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언니들이 온다

[진단] 박근혜·한명숙·강금실·심상정... 지역·연령·이념·개성 등 차이 뚜렷

등록 2007.03.05 13:52수정 2007.03.06 11:39
0
원고료로 응원
a 2007년 대선에서 약진이 눈에 띄는 여성 정치인들. 왼쪽부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명숙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2007년 대선에서 약진이 눈에 띄는 여성 정치인들. 왼쪽부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한명숙 국무총리,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 오마이뉴스 권우성·이종호·남소연


2007년 대선의 특징? 무엇보다도 여성주자들의 등장이다. 한꺼번에, 골고루, 여럿이 나왔다. 박근혜(한나라당), 한명숙(열린우리당), 심상정(민주노동당) 의원은 출마 채비를 하고 있고, '여의도 밖'에 있지만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선호도는 꾸준하다.

남성 후보들에 비해 여성 후보들의 대립각은 뚜렷하다. 지역·연령·이념·개성 등 모든 면에서 차별점이 교차한다.

이같이 다양한 스펙트럼의 여성 리더들이 등장한 배경에 대해 김민전 교수(경희대 정치학)는 "탈냉전 시대가 되면서 군사적 이슈의 비중이 낮아지고 환경·복지·교육 등 '여성적 이슈'가 등장한 세계사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최초 여성 대통령'을 위해 뛰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민주당)과 프랑스의 세골렌 루아얄(사회당)을 비롯해 지난해 전 세계 여성의원의 비율이 17% 선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그렇다.

이 외에도 미디어 선거전, 전통적 교육의 붕괴, 일하는 여성들의 증가 등 '문화적 요인'들이 여성 지도자 출현에 따른 적대감을 누그러뜨렸다.

'거부감'이 없다고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여론조사연구소(KSOI)의 작년 9월 조사에서 여성대통령의 출현에 대해 찬성(72.1%)이 반대(22.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정작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묻는 최근 조사에선 "남성을 원한다"는 응답(61%)로 여성(19.8%)보다 훨씬 높았다. 여성 대통령의 등장을 반대하진 않지만 원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귀영 연구실장은 "지지도를 통해 드러나는 여성 후보의 경쟁력이 높지 않는 것이 그 첫번째 원인일 것"이라며 "아직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성대결'로 치러질 가능성은 적다"고 전망했다. 역으로, 여성 후보들의 장점이 부각되고 남성들과 각축을 벌이는 본선 무대에서의 사정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a

[박근혜(55·대구)] 절제된 보수... 아버지 유산은 숙명?


a 1974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22살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해. 한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1974년 돌아가신 어머니의 뒤를 이어 '22살의 퍼스트레이디'가 된 해. 한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누구보다 일찍 현실 정치의 '맛'을 봤다. 일단 실적이 화려하다.

탄핵 국면에서 총선을 지휘해 원내 제2당의 자리를 따냈고, 이후 지방선거, 4번의 재보선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 7%로 떨어진 당의 지지도가 40%대에 올라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차떼기당'으로 상징되는 부패 이미지, 제왕적 총재의 수직적 소통구조를 바꿔내는 데 일정한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독일의 메르켈 총리, 미국의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만나며 야당 인사로는 드물게 '정상회담급' 외교를 펼쳤다. 아버지 밑에서 6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받은 외교적 자산이 밑바탕이 됐다.

특히 그의 '절제력'은 남성 정치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가치 평가를 논외로 한다면, 허투른 행동이 없고 말을 번복한 일이 없다. 이명박 전 시장이 최근 연이은 말실수로 구설에 오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배신과 어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게 박 전 대표의 답변이었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에 "휴전선은 괜찮나요?"라는 반응을 보인 일화는 유명하다. 지난 지방선거 유세 당시 피습을 당하고 병상에 누웠을 때도 당시 격전지를 의식, "대전은요?"라고 말해 판세를 바꿨다.

