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댈 곳은 우리 둘 뿐, 신혼으로 돌아갔네

[중국 장쑤성 여행기 ③] 중국까지 30시간, 배를 타다

등록 2007.03.05 11:20수정 2007.03.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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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며 배를 선택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어요. 밤바다, 별, 달,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꿈꾸었지만 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갑판에 나갔더니 거센 바람이 덮쳐왔어요.
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며 배를 선택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어요. 밤바다, 별, 달,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꿈꾸었지만 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갑판에 나갔더니 거센 바람이 덮쳐왔어요.이승숙
한 삼십 년 쯤 전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았다. 길도 좋지 않았고 차도 많지 않았다. 그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청도에서 서울까지 가자면 근 1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운임이 싼 비둘기호를 타고 청도역을 출발하면 근 12시간이 걸려야 서울역에 닿았다고 한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다.

엄마랑 외가 식구들이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서울 사는 이모가 환갑잔치를 하게 되어서 모두 서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외삼촌 세 분에 외숙모 세 분, 그리고 우리 엄마와 부산 사는 이모까지 해서 대부대가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서울은 먼 곳이었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또 열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야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워낙 먼 길이니 빠른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좋았을 텐데 촌 양반들이라서 한 푼이라도 아껴볼 속셈에 비둘기호를 타고 갔단다.


헐은 기차 타고 서울 갔다가 지업어 죽을 뻔 했네

"뭐 한다꼬 비싼 기차 탈끼고? 그양 헐은(값싼) 기차로 가입시다.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가면 시간도 잘 갈 낀데 비싼 기차 탈 일 있능교?"

헐은 기차, 즉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까지 가자면 열차가 온갖 역마다 다 섰다. 그래서 근 12시간이 걸려야 겨우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시간 동안 기차 타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몰랐던 그들은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 나들이 길에 나섰다.

처음엔 재미가 있었단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서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이 배겨서 견딜 수가 없더란다. 그래서 돈 아끼기 위해서 비둘기호 타자고 했던 일을 후회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어른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지업어서(지겨워서) 죽을 뻔 했다. 서울 갔디이만 머리가 다 어지럽더라."

배 안 곳곳에는 커다란 짐가방들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5층과 6층으로 내려갈수록 짐이 더 많았습니다.
배 안 곳곳에는 커다란 짐가방들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5층과 6층으로 내려갈수록 짐이 더 많았습니다.이승숙
우리도 그랬다. 비행기표값 얼마를 아껴볼 속셈으로 배를 탔지만 중국까지 근 30시간을 배 안에서 보내자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볼 만한 책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안 되었다. 말벗이라도 많으면 그나마 시간이 잘 갔겠지만 달랑 우리 부부만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우리 둘은 그저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배 탐험을 떠나보기로 했다. 도대체 이렇게 큰 배는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둘이서 손잡고 배 탐험을 나섰다.

배는 1층에서 6층까지 있었다. 그런데 육지와는 달리 맨 위 꼭대기가 1층이었다. 여객들이 쉬는 선실은 2층부터 6층까지였고 그 밑은 기관실인지 출입이 제한되었다. 2층에서 4층까지는 밝고 깨끗했지만 그 밑의 층들은 조금 어두웠다.

각 층마다 복도가 2개씩 양 옆으로 나 있었다. 좁은 복도를 가운데로 해서 양 옆으로 선실들이 이어져 있었는데 대부분 2인실 아니면 4인실이었다.

우리가 머물렀던 방은 3층에 있었다. 방은 깨끗하고 아늑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옷장 겸 수납장이 있고 맞은편엔 욕실이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창문 앞에는 양 옆으로 해서 트윈 베드가 놓여 있었다.

'츄리닝'에 '쓰레빠'가 배 안에선 딱이네

침대머리 맡 바닥에 고무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그 슬리퍼는 그야말로 '쓰레빠'였다. 슬리퍼가 아니고 '쓰레빠'라고 불러야 제 격일 듯한 그런 고무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30시간 동안 배 안에서 뒹굴거릴려면 '츄리닝' 바지에 고무 '쓰레빠'가 제격일 것 같았다. 그래서 주저없이 신발을 벗고 '쓰레빠'로 갈아 신었다.

'쓰레빠'에 '츄리닝' 바지를 입고 어슬렁어슬렁 배 탐험을 나서 보았다. 문을 밀고 방 밖으로 나가보니 기다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방문이 다 꼭꼭 닫혀 있었지만 혹 가다가 하나씩 문이 열려있는 방이 보였다. 그런 방이 보이면 안 보는 척 하면서 슬쩍 훔쳐보았다.

