. 깨끗하게 사용해주는 물에는 저도 최대한 깨끗함을 보여주고, 그렇지 않으면 저도 오염된 상태로 보여준다.

예전에 달내계곡이 바로 그랬다. 우리가 흔히 물이 깨끗하다는 표현을 수정처럼 맑다든지, 거울처럼 맑다고 하는데 이곳 물은 거울보다 수정보다 더 맑았기에. 또 아무 데서나 그대로 계곡에 얼굴을 담그고 들이키면 됐다. 여름에야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겨울에도 얼음을 오도독 깨 가며 먹는 물맛은 마셔보지 않은 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a 바위마다 잔뜩 달라붙은 이끼들.

바위마다 잔뜩 달라붙은 이끼들. ⓒ 정판수

그런데…, 재작년 태풍 매미로 하여 산사태가 나면서 계곡 물길이 막히자 지난 여름부터 하상(河床 : 개울 바닥) 정리를 하려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 뒤 굴착기와 트럭이 드나드는 건 보았지만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오늘 찾은 것이다.

그런데…. 물이, 물이 아니었다. 내가 예전 보았던 그 물인가 하여 다시 보아도 그 물이 아니었다. 하상 정리는 잘 돼 있었다. 석축을 쌓고, 화강암으로 물길도 만들고, 폭포 형태도 갖추어져 멋있어 보였다. 그러나 겉만 멋있을 뿐 물은 전혀 예전의 물이 아니었다.


a 이 계절에 개구리알을 보면 반가울 텐데 서글픔이 이는 건 계곡 물이 흐르지 않아 고인 물웅덩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이 계절에 개구리알을 보면 반가울 텐데 서글픔이 이는 건 계곡 물이 흐르지 않아 고인 물웅덩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 정판수

세상에…. 물이 흘러가는 개울 바위마다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물웅덩이도 군데군데 생겨 썩어가고 있었다. 물빛은 빛깔을 잃고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장마와 폭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려고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계곡을 죽여 놓은 것이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썩어가고 있었다. 세상에 물웅덩이라니…. 흐르는 물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얼핏 보니 개구리알도 보인다. 개구리알이 있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개구리알은 흘러내리는 계곡물에 있어선 될 게 아니다.

토목에는 문외한이지만 그 깨끗한 물을 살리면서 하상을 정리할 수는 없었을까. 이끼가 끼지 않는 상태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물빛이 아닌 누런빛이 흘러내리지 않게 할 수는 없었을까. 물고기들이 오르내릴 수 있도록 물길을 내주며 만들 수는 없었을까.

a 아직도 굴착기가 계곡을 드나들고 있다. 당분간 아랫마을에는 흙탕물만 내려갈 것이다.

아직도 굴착기가 계곡을 드나들고 있다. 당분간 아랫마을에는 흙탕물만 내려갈 것이다. ⓒ 정판수

내려오는 길에 자꾸만 뒤돌아다 보이는데 다시 저 아래서 굴착기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내리뜨려 아래를 보니 개울에 굴착기 한 대가 들어와 삽질을 한다. 거기는 석축을 쌓을 곳은 아니기에 염려가 덜 되지만, 저기서 일으킨 흙탕물이 다시 아랫마을까지 이르는 물길을 한참 동안 더럽혀 놓을 것이다.

물도 살리고 폭우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겁나면 "까짓것" 외치라는  80대 외할머니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마지막 대사 외치자 모든 관객이 손 내밀어... 뭉클"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