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여행을 꿈꾸며 배를 선택했는데 그럴 틈이 없었어요. 밤바다, 별, 달,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꿈꾸었지만 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어요. 갑판에 나갔더니 거센 바람이 덮쳐왔어요.이승숙
한 삼십 년 쯤 전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았다. 길도 좋지 않았고 차도 많지 않았다. 그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경북 청도에서 서울까지 가자면 근 12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운임이 싼 비둘기호를 타고 청도역을 출발하면 근 12시간이 걸려야 서울역에 닿았다고 한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다.
엄마랑 외가 식구들이 서울에 갈 일이 생겼다. 서울 사는 이모가 환갑잔치를 하게 되어서 모두 서울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외삼촌 세 분에 외숙모 세 분, 그리고 우리 엄마와 부산 사는 이모까지 해서 대부대가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서울은 먼 곳이었다. 한 번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또 열차를 타고 하루 종일 가야 서울까지 갈 수 있었다. 워낙 먼 길이니 빠른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좋았을 텐데 촌 양반들이라서 한 푼이라도 아껴볼 속셈에 비둘기호를 타고 갔단다.
헐은 기차 타고 서울 갔다가 지업어 죽을 뻔 했네
"뭐 한다꼬 비싼 기차 탈끼고? 그양 헐은(값싼) 기차로 가입시다.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가면 시간도 잘 갈 낀데 비싼 기차 탈 일 있능교?"
헐은 기차, 즉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까지 가자면 열차가 온갖 역마다 다 섰다. 그래서 근 12시간이 걸려야 겨우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시간 동안 기차 타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몰랐던 그들은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 나들이 길에 나섰다.
처음엔 재미가 있었단다. 하지만 얼마 안 지나서 허리도 아프고 온 몸이 배겨서 견딜 수가 없더란다. 그래서 돈 아끼기 위해서 비둘기호 타자고 했던 일을 후회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어른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때 이야기를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곤 했다.
"아이고 말도 마라. 지업어서(지겨워서) 죽을 뻔 했다. 서울 갔디이만 머리가 다 어지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