곳곳마다 다 빨래를 널어놨습니다. 고무줄이 늘어진 누런 팬티도 보이고 내복도 보입니다.
곳곳마다 다 빨래를 널어놨습니다. 고무줄이 늘어진 누런 팬티도 보이고 내복도 보입니다.이승숙
2층 침대가 놓여있는 좁은 방 안에는 내복 바람인 사람들이 침대 위에 편하게 기대거나 누워 있었다. 그들은 내복 바람으로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말소리를 들어보니 중국 사람들이었다.

복도의 양 옆으로는 배가 흔들릴 때 잡고 다닐 수 있도록 기다랗게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다란 손잡이에는 예외 없이 빨래가 널려 있는 것이었다. 빨래들도 참 희한했다. 수건에 양말짝이라면 그런대로 봐줄만 했지만 내복에 속 팬티까지 널려있는 모습을 보곤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사람들은 빨래를 길에다 넌다더니 진짜로 밖에다 널어놨네. 하이고야 팬티까지 다 널어놨네."
"여보, 저거 좀 봐. 빨간 내복이다 빨간 내복."

중국 사람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더니만 진짜로 그런 모양이었다. 우리 같으면 어디 속옷을 남에게 보인다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자신의 내밀한 속옷들을 밖에다 널어놓고 말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 안은 중국이었고 그리고 우리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조용히 지나치며 바라만 봤다.

그런데 우리도 남 흉 볼 처지가 아니었다. '츄리닝'에 '쓰레빠' 차림으로 우리도 어슬렁 어슬렁 배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맨 위 꼭대기 층(1층)에는 야외 풀장이 있었다. 여름이면 썬텐을 하면서 야외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작은 노천 수영장이 있었다. 그리고 운동을 할 수 있는 헬스장도 있었다. 하지만 몇 개 있는 운동기구들은 작동이 잘 되지 않았다. 또 낡아보여서 운동하기가 좀 겁이 났다.

그 외에 사우나, 도서관, 매점 등등 여러 편의 시설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이름뿐인 곳으로 이용하기에는 적당하지가 않아 보였다.

배 안에서 먹은 아침 식사. 흰죽이 수월하게 넘어가던군요.
배 안에서 먹은 아침 식사. 흰죽이 수월하게 넘어가던군요.이승숙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입이 즐거워야 구경도 즐거운 법이다. 그래서 식당이 있나 찾아보았다. 식당은 중식당과 한식당이 있었다. 한식당은 밤늦게까지 운영하였지만 중식당은 정해진 시간에만 문을 열었다. 그 시간을 놓쳐버리면 중식당에선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순한 양으로 돌아간 아내, 남편 품으로 파고들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아서 속이 니글거린다는 거였다. 또 음식마다 이상한 향 냄새가 나서 우리 입맛에 안 맞는 음식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고추장을 가지고 가라고 그랬다.

"고추장 가지고 가세요. 튜브에 들어있는 고추장도 있는데 그거 사가지고 가세요. 속이 느끼할 때 고추장 넣고 밥 한 숟갈 비벼먹으면 싹 다 내려가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고추장을 챙기지 않았다. 이왕 중국으로 여행가는 길인데 철저하게 중국식으로만 먹어보자고 생각했다. 음식이 다소 입에 안 맞더라도 그거 자체도 즐길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중식당을 찾았는데 영업이 끝났다는 거였다. 할 수 없이 한국 음식을 파는 식당에 가서 맥주 두어 병과 간단한 안주거리만 하나 사서 빈 속을 달랬다.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늘 청춘인가 보다. 한 잔 술에 가슴이 짜르르르 녹아온다. 결혼하고 애 둘 낳고 키우다보니 어느새 우리 나이 마흔이 넘어 오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때는 우리도 청춘이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밤 깊도록 골목을 헤매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순한 양 같던 마누라는 마흔 고개 넘어서자 고집 센 황소가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의존하던 곱디곱던 아내가 어느새 목소리가 커져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 이 배 안에서는 그 옛날 발그레하게 두 뺨 물들이던 어린 신부처럼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남편도 손아귀에 은근하게 힘을 주면서 아내의 손을 꼭 잡아본다.

밤은 자꾸만 깊어갔다. 별도 달도 다 잠이 들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배는 바다 위를 조용히 미끄러져 나아갔다. 신혼으로 돌아간 아내와 남편도 심연과도 같은 깊은 어둠 속으로 조용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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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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