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SHE)! 10대 레즈비언들과의 밀담

10대 여고생에게서 들어본 '동성애자로 살아간다는 것'

등록 2007.03.02 20:32수정 2007.03.0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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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신들을 '레즈비언'이라 밝힌 4명의 10대 여고생. 이들도 여느 10대 여고생과 다를바 없는 해맑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레즈비언'이라 밝힌 4명의 10대 여고생. 이들도 여느 10대 여고생과 다를바 없는 해맑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이명익

“우리 인터뷰 끝나고 노래방이나 포켓볼 치러가자. 아니면, 영화 보러 갈래? 아하하하하.”

이렇게 밝게 웃고 떠드는 이들의 모습은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여느 10대 여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들이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異性)’에게서 느끼는 사랑(愛)이라는 감정을 ‘동성(同性)’에게서 느낀다는 것.

자신들을 ‘레즈비언’이라 밝힌 4명의 10대 여고생에게서 베일에 싸인 그들의 문화와 우리나라 현 상황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지난 2월 10일 만나서 들어봤다.

@BRI@대중문화 콘텐츠로 ‘동성애코드’ 확산

지난해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동성애코드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요즘 광고와 공연, 영화 등 곳곳에서 동성애를 암시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2005년 SK텔레콤의 ‘현대인의 생활백서’ 시리즈 중 마치 여자 친구를 대하듯 상대방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모습을 취하는 남성 커플이 등장한다. 남자 둘이 커플요금제에 가입한다는 내용의 이 광고는 ‘동성커플’을 활용함으로써 동성애를 부각시킨 최초의 광고였다. 스카이 광고는 한층 강도가 높다. 레슬링을 하는 두 명의 남자 선수의 모습을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삽입해 마치 동성애자의 애정행각처럼 묘사했다.

처음부터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에서 지금처럼 동성애코드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0년 한 인터넷쇼핑몰 포털 광고에서 게이코드를 활용했을 때 심의에 걸린 사례로 미루어 그 당시엔 ‘동성애’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리는 분위기였음을 보여준다. 가장 보수적인 장르라는 광고에까지 동성애 코드가 확산되기까지는 5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이정아 광고학 박사는 “각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동성애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인식이 감소된 것이 사실이다. 요즈음 동성애를 소재로 한 광고가 많이 등장하는 원인 또한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표현방식이 간접적이지만 유럽 등의 서구국가에서는 그 표현수위가 더욱 높고, 적나라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고 외에도 뮤지컬 <렌트> <프로듀서스>, 영화 <후회하지 않아> <주홍글씨>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천하장사 마돈나> <로드무비>, 뮤직비디오 반디의 <여자를 사랑합니다> 등 동성애를 소재로 한 문화 상품들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전방위로 퍼지고 있다.


아무리 동성애가 공공연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곤 하지만, 정작 동성애자들조차 가슴 위의 주홍글씨가 부담스러운 탓인지 그들만의 은밀한 커뮤니케이션을 원하고 있다. 우리나라엔 여전히 동성애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동성애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a 동성애를 주제로한 오리온 '이구동성' CF의 한 장면

