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만능주의 청산, U턴 시도한 최초의 정부"

[인터뷰 ②]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

등록 2007.03.05 08:32수정 2007.03.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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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 황방열·김종철 기자
- 사진 : 남소연 기자
- 동영상 : 문경미 기자


a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 4년 경제지표만 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4년 평균 경제성장률이 4.2%, 작년엔 5% 성장을 이뤘다. 물가도 2%대, 1인당 국민소득도 환율 영향이 있긴 하지만 올해 2만불까지 갈 것 같다. 대신 경제 성장의 속도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수출도 3000억불을 넘어서면서 호황을 누리는데도, 성장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인데.
"성장률이 4.2%인데, 처음보다는 조금씩 높아지고 있고, 나아지고 있다고 본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국민의 정부 때 남긴 3대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고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단계에 있다.

아직도 거품이 다 꺼지지 않았다. 그 같은 배경을 놓고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치 진공상태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고 성장률이 몇 퍼센트냐 이야기를 하면 올바른 판단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국민의 정부에 미안한데 (그 당시에) 왜 그리 벤처 거품을 일으켰으며, 카드, 부동산 거품을 연이어 일으켰는지 앞으로 검증을 해 갈 문제다. 참 이해하기 어렵다. 그 거품 하나만 해도 어려운데 세 개나 일으켜서..."

- 참여정부 초기의 불가피한 경제적 여건을 말씀하신 것 같다. 거품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은 없었나.
"우리가 외환위기를 굉장히 빨리 졸업했다. 조기 졸업을 축하하고 했는데 잘못됐다고 본다. 일종의 ‘빨리빨리병’이었다. 병에 걸렸을 때 근본적으로 치료해야지, 빨리 퇴원하자는 조급증으로 3대 거품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 거품 꺼지려면 수 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참여정부가 운 나쁘게도 그 시기의 5년을 보내야 하는 것이 불운이라면 불운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배경을 놓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에 대해 우선 원망스럽고 섭섭할 것이다. 정부가 밉고 대통령에 섭섭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수 있다. 서민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자들까지 참여정부 실패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 같다.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다만 참여정부가 국민들에게 다가가 호소하는 자세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국민들에게 이런 고통이 불가피하니까 좀더 참아달라고 이해를 구하고 다가가는 자세가 부족했다. 이것이 잘못한 점이다."

"과거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민생을 팽개치지 않았나"


- 이 교수께선 성장 위주보단 동반성장을 강조해왔다. 성장과 분배가 함께 가자는 것인데, 그럼에도 현 정부 들어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노 대통령도 이 같은 사실은 인정하면서, 양극화가 세계적 추세라는 점, 과거 외환위기와 가계부도 과정에서 심화된 부분이라고 했다.
"양극화를 일으킨 구조적인 원인으로 주로 이야기하는 것이 지식사회, 정보화, 정보격차가 가장 중요하고, 세계화로 인해서 부문간에 불평등이 심화될 수 있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그런 것들이 겹쳐져서 나타나는 것이고 세계화나 정보화는 세계의 물결이고 피할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양극화 예방하려면 영국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회투자를 하거나, 미국처럼 시장에 맡기는 형태가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정부가 나서서 양극화를 막기 위한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 우리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는 여태까지 시장만능주의에 빠져 민생을 내팽개치다시피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비전 2030 등 여러 고민을 해왔다. 특히 아동 빈곤대책 같은 것은 현 정부가 처음으로 만든 것이다. 그 전에 이런 대책조차 없었다. 저출산, 보육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역대 정부가 한 것이 뭐 있나? 방치하지 않았나. 참여정부 들어와서 복지부문에 많이 신경 썼는데, 예산 증가율을 보면 보육이 1등이다.