98년 정치에 입문해 누구보다 오랜 기간 현실정치의 벽에 부딪쳐 왔지만 여성이라는 편견에서 박근혜 전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캠프에선 이명박 전 시장과의 지지도 격차의 원인으로 여성이라는 장벽을 꼽았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지방을 방문하면서 면 단위 장급여관에서 '외박'을 하고, 시장통 사람들과 좀더 격의없는 접촉을 시도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애' '미혼'이라는 외피로 싸여진 신비주의 장막을 깨려는 노력이다.

'정치인 박근혜'를 관통하는 시선은 '유신의 딸'이라는 점이다. 지지층도 대구경북, 50대 이상 저학력·저소득층으로 '박정희 향수층'과 일치한다.

박 전 대표는 "부모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며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단지 혈육지정을 떠나 '역사의식'은 대통령을 꿈꾸는 지도자의 필요조건이다.

a

[한명숙(63·평양)] '뉴'와 '올드' 사이, 너무 부드러운 카리스마

a 19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될 당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35살의 한명숙 국무총리.

1979년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될 당시,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35살의 한명숙 국무총리.

초대 여성부장관, 환경부장관, 국무총리….

한명숙 총리는 이력으로만 따지면 다른 여성주자들에 비해 가장 앞선 출발점에 서 있다.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 국회의원과 관료를 지내며 지도자 수업을 받았다.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비례대표로 출발했지만 지역구 선거전에 뛰어들어 관록의 야당 정치인(홍사덕)을 꺾었다.

이렇다 할 대선주자가 뜨고 있지 않은 열린우리당에선 한 총리의 당 복귀를 고대하는 이들이 많다. 한나라당 주자들과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그의 '포트폴리오'로 인해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회자된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남편 박성준씨를 13년 동안 옥바라지를 했고, 자신은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유신독재의 피해자로,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이력을 갖췄다. 또 '1세대 페미니스트'로 우리나라 여성운동사의 산 증인이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태도로 남성들 사이에서도 호감을 얻었다. 특히 6자회담이 타결되고 남북 관계가 대선 이슈로 부상하면서 '평양 출신'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에 대해 문희상 의원은 "실향민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요소"라고 말했다. '전략통'인 민병두 의원은 정운찬·문국현·강금실·박원순 등 새로운 얼굴과 정동영·김근태·김혁규 등 과거의 얼굴 사이에 한명숙 총리가 있다고 말한다.

한 총리가 오는 7일께 이임식을 하고 당에 복귀할 예정인 점을 들어 민 의원은 “정체되어 있는 우리의 판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1차 계기"라며 "준비 정도와 권력의지에 따라 결선에 오를 수도 있고 '페이스메이커'에 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좌우 상처를 어루만지고 정반합의 '합'을 이뤄낸다면 지도자로서 뚜렷한 인상을 남길 것"이라며 통합과 화합의 리더십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정체성 부재'로 지적받기도 한다. 개혁적 행보를 해왔음에도 뚜렷한 족적으로 기억될 게 별반 없다. 10개월 총리직 수행도 노 대통령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방패 역할에 그쳤다거나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개성보다 안정감을 주는 정도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a

[강금실(50·제주)] 보랏빛의 '빈 마음', 현실 정치도 물들일까

a 1984년 결혼식장 대기실, 27살 새색시 시절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1984년 결혼식장 대기실, 27살 새색시 시절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적군(박근혜)'과도 다르고 '아군(한명숙)'과도 다르다. 이념과 역사의 대척점이 아닌 '문화'라는 제3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권력을 역할로 규정, 조직 내 수평적 관계를 시도하고, 보랏빛을 상징색으로 들고 나와 '퍼플오션'의 경영학적 개념을 정치에 도입했다. '개혁'이란 말도 "적대적 대립구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다. 법무부 장관직을 도중하차한 것도 참여정부와 검찰 개혁의 방법과 속도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강금실은 '정서적 접근'을 중요시한다. '서열파괴 점령군'으로 법무부장관이 된 뒤 '대통령과 검사와의 토론회'를 치르는 등 홍역을 앓았지만 이내 전국의 검사들에게 "여러분을 사랑하고 이해한다"는 편지를 보내 호소했다.

