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명칭, 18C 이전 한국 19C 일본 유리

18C 이전 조사 필요, 일본 외무성 자료는 결국 한국에 유리

등록 2007.03.03 13:00수정 2007.03.0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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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표기와 관련한 일본측 주장을 극복하려면, 일단 일본측 주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앞으로 주기적으로 일본측 주장을 하나씩 소개하고 그 문제점을 분석해 보기로 한다.<기자 주>

a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일본해 호칭문제’ 코너.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일본해 호칭문제’ 코너.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BRI@한·일 중간해역의 명칭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이 첨예하다. 한국은 동해(East Sea), 일본은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압도적 우세를 누리고 있다.

양국이 예전에 내부적으로 어떤 명칭을 썼든 간에, 문제의 핵심은 제3자인 국제사회가 과거에 어떤 명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는가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 고지도의 동해 표기를 내세우는 것은 정황증거의 제출은 될 수 있을지언정 문제 해결을 위한 직접 증거의 제출은 될 수 없다.

일본측 홍보 전략도, 국제사회가 과거부터 어떤 명칭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는가를 겨냥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일본해 호칭문제'라는 코너에서 강조되듯이, 일본측 주장은 한마디로 "일본해라는 명칭은 19세기 초엽부터 유럽의 지도에서 정착되었다"라는 것이다.

이 점을 입증하기 위하여 최근 일본측이 내세우는 자료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고지도 조사 결과다. 일본 외무성은 2003년 10월~2004년 1월 기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16~19세기 지도 1495매 중에서 한·일 중간해역의 명칭이 표기된 407매를 대상으로 조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는 <표 1>과 같다.

a <표 1> 일본 외무성의 프랑스 국립도서관 고지도 조사 결과.

<표 1> 일본 외무성의 프랑스 국립도서관 고지도 조사 결과. ⓒ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표 1>에서 지도 합계가 410매로 표기된 것은 기술상의 이유 때문이다. 조선해·일본해로 병기된 지도 3매를 각각 조선해 3매, 일본해 3매로 분류하는 등의 기술적 처리 때문에 전체 매수가 실제 매수보다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여덟 번째 칸에 '불명'(不明)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16~19세기의 어느 시점에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른쪽의 17C·18C·19C는 각각의 세기에서 정확히 어느 시점에 발행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다.


또 두 번째 줄에 있는 동양해(東洋海) 표현과 관련하여서는 양국 간에 대립이 있다. 고지도에 표기된 'Oriental'이라는 표현을 놓고 한국측은 '동'(東)이라고 번역한 데 반해, 일본측은 '동양'(東洋)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oriental을 '동양'으로 번역하는 데에는 논리적 문제점이 있다. oriental 자체에는 바다(洋)라는 의미가 없으므로, 그것을 동양(東洋)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서양인들은 '동쪽 세계'를 가리키는 뜻에서 oriental을 사용했는데, 일본인들이 바다(洋)라는 의미를 추가적으로 집어넣어 동양이라고 번역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양(洋)·해(海)에는 바다(洋와 海)의 의미가 이중적으로 들어가 있으므로, 이를 동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 모른다.


그리고 네 번째 줄에 있는 기타(その他)에는 '중국해' 등이 포함되어 있다.

위의 <표 1>을 근거로 일본 외무성은 "16~19세기에 유럽에서 발행된 지도 중에서 62.0%가 일본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 비해, 조선해를 사용한 것은 16.6%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19세기 초반부터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일본해라는 명칭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 일본측 주장의 결론이다.

그러나 통계를 분석할 때에는 단순히 통계수치만 볼 것이 아니라, 통계 속에 내포된 역사적 의미도 함께 추출해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통계 분석 결과를 표로 나타낼 때에는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표를 공정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통계를 다루는 학자들 사이에서 "통계는 얼마든지 장난을 칠 수 있는 것"이라는 속설이 회자되기도 한다. 또한 외무성이 제시한 위의 표에는 논리적인 문제점도 담겨 있다. 그러한 점들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위 <표 1>을 논리적으로 재정비해 보자. 표의 왼쪽에서 1601~1650년 및 1651~1700년이라는 항목을 설정해 놓고서는 오른쪽에 또 다시 17C라는 항목을 설정한 것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왼쪽의 두 항목인 1601~1650년 및 1651~1700년을 17C로 묶으면 오른쪽에 17C라는 항목을 별도로 둘 필요가 없다. 17C의 오른쪽에 있는 18C·19C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점들을 반영하여 <표 1>을 합리적으로 교정하면 <표 2>와 같다.

a <표 2>. 이 표는 <표 1>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한 것이다.