현재 우리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애 키우기가 너무 어렵다. 프랑스 같은 나라의 출산율이 올라가는 이유는 아이를 사회가 키워주겠다는 것 아닌가. 그런 정책의 전환이 있어야 저출산 고령사회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런 내용을 담은 비전 2030을 내놓아도 거의 시큰둥하고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 복지문제 등에 고민했던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현재 추진중인 한미 FTA가 예정대로 될 경우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사회안전망 등이 무력화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점이 걱정이 되긴 한다. 한미FTA 추진해 온 사람들은 그것을 별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미FTA는 대외적인 문제고, 복지 등은 내부 문제라는 것인데, 사실은 별개가 아니다. 한미FTA는 여러 경제 사회 정책에 연계돼서 악영향을 줄 것이다. 캐나다는 복지가 약한 영미형 시장국가인데, 미국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맺고 나서 복지가 더 약해졌다. 한국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가야 할 방향은 영미형 국가 아니다. 스웨덴이나 덴마크 등 한쪽으론 혁신과 성장을, 그리고 다른 쪽으론 평등과 연대를 둘 다 달성하는 성공적인 모델이 있는데 왜 그 쪽으로 가지 않는가. 절반의 실패, 절반의 성공인 영미형 모델로 가려 하는가? 한미FTA는 단순한 무역문제가 아니다. 거의 경제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영미형으로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한미FTA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본다."

"왜 성공한 모델 놔두고, 절반의 실패 쪽으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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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이 교수는 현 정부 들어 꾸준히 유럽형 경제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정책적으로도 추진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하지만 한미FTA 등을 보면 결국 정부내 시장주의자들에게, 특히 관료들에게 밀린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좀 전에 제가 U턴을 시도한 최초의 정부라고 하는 것은 시장만능주의 청산인데, 또 대미 자주외교, 권위주의 청산, 과거사 정리도 있다. 부끄러운 과거사를 덮어두고, 인혁당 사건처럼 그런 억울한 사람들을 방치한 정부는 정부가 아니다. 그래서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것이다. 나라가 나라이기 위해서 필수적인 기초 작업이다.

제발 앞으로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다' 이런 것으로 정부를 평가하지 말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후진국을 못 벗어난다. 3만불, 4만불 소득이 돼도 그렇다. 억울한 사람들이 짓밟히고 진리가 땅에 묻히는 나라는 영원히 선진국 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참여정부가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한 U턴이다.

참여정부가 U턴을 많이 시도하고 있고 상당한 성과도 있다고 본다. 다만 초기에 참신한 인물들이 여기저기 많이 포진해서 신선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었다. 지금은 그 분들이 다 떠나버리고, 관료 중심의 인적 구성으로 바뀐 것은 대단히 아쉽다."

- 관료들은 어떤가.
"전에 (참여정부) 초기 구성을 두고, '해방 후 최초로 사림파를 중용한 정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관료들은 유능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임기 동안의 실적에 의해서 평가된다고 생각하므로 단기주의에 빠지기 쉽다..

학자들은 먼 장래를 보고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인기 영합주의에서 벗어나서 제대로 정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힘을 많이 잃은 것 같다."

- 왜 힘을 잃었다고 보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다.(웃음) 먼 나중에 차차 밝혀지겠죠. 초기에는 관료, 학자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이 구름같이 모여 매일같이 대단히 생산적인 토론을 했다. 정책이 토론을 통해서 하나하나 확립됐던 시기다. 역대 정부치고 그런 정부 없었다. 그것이 5년을 가지 못했다는 점이 저로서도 아쉽다.

사실 과거사와 권위주의, 시장주의에 대한 배척 등 성과도 있었고, 사학법 개정 같은 것도 현 정부의 큰 성과이고 역사를 진전시킨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에 주택법 개정안과 연계시켜서 다시 개정한다고 하는데,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경제정책을 관료에게만 맡겨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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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첫 단추인 지난 2003년 10.29대책을 주도하는 등 부동산 정책의 핵심이었다는 평도 있다. 현재 분양가 상한제나 원가공개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것인가.
"(우리나라에) 시장만능주의의 폐단을 가장 경계해야 할 분야가 교육과 부동산이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봐라. 얼마나 많은 시장주의가 들어와서 정책을 후퇴시켰는가. 분양가 규제 풀고 이런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을 규제하면 부작용이 크다고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규제의 부작용보다는 규제를 풀어서 생기는 부작용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아파트)분양 원가 공개도 필요하다. 우리처럼 분양가 자체가 불투명하고 폭리를 취하는 구조 아래에선 원가를 공개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시장 원리와 배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부동산 버블 붕괴에 대한 이야기들도 여전하다.
"거품이 있다.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단, 거품이 너무 빠르게 붕괴되는 것은 좋지 않다. 일본이 10년동안 장기 침체 겪지 않았나. 부동산 투기를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일본을 보면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역대 정부의 소위 경제관료들이 눈 앞의 유혹에 넘어가서 수없는 잘못을 저질르지 않았나. 경제 정책을 경제 관료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부동산 버블 붕괴는 피해야 하지만, 붕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지난 4년동안 시행착오 끝에 부동산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가격이 서서히 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라고 본다. 정부는 한시도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고 주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투기라는 고질병이 재발할 지도 모른다."