또 평검사들과 FGI(집단면접)를 위해 엠티를 떠나는 전례없는 일도 시도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빈 마음'의 태도가 갈등 해소의 방편"이라는 지론에서다. 추진력이 더디고 무모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내가 옳다'게 권력이다"라며 설득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제주 4·3 사건에 연루되어 스스로 무죄를 입증해낸 아버지를 통해 "틀렸을 땐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걸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로 인해 "여생이 화기와 울기로 채워져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셨다"며 온전히 동조하지 않았다. "개인의 삶이 전체에 짓밟혀 뭉개지도록 놓아두는 것보다 그 짓누르는 발자국 밑에서라도 틈새를 찾아 삶의 생기를 만끽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라며 의문을 던졌다(강금실저 <서른의 당신에게>).

강 전 장관은 20·30대 일하는 여성들과 386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성공한 여성의 역할모델이면서 동시에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고자 하는 세대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세대'와 '계층'을 지지기반으로 출발한 열린우리당, 그 창당 실험의 씨앗을 담고 있는 '뉴 리더'라는 평가도 나온다. 작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72시간 마라톤 유세' 때, 마지막 명동 유세는 '강금실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은 성공이었다.

서울시장 후보는 여론에 이끌려 나왔지만, 이번 대선만큼은 마음 조절을 단단히 한 모양이다. 최근 기자들과 만나 "나더러 재수 삼수하라는 건 너무 가혹하다, 내가 분위기 살리는 치어리더냐"며 반문했다. 한 쪽에선 "국회의원은 한번 해봐야 되지 않겠냐"며 차차기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a

[심상정(48·파주)] 주류 경제에 '송곳' 꽂은 철의 여인, 민심도 뚫을까

a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됐던 20대 시절의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구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수배됐던 20대 시절의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당원들이 뽑은 '비례대표 1번'으로 진보정당의 첫 원내 진출을 이뤘다. 첫해 의정활동에서부터 눈부신 활약을 했다. <시사저널>이 초선 의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최고의 국회의원'으로 뽑혔다. KSOI 조사에서도 작년, 재작년 연거푸 여성 의원 중 의정활동 1위를 따냈다.

80년대를 '구로'에서 보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과격한 전력을 지녔다. 전노협 쟁의국장을 지냈을 땐 '인민무력부장'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유홍준씨(현재 문화재청장)가 붙여줬다고 한다.

그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90년 전노협 건설 등 우리나라 노동운동사의 한복판에 있었다. 현대·대우 등 대공장 조합원들을 상대하는 민주노총 금속연맹의 사무처장을 연임하면서 남성 중심의 노동판에서 리더십을 키웠다. '철의 여인'이란 별명은 그 때 얻었다. 집회 반, 회의 반인 일상에 잦은 지방출장으로 절반은 집 밖에서 보냈다.

제도권에 들어와선 '경제' 분야 전문성을 발휘, 국회 재경경제위원회 '송곳'으로 유명하다.

2005년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파생상품 시장을 통한 정부의 외환개입으로 1조8천억원대의 대규모 손실"를 지적해 잘못을 시인하게 만든 사례는 유명하다. 같은 상임위에서 활동한 김양수(한나라당), 이상민(열린우리당) 의원이 "'심상정 신당'이 생기면 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동료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오는 7일 심 의원은 공식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 '3박자 경제론'을 내놓았다. ▲국내 '서민경제론' ▲한반도 '평화경제론'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이 그것.

노무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부터 경제자문역을 맡아온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도 '심상정 캠프'에 합류했다. 서울대 동기인 두 사람은 한미FTA의 졸속 협상을 전면에서 비판해온 공통점이 있다.

'콘텐츠 갖춘 우량주'라는 점에선 이견이 없지만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극복 과제다. '심상정의 아줌마 경제론'을 내세워 좀더 가까이, 구체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