동성애를 주제로한 오리온 '이구동성' CF의 한 장면 ⓒ 오리온 이구동성 제공

범죄 아니지만 시선 의식돼

이날 만난 4명의 10대 여고생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친구의 소개로 서로를 알게 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19살의 여고생들이었다. 이들은 소위 우리들이 말하는 ‘레즈비언’이다.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겉모습으로는 보통의 10대 여고생과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막연히 ‘레즈비언’이라 하면 짧은 커트 머리에 힙합 스타일의 옷을 입고, 피어싱을 잔뜩 한 채, 체인으로 장식된 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모습은 달랐다. 다나(예명)는 여성들 사이에 필수품이 되어버린 부츠와 짧은 핫팬츠 차림이었고, 쪼(예명)는 짧은 파마머리에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히동(예명)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있었고, 다나의 애인인 뵤(예명)는 약간의 보이쉬한 면을 갖고 있긴 했지만 상상 속 레즈비언들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평범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숨겨 친구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보다 당당히 밝히는 편이 낫다는 뵤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커밍아웃(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을 한 상태다.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남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또 커밍아웃을 하지 않더라도 은연중에 다들 알고 있는데, 숨기는 것이 오히려 우습다고 생각해요”라며 “처음 레즈비언임을 밝혔을 때 친구들이 놀라긴 했지만 이해한다는 반응들을 보였어요”라고 덧붙이며 커밍아웃 후 친구에게 고백 비슷한 말을 듣기도 한 경험이 있다고 웃어보였다.

반면 다나는 친한 친구 몇 명에게는 이야기했지만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그 사회에서 생매장 당하기로 마음먹는 것과 같다며 커밍아웃에의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또 주변 친구들에게 애인의 이름을 남자이름으로 바꿔 이야기하곤 한다고 밝혔다. “커밍아웃을 한 친구와는 편하게 지내긴 해요. 그러나 조금씩 멀어지는 것이 느껴져 요샌 잘 밝히지 않아요.”

커밍아웃 후 친구와 멀어졌다는 다나의 의견에 쪼도 동조했다. 쪼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고등학교 입학 후 자신이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레즈비언임을 밝혔다. 친구는 “너 그럴 것 같앴어. 이야기해줘서 고마워”라며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오랜 시간 함께해 왔던 친구이기에 굉장히 친하지만 싸우기도 많이 싸웠단다. 이전에는 그냥 넘어갔을 사소한 일도 커밍아웃 후에는 “가까이 오지마. 더러워”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말하는 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 어린 나이에 받았을 상처의 크기가 짐작이 됐다. 뵤도 이에 대해 커밍아웃 후에는 조그마한 다툼에도 ‘너 여자 좋아하잖아’라는 말이 제일 먼저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며 거들었다.

히동은 고등학교 입학 후 짧았던 머리카락을 길러 오고 있다. “여중을 나왔거든요. 그래서 주위에 여자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여자를 좋아하고 있는 제가 이상하다고 전혀 느끼지 못했죠. 학교 친구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사귀고 있냐’라고 묻고, 선생님들 또한 ‘몇 반에 누구한테 연애편지 쓰고 있냐’며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더라고요. 여자애가 짧은 커트머리를 하고 있으니까 ‘쟤 레즈 아니야?’라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부터는 계속 머리카락을 기르고 있어요.”

a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 이명익

“색안경 벗고 봐 주세요”

일반적으로 레즈비언은 남성적 성향이 강한 ‘부치’와 여성적 성향이 강한 ‘펨’으로 나뉘어진다. 이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커플이 ‘부치+펨’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많으나 꼭 부치와 펨이 만나야 되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마음이 맞아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자신과 다른 반대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뿐이지 굳이 반대 성향의 사람을 만나려고 하지는 않는단다.

또 일반인들이 이성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레즈비언들도 전형적인 여성적인 상을 좋아하는 사람과 남성적인 여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자기 성향에 충실하려 했으나 요즈음은 ‘전천’(중도적 성향)이 인기가 많고 딱히 성향을 나누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쪼는 우리나라의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호주, 프랑스 등의 국가에 비해 비개방적이에요. 물론 성에 대한 부분도 그렇죠. 외국의 TV프로그램들을 보면 게이나 레즈비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성간의 사랑만을 아름답게 묘사하곤 해요. 물론 우리들을 그들과 ‘똑같다’까지의 눈으로 바라봐주길 원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냥 우리 같은 사람들(동성애자)이 있고, ‘얘네들은 이렇구나’라는 것까지만이라도 알아줬으면 해요”라며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레즈비언 문제도 여성운동의 일환으로 함께 병행하면 언젠가는 동성애 문화도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거잖아요. 문제될 것 있나요”라고 자신의 주관을 분명히 밝히는 쪼의 모습에서 10대의 당당함도 엿볼 수 있었다.