- 종합부동산세 등이 도입되면서 세금 폭탄 등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하고, 일부 규제 완화도 주장하고 있는데.
"부동산 조세는 보유세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하루 아침에 올리면, 조세 저항이 크니까 서서히 예고하고 올려나갈 수 밖에 없다. 10년 뒤 쯤 되면 그것(보유세)이 가장 중요한 투기 억제 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은 양도소득세, 개발이익환수, 분양가상한제, 원가공개 등 여러 보완 대책이 필요하고 먼 나중에 규제 필요성이 줄어들면 그 때 가서 판단하면 된다."

- 다음 정부의 성격에 따라 부동산 대책이 달라질 수 있지 않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진보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참여정부의 정책을)그대로 계승 하겠지만, 보수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시장주의로 선회할텐데, 국민들에게 불행이다. 그땐 실패가 아닌 참화가 될 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국익 위해 한미FTA 그만둬야"

- 한미FTA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다. 다음달 8차협상이 있긴 한데, 벌써부터 일부에선 협정체결 서명식을 어디서 할지 이야기 나올 정도다. 어떻게 평가하는지.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 언론을 통해 7차까지 나온 내용을 본 느낌은 미국이 좀처럼 양보를 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많은 양보를 했다. 이대로 간다면 거의 미국이 양보 않는 협정이 될 텐데, 얻을 것은 적고 부작용은 많은 그런 FTA가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냉정하게 바둑판을 잘 살펴보고 이 바둑을 그만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불리한 빅딜로 가는 것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 대통령이 결정을 하면, 그만둘 수도 있지 않나.
"그렇다. 상대방이 투자자 정부 제소나, 무역구제, 개성공단이라든지 중요한 문제에서 한치도 양보를 안하고 있는데, 그것을 예상하고 한미FTA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국익을 위해서 FTA 협상을 시작했듯이 1년 협상 지난 뒤 냉정히 판단해서 국익에 도움 안되면 그만두는 게 국익이다."

- 참여정부는 시장만능주의에서 이탈하려는 정부라고 했는데, 한미 FTA는 그렇지 않다. 왜 이런 상황이 온 건가.
"저도 궁금하다(웃음). 제가 나오고 난 뒤의 일이라서. 제가 나올 무렵에 대연정 이야기가 나왔고, 그 뒤 한미FTA가 나왔는데, 이 두 가지는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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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남소연

- 공직에 있을 때 관료, 시장주의자들의 네트워크가 강력하다고 느낀 적 없나.
"때로 느꼈다.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이 과거에는 국가개입주의의 첨병이었다. 그게 박정희 체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분들이 미국 갔다와서는 시장주의의 전도사로 변신하는데, 저는 둘 다 잘못됐다고 본다. 과거의 국가개입주의, 관치경제도 잘못이고 지금의 시장주의도 잘못이다. 정답은 그 중간에 있다. 시장과 국가의 적절한 조화, 이것이 옳다고 본다."

- 노 대통령과는 처음에 어떻게 만났나.
"2002년 8월에 처음 만났다. 당시 노무현 후보 인기가 바닥이었는데, 그 캠프에 있던 어떤 교수가 '왔던 교수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힘이 다 빠져 어렵다'고 했다. 무심코 '참 노무현이라는 정치인 좋아하는데 안 됐다'고 했더니, 도와달라 해서 일하게 됐다.

노 대통령은 대선 전에 딱 3번 만났다. 개인적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깨끗하고 개혁적인 정치인으로 호감을 갖고 있었다. 저를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이라는 자리에 중용해 주셨는데…. 중국 진나라의 협객 예양은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士爲知己者死)고 했는데 제가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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