<표 2>. 이 표는 <표 1>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한 것이다. ⓒ 김종성

<표 1>에 비해 보다 간명해진 <표 2>를 보면, 16세기 후반만 해도 조선해·기타(중국해)의 표현만 사용되었고,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한 유럽 지도는 전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조선해가 일본해에 비해 유래가 더 깊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해라는 명칭이 전체 410매 중에서 254매로서 62.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해로 표기된 254매의 대부분인 206매가 19세기 때의 것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세기에 갑자기 일본해 표기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놓고 볼 때, 두 가지 정도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9세기 초반은 기본적으로 서세동점의 시기였다. 서양세력이 동아시아로 대대적으로 진출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서양과 가장 많이 접촉한 나라는 중국이고 그 다음이 일본이었다. 조선의 대(對)서양 접촉은 중국·일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편이었다. 일본도 이 당시 조선처럼 쇄국을 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네덜란드 등과 교류하고 있었으므로 조선에 비해 자국의 입장을 홍보할 기회가 더 많았다.

또 19세기 후반은 일본이 서양자본주의를 모방하여 서세동점에 적극 편승하던 시기였다. 1874년 대만 침공 이후의 일본은 사실상 서양국가나 마찬가지였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조선과 일본 중에서 어느 쪽이 서양을 상대로 자국의 입장을 홍보하기가 더 유리했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19세기 유럽 지도에서 일본해 표기가 급증한 것은 조선에 비해 일본이 자국의 입장을 홍보할 기회가 더 많았던 데다가 19세기 후반에는 일본도 아예 서세동점에 편승하여 대외침략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 자국의 입장을 홍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던 그 시기에 일본은 서양 편에 서서 조선·청나라를 침탈하고 있었으며,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일본은 일본해라는 표현을 국제사회에 홍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송의 일방이 병원에 누워 있는 사이에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증거를 제출했다면, 판사로서는 그 일방의 증거 제출도 기다려주는 게 공정한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한국은 그러한 공정한 기회를 받지 못했다.

그리고 일본측이 제시한 자료 속에서 일본측의 논리적 약점을 도출할 수 있다. 일본측은 19세기 초반에 일본해라는 명칭이 국제적으로 확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19세기 초반에 일본해가 확립되었는가를 파악하려면, 기본적으로 18세기 이전까지 축적된 상황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19세기 초반에 '일본해가 보편적 명칭인가?' 여부를 판단하려면, 19세기 초반에 눈앞에서 진행되는 상황이 아닌 18세기까지의 상황을 자료로 했을 것이라고 이해하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위의 표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6세기까지만 해도 일본해라는 명칭을 사용한 유럽 국가는 없었다. 그리고 16~18세기의 표기 실태만 따로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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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성

<표 3>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의 고지도 중에서 단지 23.2%만이 일본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에 비해, 조선해 표기는 33.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한국측 주장대로 동양해를 동해에 포함시키면 조선해+동해의 비율이 48.1%로 과반수에 육박한다. 이는 18세기까지는 한국측에 유리한 표현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세기 이후의 국제정세 변화에 기인하여 일본측이 자국의 입장을 홍보할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에, 18세기까지의 상황이 19세기 들어 갑자기 역전된 것이다.

서양의 동아시아 침탈에 일본이 편승하는 과정에서 일본해 표현이 확산되었다는 점이 일본 외무성 자료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일본 외무성이 내세우는 자료를 살펴보아도, 일본해가 18세기까지는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일본 외무성은 통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도된 결과를 도출하였다. 하지만, 통계를 합리적으로 해석하면 위와 같이 오히려 한국측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 그러므로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에서 홍보하고 있는 자료는 결국 한국을 위한 홍보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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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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