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불어라, 달집을 태워라

[사진] 만월의 기운처럼 복된 새해가 되기를

등록 2007.03.05 11:50수정 2007.03.0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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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고 풍요로운 한 해를 만들어주소서~" 흥겨운 농악이 울려퍼지고 있다.
"복되고 풍요로운 한 해를 만들어주소서~" 흥겨운 농악이 울려퍼지고 있다.김대갑

달, 그 중에서도 보름달의 이미지는 동양과 서양이 지극히 판이하다.

서양의 보름달은 광기와 음란의 달이다. 늑대인간이 출현하고 뱀파이어가 돌아다니며 각종 유령들이 최고조로 활동하는 시기이다. 반면에 동양의 달, 그 중에서도 한민족의 달은 축복과 풍요의 달이다.


정월 대보름은 새해 첫 보름날이라 설날만큼이나 의미를 가진 명절이었다. 대보름은 '상원'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한 음력 7월 15일은 중원이며 10월 15일은 하원이라고 불렀다.

대보름에 행해지는 기복 행사로는 볏가릿대 세우기, 복토 훔치기, 용알뜨기, 나무시집보내기 등이 있었다. 또한 제의와 놀이로는 쥐불놀이가 유명하며 그 외에도 사자놀이, 오광대탈놀음 등이 있었다.

달집태우기는 소밥주기나 닭울음점, 그림자점과 같은 농점의 역할을 한 제의라고 보면 된다. 달집이 다 타서 넘어질 때, 그 쓰러진 방향에 따라 그 해의 풍·흉년을 점치기도 했으며 이웃마을보다 자기네 불꽃이 더 높이 오르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던 것이다.

귀밝기술, 달착지근한 고통

"묵 좀 먹어보이소~" 잔치가 끝날 때 묵을 나눠주었다.
"묵 좀 먹어보이소~" 잔치가 끝날 때 묵을 나눠주었다.김대갑
어릴 때, 설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 온 정월 대보름은 또 하나의 명절이었다.


동그랗게 제 살집을 통통히 채운 보름달은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거울이었다. 아이들은 '쟁반같이 둥근 달'이라며 둥근 보름달 아래에서 불을 피운 깡통을 돌리며 즐거워했다. 쥐불놀이는 정월 대보름에만 허용되는 공식적인 불놀이였다. 신나고 즐거운 불놀이였다.

아침에 어머니가 해주신 오곡밥과 각종 나물을 먹으면 하루 종일 든든했다. 그러나 귀밝기술은 하나의 고역이었다. 맛도 없고 쓰기만 한 막걸리를 먹는 것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그러나 마시고 난 뒤에 입안에 감도는 달착지근한 맛에 어느새 술맛을 알게 된 엉뚱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동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공터에 모여들었다. 저마다 깡통과 나뭇조각, 성냥을 들고 밤새 돌아다니며 정월대보름을 즐겼고, 어른들은 웃으면서 불조심하라고 당부하셨다.

바닷바람이 달집 태우는 불길을 살리고

해안가 마을의 달집태우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염풍의 비릿함이 달집 사이로 시큼하게 배어 있다.

해안가 마을인지라 볏짚은 분명 다른 마을에서 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마을 근방에 있으니 쉽게 구했을 터이다. 불을 태우는 장소가 바다 근처인지라 불날 염려 없이 양껏 태울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또한 바닷바람이 수시로 불어와서 불이 더 거세게 일어난다.

대보름에는 윷놀이가 최고야~
대보름에는 윷놀이가 최고야~김대갑
마을의 청년회와 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벌어진 청사포의 달집태우기. 흥겨운 농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그들의 신명나는 놀이와 제의에 따라 달집태우기가 무사히 끝난다.

소박하게 차려진 제사상에 놓인 떡과 묵, 그리고 막걸리가 구경온 사람들에게 건네진다. 풍요로운 한 해를 바라는 마음이 구경꾼들 사이로 그림자처럼 번진다.

이제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을 상징하는 가장 큰 행사가 되었다. 한민족이 달집태우기라는 행사를 좋아하는 것은 불을 존숭하는 민중적 마음과 깊은 관계가 있다. 불은 더러운 것을 없애주는 소화의 기능과 복과 운이 거세게 일어나는 것을 상징한다.

청사포의 달집태우기. 그 불처럼 이 마을에도 복과 운이 거세게 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복과 운이 거세게 일기를. 아쉽게도 이번 달은 비 때문에 잘 볼 순 없지만 마음속에 밝게 떠오른 달을 쳐다보며 외쳐본다.

"참 달도 밝다. 우리네 마음도 저 달처럼 밝아지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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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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