뵤는 포르노 영화로 인해 일반인들이 동성애 문화를 더럽고 음란하며 변태적인 것으로 보게 된다고 말한다. “포르노 영화를 보고 우리들을 음란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포르노에서 본 잣대로 동성애자들을 평가, 폄하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일반인들 중에도 섹스를 밝히는 사람이 있듯 동성애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우리들도 소수지만 그 소수 안의 더 작은 소수만을 보고 우리 전체(동성애자)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일반인들이 이성에게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동성에게서 느끼는 것뿐이고, 자연스런 끌림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포르노 영화 속 동성 간의 사랑은 이성간의 사랑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과 달리, 서로의 육체적인 쾌락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써 그들 내면의 진실한 사랑은 도외시하고, 보는 이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켜주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음성적 미디어와 편향된 시각으로 보도되는 수많은 뉴스, 방송 등은 우리의 사고를 한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경직시키고 있다. 이렇게 자리잡아간 고정관념은 태어날 때부터 동성을 사랑하도록 운명 지어진 이들을 우리 주변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도록 하고 있다.

다나는 현재 가까운 사람 외에는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리고 있지 않다. 현재 애인도 있고, 그 동안 여성만을 사귀어 왔지만 같은 동성을 사귄다는 것이 떳떳하지는 않단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 두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편한 동성친구랑 어깨동무 할 때는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요. 그런데 애인하고의 어깨동무나 포옹은 그 느낌과 감정부터 다르잖아요.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에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포옹을 할 때도 다독거려 주는 것처럼 어깨를 토닥이곤 해요”라는 말 속에서 그간 일반인들에게 받아온 따가운 눈총이 느껴지는 듯했다.

독신주의도 멸시받았을 때 있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이들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도록 많은 이들이 축복해주는 큰 행사이며 의식이다. 이에 동성애자들에게 결혼이란 더욱 크고 높은 관문이지 않을 수 없다.

다나는 결혼하고 싶은 사람(레즈비언)이 생기면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게이커플과 혼인신고를 하는 방법을 생각해왔다. 게이커플과 법적으로 혼인신고를 한 후 살림은 각자의 커플과 차린다는 발상이다. 이에 대해 쪼는 반박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부모님께도 기꺼이 자신이 여성을 사랑하는 레즈비언임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겉으로만 남자를 사랑하는 척, 결혼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옛날에는 독신주의도 ‘여자가 기가 쎄서 그렇다’며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있었잖아요. 독신주의자들이 사회에 맞섰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가 있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동성결혼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우리들(동성애자)까지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커녕 여기서 멈춰버리고 말 거예요. 동성결혼도 충분히 사회로 끌어낼 수 있어요. 아무런 노력 없이 사람들이 인정해주기만을 바라는 건 욕심이에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에 대해 알리는 운동이 필요해요. 덴마크, 프랑스 같은 나라는 이미 동성결혼이 합법화됐잖아요.”

동성애자(이반)가 이성애자(일반)가 되는 것을 ‘탈반’이라 부른다. 과거에 탈반들은 이반들 사이에서 질타를 받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은 많은 수의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원인으로 우리 사회에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풍토가 뿌리박힌 것을 꼽았다.

히동은 “상당수의 레즈비언들이 지금은 여자를 사랑해서 사귀고 있더라도 나중에는 남자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꿈들을 품고 있어요. 우리가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종종 ‘여자를 사랑해요. 그렇지만 결혼은 남자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이상한 건가요?’라는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곤 해요. 우리 힘으로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에 다들 이런 생각들을 품고 있어요. 솔직히 저도 자신 없구요”라고 말해 앞으로 이들이 헤쳐 나가야할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 짐작케 했다.

“우리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사람이에요. 그들과 똑같이 감정을 갖고 있고 감정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문제될 것 있나요. 우리를 볼 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려고만 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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